오늘 우리는 힘든 세상을 살고 있다. 기술 문명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이 더욱 편안하고, 여유 많은 삶을 살 줄 알았는데, 현상은 꺼꾸로 나타나고 있다. 더 많은 근심과 걱정, 스트레스가 우리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이것은 비단 어른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걱정 없이 밝게 뛰어 놀아야 할 어린이들까지 어깨에 무거운 가방을 매고 이리 저리로 바쁘게 옮겨 다니면서 스트레스와 근심 걱정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한번은 한 신사가 어느 아파트의 엘리베이터에 어린아이와 함께 타게 되었다, 어린아이가 “아이 피곤해!” 하면서 하품 하기에 어이없어진 신사가 “꼬마야 네가 피곤할 일이 무어니?” 하자 어린아이가 하는 말이 “아저씨 모르시는 말씀 마세요! 학교 갔다 오자 마자 미술학원, 태권도 도장 가야죠 이제 집에 들어가면 숙제하고 피아노 연습해야 해요!“하며 쏘아 붙이더라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현대인들은 남녀노소 불구하고 과중한 일로 스트레스에 쌓여 산다. 이것은 우리 영혼과 육체를 지치게 만들고, 또한 병들게 만든다. 그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병원을 찾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병의 원인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고통 속에 헤매다가 생을 마감하는 것을 본다. 사람들은 이런 무거운 짐,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헬스에 가서 운동도 열심히 하고, 등산한다고 다니기도 하고, 오락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무거운 짐은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우리의 짐이라는 것은 참 이상하게도 한번 벗었다고 영원히 벗는 것이 아니다. 벗었다고 생각하면, 언제 다시 무거운 짐이 내 어깨에 달려 있는 것을 본다. 이제 근심과 걱정이 없어졌다고 하고, 돌아서면 다시 근심 걱정이 붙어 온다.

젊은 사람들이 결혼을 못해서 스트레스 쌓이다가, 결혼을 하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지만, 다른 근심 걱정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의 관심은 이런 근심 걱정, 스트레스에서 해방 될 수 없는가? 하는데 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우리의 과도한 무거운 짐은 단순한 것이 아니라, 그 뿌리는 대단히 깊은 것을 본다.

우리 인생의 모든 무거운 짐의 뿌리는 조상 대대로 내려온 죄에 있다. 성경은 말하기를 우리는 보기에 멀쩡해도 죄로 말미암아 이미 병든 사람이라 한다. 즉 죄병에 깊이 들어 있다. 이 죄의 병이 모든 고통의 뿌리이다. 따라서 아무리 겉에 나타난 증상을 치료해도 뿌리가 그대로 있으면 다시 재발한다. 우리의 근심 걱정, 스트레스 등은 사실 죄병의 한 증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이 죄병을 치료해 주어야 한다. 죄 병에서 해방 받아야 한다.

어떻게 해방 받을 수 있을까? 어떻게 이 죄의 병을 치료할 수 있을까?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고통을 보시고, 그 고통에서, 그 질고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이 땅에 치료자로 보내어 주셨다. 그 분이 누구인가? 바로 예수님이다. 예수님인 이 땅에 구원자로 오셨다. 어디에서 인간을 구원하시려 오셨습니까? 우리의 고통 원인이 되는 죄에서 해방시켜 구원으로 인도하시고자 오셨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병자들을 그렇게 많이 고치시고, 귀신들린 자들을 그렇게 많이 회복시킨 것을 볼 수 있다. 오늘 성경 말씀에 다시 외치신다. 그 외침을 우리는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외침에 응답해야 한다. 무엇이라고 예수님이 외치고 있는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