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율법의 목적이 무엇이냐? 바로 우리의 죄를 드러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을 이미 드렸습니다. 인간의 본성 가운데는 하지 말라 하면 더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있나 봅니다. 선악과도 하나님이 만일 금하지 않으셨다면 아마도 아담과 하와에게는 흥미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금하시니 범할 마음이 은근히 들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시험을 해보세요. 아이들에게 서랍하나를 정하고 절대 열어 보면 안 된다. 절대를 여러 번 강조해서 말하곤 서랍을 열었는지 안 열었는지 나만이 알 수 있는 표식을 해놓고 한번 지켜보세요. 아마 10이면 8은 열어 봅니다. 그들에겐 열지 말라는 말이 열어봐야지 하는 흥미를 돋우는 말인 모양입니다. 마찬가지로 이상하게도 성경에서 금하는 것은 다 우리가 지키기 힘든 것들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만큼 자연스럽게 우리가 하려고 하는 것들이란 것입니다. 아니면 그것을 함으로 인해서 쾌락을 얻고 세상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기에 율법은 바로 그런 것을 우리에게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어느 집에서 잔치를 하는데 집주인이 하인에게 비오는 날이니까 손님이 오거든 우산을 문 옆에다 세워놓고 들어오게 하라고 했습니다. 하인이 문간에 서 있는데 손님이 오는 것을 대문 틈으로 내다본즉 우산을 들고 옵니다. 하인은 주인이 시키는 대로 “우산 접어서 여기 놓고 들어가세요.” 하며 문 열어주고 합니다. 그런데 웬 사람 하나는 우산을 들고 오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인은 주인이 시키는 대로 “우산 접어서 여기 두세요” 합니다. 그러니까 그 손님은 “나는 우산 없이 비 맞으면서 왔는데요.”합니다. 그러자 하인은 그럼 집에 가서 다시 우산 가져오세요. 그러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의 길을 보여 주시는데 값없이 믿음으로 구원받는 길을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은혜를 거부합니다. 그리곤 율법의 힘들고 고된 길을 고집하는 것입니다.

율법의 목적을 상실하면 오히려 그것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찾을 수 없게 되며 결국은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함도 없다는 말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율법이 있으면 범법함이 있다는 말입니다. 바로 그런 의미로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갈:3:19)
갈 3:17: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 삼십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율법은 바로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표준에 멀어져 있는가를, 우리가 얼마나 죄인인가를 나타내는 것이 목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아드려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믿음입니다. 그냥 말로만 믿는 다는 것으론 참된 믿음이 아니라 말합니다. 야고보서 2장 -26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찰스 볼론딘이란 곡예사는 1859년에 처음으로 나이아가라 폭포 위를 밧줄을 걸고 그 위를 걸어간 첫 곡예사입니다. 그는 그러고도 여러 번 그러한 묘기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1930년 다시 나이아가라 폭포를 건너는데 그는 이편저편을 앞으로도 뒤로도 여러 번 같은 날에 걸어갔던 것입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소리를 치고 박수를 치며 열광 합니다. 그러자 그가 바퀴하나인 손수레를 끌고 또 밧줄을 건너갔다 왔습니다. 그러던 중 그 손수레를 관중들 앞에 놓으며 “내가 이것으로 또 건너 갔다 올 것을 믿습니까?” 그러자 일제히 관중들은 “믿습니다.”를 연발합니다. 불론딘은 그 수레를 앞으로 내밀며 그러면 타십시오. 그러자 한사람도 나서는 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야고보서가 말하는 구원 받지 못하는 믿음은 바로 찰스 불론딘 앞에서 나타난 믿음인 것입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우리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시험에 확실한 관문이 어디인지 아십니까? 그건 바로 하나님 앞에 물질로 헌신 할 때입니다. 믿음이 준비가 안 되신 분들은 결국은 거기서 걸립니다. 그런데 하나 같이 변명입니다. 교회가 돈만 밝히느니? 목사가 돈 얘기를 하면 은혜가 없다느니.. 여러분 저도 돈 얘기 안하면 딱 좋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 하시기를 너희 마음이 있는 곳에 물질이 있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마음이 천국에 있기를 바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도 여러분의 마음이 천국에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주님께 순종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헌금 많이 내면 제가 그 돈 다 가집니까? 천만에요? 다 주님의 일을 위해서 씁니다. 또 주님께서 여러분이 돈을 안낸다고 일을 못하십니까? 천만예요? 제가 에스더서를 QT 하면서 받은 은혜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구절입니다.

에스더4:13-14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이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우리 주님은 단지 여러분의 순종과 믿음을 보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있어서 Priority가 어디에 있느냐? 그것이 믿음입니다. 물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받은 물질, 시간, 은사 여기에 우선순위를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만약에 우리가 순종하면 그것이 여러분에게 더 큰 축복의 기회를 주는 하나님의 마음인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습니다. 야고보서가 말하는 믿음은 바로 행동이 있는 믿음, 열매가 있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 그럼 왜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용납이 되는 것일까요? 왜 우리가 노력해서 얻지 못하게 하신 것일까요?

첫째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롬 4:16)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 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믿음의 성격을 보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약속입니다. 약속, 언약, 이것은 믿음에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구약에서 언약을 '맺다'라는 단어는 Cut 이란 동사를 씁니다. 언약은 ‘베다’라는 뜻입니다. 그 만큼 언약이 중요 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계약이 파기 시에는, 약속을 어길시 에는 베어진다. 이런 뜻입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맺은 언약 창세기 15장의 내용이 뭐라고 하였죠? 후사에 대한 것, 땅에 대한 것, 17장에 다시 확증 하시면서 자손과도 영원한 언약을 맺으며 영원이라는 말은 파기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또한 지난번 본 것과 같이 언약식의 모습은 아브라함의 약속이 무조건적인 은혜의 언약인 것을 나타내 줍니다.

오늘 본문에도 약속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약속이라는 단어가 에팡겔리안이란 단어가로 무조건적인 약속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헬라어 단어입니다. "내가 이것을 이루리라 나의 명예를 걸고, 혹은 나의 직책을 걸고, 네가 어떻게 나오든 상관없이 내가 이것을 이루리라. 네가 어떻게 행동하든, 네가 한번 믿으면 이루는 것은 바로 나"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약속이 바로 무조건적인 은혜의 언약, 약속인 것입니다.

본문에 굳게 하려 하심이라의 뜻은 바로 보증이며 확증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의 행위에 의해서 우리의 구원이 주어진다고 하면 우리는 한시도 평안함을 가질 수 없습니다. 항상 우리의 구원을 잃지는 않을까? 안절부절못하면서 불안의 나날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어떤 분은 이런 분이 있습니다. 만약 내가 죄악에 거하는 동안 죽으면 어떻게 될까? 단지 15초 동안 죄악 된 생각을 하는데 그만 죽는다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우리의 구원은 나에게 달린 것이 아니고 바로 하나님이 보증 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우리의 믿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신 약속을 믿는 믿음 말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이 믿음을 통해서만 우리를 영접하시는 것은 바로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시기 위해서 입니다. (롬 4:17)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얼마나 놀라운 구절입니까?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 이것 때문에 아브라함은 이삭을 제물로 바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영생하시는 하나님은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하나님, 창조의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그 분은 우리를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일 뿐 만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실 능력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 능력은 바로 믿음의 눈으로만 체험 할 수 있고 믿음으로만 믿음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인 것입니다. 이 구원의 능력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소원 합니다. 음성 설교 http://ncfw.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