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민의 삶, 이민 목회를 통해서 여러 가지를 경험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이민자들의 가슴에는 많은 상처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민 생활에서 받은 상처와 인간관계 속에서 받은 상처들로 얼룩져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되면 마음 한 구석이 아린 감자를 먹었을 때처럼 아려오는 것을 느끼기 됩니다. 주일날 교회에 나오는 성도님들을 바라보면 아름답게 화장하고 단정하게 옷을 입었지만 그 안에 말하지 못하고 감춰져 있는 마음의 상처들이야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아픔임을 압니다. 저 역시 10여년의 이민목회를 하면서 얼마나 많은 상처와 아픔을 겪었는지 모릅니다. 그럼 상처 없는 목회, 눈물 없는 인생이 가능한가? 아마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죽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상처가 있고 아픔의 흔적은 다 있게 마련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허락하시는 것일까? 그리고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셨던 독생자 예수님까지 상처를 받으셔야 했을까? 그런데 예수님이 받으신 상처는 인간이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아픔이었습니다. 배신과 멸시, 조롱과 오해, 버림받으심과 십자가에 죽으심이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큰 상처이셨습니다. 그런데 상처의 주님께서 우리의 아픔과 상처를 아시고 치료자로 다가오셨다는 것입니다. 저는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주로 산에서 친구들과 자주 놀았습니다. 그때 나무를 자르다보면 겉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나무 나이테가 숨겨져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나이테가 신비입니다. 그 나이테에는 나무가 자라면서 겪은 수많은 역사가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연구한 학자들에 의하면 나무의 나이테에는 가뭄이 심했던 때와 산불이 나서 죽을 뻔 했던 때와 비가 너무 많이 왔던 때 등의 그 때 나무가 겪었던 나무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고 합니다. 거기서 춘풍추우 화재를 다 견뎌낸 상처의 아름다움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어떤 인생에도 상처는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아름다움은 상처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 상처를 어떻게 견디어 내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상처를 어떻게 영광스러운 상처로 만들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더욱 더 중요한 것은? 무엇 때문에 받은 상처이며, 누구를 위해 받은 상처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상처를 당하셨습니다. 또한 우리의 상처를 치유해 주시기 위해서 고난도 받으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을 괴롭히는 교인들을 향해서 “나는 내 몸에 예수의 흔적, 예수님 때문에 생긴 상처가 너무나 많다” 고 말했습니다. 이 상처가 아름다운 상처인 것입니다. 한 인간의 위대함은 상처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큰 상처를 견디어 내었느냐? 로 평가가 됩니다. 역경 중에도 포기하지 않는 집념으로 측정하는 것입니다. 시련을 기회로 삼고, 상처를 진주로 만든 삶이 값지고 아름다움 삶인 것입니다. 상처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혹시 상처 때문에 아파하시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상처투성이의 상처를 치유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치유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서로간의 상처를 감싸주고 어루만져주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도록 함께 노력 한다면 아마 우리 영광교회는 좋은 소식으로 소문난 아름다운 초대교회가 될 것 입니다.

Oct, 4, 2009 , 목양 실 에서 김 병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