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주 지역 교계 지도자들과 성도들이 함께 모여 민족 복음화를 위해 온몸을 던져 헌신했던 고 김준곤 목사를 추모하는 예배를 드린다.

추모예배는 10월 4일(주일) 타코마 중앙장로교회(담임 이형석 목사)에서 5시에 드려진다.

고 김준곤 목사는 1958년 한국대학생선교회(CCC)를 설립해 청년 복음화의 초석을 놓았고 세계 기독교 역사상 유례 없는 규모의 ‘74 엑스플로 대회’와 ‘80 민족복음화대성회’를 개최하며 민족 복음화를 위해 헌신했다. 또한 한국의 국가조찬기도회를 구축해 위정자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자리를 만들었으며, 지속적으로 성시화운동을 펼쳐나갔다.

평소 간이 좋지 않았던 터라 가족들이 정기 검진을 받자는 가족들의 권유에도 김 목사의 뜻은 완고했다고 한다. “주님이 데려가실 순간까지 예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데만 집중하고 싶다”는 다짐 때문이었다.

유가족인 CCC 박성민 대표는 고인의 생전 마지막 15일에 대해"굉장히 편안한 시간을 보내셨다”고 전했다. 주치의에 따르면 보통 이러한 상황에서는 굉장한 고통이 따르는데, 고인은 이상할 정도로 평안한 상태와 맑은 정신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도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격려하면서도, 오직 나라를 위한 걱정과 민족 복음화에 대한 간절함을 나타냈다"고 전했다.

박성민 목사는 “김 준곤 목사께서는 젊은이들에게 늘 예수를 외치라고 하셨다. 그분이 하신 100문 1답, 오직 예수그리스도는 CCC의 기본 틀이 되었다”며 “피 묻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자고 끊임없이 외치신 그 말씀은 목사님의 상징이 되었다"고 전했다.

김명혁 목사 "김준곤 목사님은 1981년부터 지금까지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많이 격려해 주시고 도와주셨다"며 "1981년부터 85년까지 부회장으로, 1988년부터 89년까지 회장으로, 1990년부터 현재까지 자문위원으로 계시면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도해 주셨다"고 말했다.

또한 "1984년 6월 6일부터 9일까지는 ‘세계교회기도성회’가 영락교회와 뚝섬에서 개최되어 70여 개국에서 제임스 오르 박사등 저명한 기독교 지도자들이 다수 참석했는데, 그때 김준곤 목사님이 준비위원장을 맡아 기도성회를 준비하고 진행했으며, 목사님은 기도와 금식의 사람으로 조용한 가운데 국내외에 큰 영향력을 끼쳤다"고 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