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 가정에서 가족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나눴습니다. 잠시 다니러오신 부모님과 함께 깔끔하고 화려하게 준비된 식사와 대화가 즐거웠습니다. 음식도 맛있었지만 가족들의 행복한 모습이 제 마음에 미소와 여운으로 남았습니다. 주님이 그 가정에 함께 계시고, 다정하게 품에 안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난 4년동안 함께 했던 산호세 목회를 생각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일은 더 큰 일이 아니라 오늘 주님이 허락하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기에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더 오래 교우들 곁에 머물며 산호세중앙교회를 건강하게 세우고 싶었습니다. 기도해도 응답없는 주님의 침묵이 불안하게 느껴지지만 우리에게 가장 좋은 길을 주실 것을 압니다. 주님은 단 한번도 우리를 실망시킨 적이 없는 분이셨습니다.
4년의 목회.. 산호세중앙교회 교우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습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교회는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가야만 했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있었겠지만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목사의 리더십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민목회의 특성에 따라 목회자가 준비되지 못해서 일어난 일들도 있었습니다. 목사 한 사람이 교회에 주는 영향력은 적지 않고, 회복은 더디는듯 했습니다.
가을 밤처럼 서늘한 도로를 달리면서 코엘료의 글을 생각했습니다. 한 남자가 미국 워싱턴DC 지하철역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추운 1월의 아침. 그는 45분 동안 바흐를 연주했습니다. 출근 시간이라 아마 수백명이지하철 입구를 지나쳤을 것입니다. 연주를 시작한 지 3분이 지난 후에야 한 중년 남자가 바이얼린 연주를 잠시 쳐다보았습니다.
잠시 후 누군가 처음으로 1달러를 팁으로 주고 지나갔습니다. 팁을 주고 간 여자는 무슨 곡을 연주하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없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한 남자가 지하철 입구에 기댄 채 5분여 동안 연주를 지켜보다가 시계를 쳐다보고 갔습니다. 엄마와 지나가던 세 살바기 아이는 잠시동안 연주를 바라봤지만 엄마에게 끌려가야 했습니다. 더 듣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재촉하는 부모의 손에 이끌려 가야했습니다.
지하철 입구에서 45분 동안 바이얼린을 연주하고 팁으로 32달러를 받았습니다. 연주가 끝났지만 박수를 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한 여자가 유일하게 다가와 그를 알고 있으며 그의 연주를 좋아한다고 말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가 바이얼리니스트 조슈아 벨과 진행한 실험이었습니다.
이틀 전 벨은 보스턴 극장에서 연주했는데 가장 싼 입장료가 100달러였습니다. 보스턴 극장이나 지하철역이나 벨은 동일하게 350만달러짜리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얼린으로 동일한 바흐의 곡을 연주했습니다. 실험 결과에 대해 벨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술을 감상해야 한다는 고정적인 틀 밖에선 예술의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의 의도는 예술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밝혀내는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우선적인 일이 있을 때 아무리 아름다운 예술이라도 무시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예술공연 장소, 비싼 입장료, 예술가의 인지도 등 정해진 틀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쿄엘료는 이 사실에 대해 글을 쓰면서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걸음을 멈추고 연주를 들었을까?” 일류 바이얼리니스트를 잠시 감상할 여유도 없는 사람들의 일상에서 우리는 수많은 아름다움을 놓치고 사는 것은 아닌지 두려운 마음이 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난 4년동안 지하철 입구에서 바흐를 연주하는 교회같았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아름다움을 함께 나누고 싶은 소박한 진실이 우리가 가진 전부였습니다. 잘 준비된 공연장소, 비싼 입장료, 예술가의 인지도.. 예술 공연이라는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바쁜 출근시간, 지하철 입구.. 추운 겨울 길거리에서 바흐를 연주한 바이얼리니스트 처럼..
산호세중앙교회는 가장 비싼 악기, 성경을 들고 주님을 연주하던 바이얼리니스트였습니다. 사람들은 무심히 지나치고, 잠간 쳐다보고.. 아이들만 집중해서 들어주던 길거리 연주.. 그래도 우리는 내일 또 지하철 입구에서 바흐를 연주할 것입니다. 아무도 듣지 않지만 우리는 변함없이 아름다운 주님을 연주하고자 합니다.
그 길거리 연주에 한 마음으로 참여하고, 헌신하고, 삶을 나눠준 사람들을 축복합니다. 어제도 같이 있으면 기분좋은 형제들과 식사를 하며 그들을 축복했습니다. 오늘 밤에도 함께 식사하며 행복했던 그 가정을 마음 다해 축복합니다. 그리고 이 밤에 가족과 함께 즐거운 휴식의 시간을 갖고 있을 모든 중앙교우 가족들을 축복합니다. 우리는 내일 아침에도, 추운 길거리에서 주님의 아름다움을 연주해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난 4년동안 함께 했던 산호세 목회를 생각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일은 더 큰 일이 아니라 오늘 주님이 허락하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기에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더 오래 교우들 곁에 머물며 산호세중앙교회를 건강하게 세우고 싶었습니다. 기도해도 응답없는 주님의 침묵이 불안하게 느껴지지만 우리에게 가장 좋은 길을 주실 것을 압니다. 주님은 단 한번도 우리를 실망시킨 적이 없는 분이셨습니다.
4년의 목회.. 산호세중앙교회 교우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습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교회는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가야만 했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있었겠지만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목사의 리더십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민목회의 특성에 따라 목회자가 준비되지 못해서 일어난 일들도 있었습니다. 목사 한 사람이 교회에 주는 영향력은 적지 않고, 회복은 더디는듯 했습니다.
가을 밤처럼 서늘한 도로를 달리면서 코엘료의 글을 생각했습니다. 한 남자가 미국 워싱턴DC 지하철역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추운 1월의 아침. 그는 45분 동안 바흐를 연주했습니다. 출근 시간이라 아마 수백명이지하철 입구를 지나쳤을 것입니다. 연주를 시작한 지 3분이 지난 후에야 한 중년 남자가 바이얼린 연주를 잠시 쳐다보았습니다.
잠시 후 누군가 처음으로 1달러를 팁으로 주고 지나갔습니다. 팁을 주고 간 여자는 무슨 곡을 연주하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없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한 남자가 지하철 입구에 기댄 채 5분여 동안 연주를 지켜보다가 시계를 쳐다보고 갔습니다. 엄마와 지나가던 세 살바기 아이는 잠시동안 연주를 바라봤지만 엄마에게 끌려가야 했습니다. 더 듣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재촉하는 부모의 손에 이끌려 가야했습니다.
지하철 입구에서 45분 동안 바이얼린을 연주하고 팁으로 32달러를 받았습니다. 연주가 끝났지만 박수를 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한 여자가 유일하게 다가와 그를 알고 있으며 그의 연주를 좋아한다고 말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가 바이얼리니스트 조슈아 벨과 진행한 실험이었습니다.
이틀 전 벨은 보스턴 극장에서 연주했는데 가장 싼 입장료가 100달러였습니다. 보스턴 극장이나 지하철역이나 벨은 동일하게 350만달러짜리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얼린으로 동일한 바흐의 곡을 연주했습니다. 실험 결과에 대해 벨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술을 감상해야 한다는 고정적인 틀 밖에선 예술의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의 의도는 예술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밝혀내는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우선적인 일이 있을 때 아무리 아름다운 예술이라도 무시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예술공연 장소, 비싼 입장료, 예술가의 인지도 등 정해진 틀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쿄엘료는 이 사실에 대해 글을 쓰면서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걸음을 멈추고 연주를 들었을까?” 일류 바이얼리니스트를 잠시 감상할 여유도 없는 사람들의 일상에서 우리는 수많은 아름다움을 놓치고 사는 것은 아닌지 두려운 마음이 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난 4년동안 지하철 입구에서 바흐를 연주하는 교회같았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아름다움을 함께 나누고 싶은 소박한 진실이 우리가 가진 전부였습니다. 잘 준비된 공연장소, 비싼 입장료, 예술가의 인지도.. 예술 공연이라는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바쁜 출근시간, 지하철 입구.. 추운 겨울 길거리에서 바흐를 연주한 바이얼리니스트 처럼..
산호세중앙교회는 가장 비싼 악기, 성경을 들고 주님을 연주하던 바이얼리니스트였습니다. 사람들은 무심히 지나치고, 잠간 쳐다보고.. 아이들만 집중해서 들어주던 길거리 연주.. 그래도 우리는 내일 또 지하철 입구에서 바흐를 연주할 것입니다. 아무도 듣지 않지만 우리는 변함없이 아름다운 주님을 연주하고자 합니다.
그 길거리 연주에 한 마음으로 참여하고, 헌신하고, 삶을 나눠준 사람들을 축복합니다. 어제도 같이 있으면 기분좋은 형제들과 식사를 하며 그들을 축복했습니다. 오늘 밤에도 함께 식사하며 행복했던 그 가정을 마음 다해 축복합니다. 그리고 이 밤에 가족과 함께 즐거운 휴식의 시간을 갖고 있을 모든 중앙교우 가족들을 축복합니다. 우리는 내일 아침에도, 추운 길거리에서 주님의 아름다움을 연주해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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