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선인이는 조금씩 말을 하기 시작했다. 까까, 하이 , 다왔다 등등 … 결혼 뒤 5년이나 아이가 없어서 기다리다가 기도의 응답으로 선인이를 임신하고 얼마나 기뻤던지, 뱃속에 선인이가 있을때 하루빨리 나와서 엄마라고 불러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이제 17개월이 된 선인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엄마라는 단어를 제일먼저 말하곤 했었는데 나처럼 목사님도 선인이가 아빠라고 말해주기를 기다려온 눈치이다.

요새는 너무나 정확하게 “아빠! 아빠!” 라고 말을 하는데 그때마다 목사님은 너무 즐거운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요새는 가끔씩 집에서 때아닌 선인이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리곤 한다. 아빠는 꺼칠꺼칠한 수염을 선인이의 맨몸에 대고 문질러대며 “아빠라고 말해, 아빠라고 해봐, 빨리 안해?” 하며 선인이를 고문(?)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면 처음엔 ‘까르르’ 웃던 선인이의 웃음소리는 곧 비명으로 바뀌곤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나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서도 나를 항해 아빠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하시겠지? 나와 항상 함께 계시고 자신의 목숨을 버리시기까지 나를 사랑하고 계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도 늘 나와 소근소근 이야기 하시기를 원하고 계시리라. 그래서 그토록 성경에서는 우리를 향해 쉬지말고 기도하라, 근신하여 기도하라, 깨어 기도하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라고 하면 딱딱하고 특별한 사람만이 하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들을 하고 있는것 같다. 그리곤 기도에 대해서 부담을 느끼곤 한다. 나는 오늘 다시 목사님이 선인이를 고문하는 현장을 지켜보면서 느꼈다. 기도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대화라는 것은 바쁜 우리를 고달프게 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문하기 위한 방법이 아니고 지금 이 시간에도 그토록 우리를 향해 아버지라는 말을 듣기를 원하고 계시는 그분이, 그리고 그분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우리의 모습을 통해 복 주시기를 원하는 자비로운 하나님의 깊은 사랑임을 깨닫게 되었다.

앵커리지 제일한인 침례교회 이경선 사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