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짧은 기독교 역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활발한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는 나라로, 해외에 흩어져 사는 한인들은 고국보다 더 뜨거운 열정으로 선교에 앞장서고 있다.

교회는 이민사회서 가장 중요한 기관이다. 미국으로 건너 온 첫 한인들은 인천의 교인들이 중심이 되었으며, 1965년 이후 새로운 이민법에 따라 미국으로 이주한 이들도 교회를 사회활동의 중요한 터전으로 생각했다.

교회를 통해 고국의 소식을 듣고, 교회에서 교제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공항에 내린 첫 순간부터 교회의 안내를 받아 집을 구하고, 직장을 구하고, 자동차를 등록하고, 자녀들을 취학 시키는 등 생활 전반적인 것까지 교회는 친형제 이상으로 도움을 줬다.

교회와 사회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다. 교회의 사회정치 참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던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지금까지 교회가 부패했을 때 사회도 부패했고 교회가 건강할 때 사회도 건강했다.

본지는 이처럼 중요한 기능을 감당하고 있는 뉴욕·뉴저지 지역 40개 교회의 담임 목회자를 만나 청소년 사역, 교회의 사회적 책임, 뉴욕교계의 부흥 등 다양한 이슈들에 대한 목회자들의 의견을 듣는다.

필그림교회는 믿음, 소망, 사랑 안에서 함께 순례의 길을 걸으며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도들의 모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개척한 지 12년만에 성도 2천명이 넘는 대형교회로 성장한 필그림교회는 '새생명의 축복을 이웃과 함께'라는 비전을 갖고 2020년을 향해 지금도 달리고 있다.


-이민교회의 역할과 책임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이민 교회는 독특하다. 이민 교회는 자연스럽게 세계화를 경험하는 교회다. 특히 미주 한인 교회는 전세계를 이끌고 가는 미국에 있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세계화를 겪는 교회다. 교인들 역시 미국에 살기 때문에, 어떤 분야에서도 전세계와 관련된 사고를 갖고 일한다.

하나님께서는 미국 땅에 왜 한인 교회를 세우셨는가. 그것은 세계를 품고 나가는 선교적인 교회로 세워주기 위함이다. 문화적 다양성을 갖고 영어에도 친숙한 이민교회가 선교에 나서야 한다. 또한 세계화 된 안목을 갖고 미국에서 자란 1.5세, 2세들이 선교에 참여할 때,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 한인 디아스포라의 역할은 무엇인가.
미주 한인 교회의 역할은 죽어가는 미국 교회 영성을 일깨우는 일이다. 아울러 세계 선교에 앞장서야 한다.

담임 목회를 하는 1.5세 목회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1세 리더들은 1세 중심에서 벗어나기가 어렵지만 1.5세들은 미국 교회 활동에도 참여하고 협력해나갈 수도 있다.

교회 트렌드가 미국에서 한국을 거쳐 다시 이민 교회로 오는 것이 지금까지의 모델이었다. 이제 이런 흐름도 미국의 것이 이민 교회를 통해 한 번 걸러지고 한국교회로 흘러들어가지 않겠나.

미주 한인들은 미국에 있다는 장점을 십분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디어의 역할도 크다.

-교회의 대사회적 책임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주님 말씀하신 것처럼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갖고 있다. '소금'으로서 사회가 계속 죄와 욕심으로 썩는 것을 방지하고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보존해야 한다. 아울러 '빛'으로서 이미 어둠 가운데 있는 세상에 진리의 빛을 비춰야 한다. 참된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역할을 어떻게 실제적으로 감당해야 하는가.

세상의 교회에 대한 질타가 점점 커지고 있다. '왜 너희는 배타적이고 독선적이냐'는 것이다. 종교 다원주의 시대에 개신교만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신앙의 핵심 '오직 예수'다. 예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 아버지로 갈 수 있는 자가 없다. 이 핵심 가치와 타협하지 않으면서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 유일한 길은 주님이 이미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이 땅에 섬기러 왔다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갖고 세상으로 들어가서 진심으로 섬겨줄 때 바라보는 사람들이 '독선주의자들이지만, 저들이 있어서 세상이 좋다, 기독교인 때문에 살만하다'고 말할 것이다. 우리가 '세상의 소망'으로 인정받을 때 사회에의 책임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인본주의와 타협하고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서 신앙의 본질적인 것을 저버릴 수는 없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뜻을 고집하면서도 섬기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소금과 빛으로서, 낮아져서 사랑으로 섬기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필그림교회에서는 이 뜻을 실천하고자 사역 센터를 시작했다. 사역 센터에서는 지역 사회 봉사, 학원 사역, 문화 사역, 가정 사역을 실시하고 있다. 사역 센터는 전부 지역 사회를 위해 개방돼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다수 참여한다. 사역 센터를 지역 사회 개방함으로서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교회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좋은 점을 보게 하고 싶다.

-빛과 소금으로서 크리스천의 역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복음, 하나님의 말씀은 문제 없다. 그런데 그것을 삶으로 옮기지 못하는 우리가 문제다. '개교회주의'가 그 원인 중 하나다. 교회들이 사회 참여, 지역 사회 섬김에 소홀하다. 또한 기복주의 신앙도 문제다.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교회는 나가지 않더라도 '교회가 있어서 좋다'는 생각을 가져야 하는데 교회의 존재가 귀찮고 번거롭게 다가오거나, 방해를 준다고 인식하면 안되지 않은가. 곳곳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들으면 예수님에 대한 반기는 아니다. 안티 그리스도는 아니다. 교회에 대한 반감이다. 세상 사람들이 보는 눈에도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이 따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삶과 가르침의 괴리가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를 믿으면서도 근본적인 가치관이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는 목적도 여전히 갖고 있던 가치관을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삼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수 믿어서 출세하고, 부자가 되고, 예수 믿어서 건강하고, 좋은 대학 들어가는 것 말이다.

사도 바울은, 세상에서 자랑하던 것을 예수 안에서 평가하니 배설물과도 같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처럼 예수로 말미암아 근본적인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교회는 교회대로 성경이 제시하는 가치관을 있는 그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메세지를 중심으로 전하다보니 핵심이 되는 메세지는 희석시킨다. 그러다보니 성도들이 교회에 나와도 진정한 가치관은 변하지 않는다.

-북한 선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음으로 양으로 그들이 가진 필요를 채워주는 일을 계속 해야한다. 손해보는 것 같아도 북한과 지속적인 접촉을 하면서 사랑을 나눠주고 접촉을 통해 바깥 세상을 알려야 한다. 아울러 북한이 언제 열리든 선교할 수 있도록 전략적인 것을 연구하고 필요한 일꾼을 키워야 한다. 탈북자들 가운데 그런 일꾼을 많이 발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탈북자 중에는 당장 죽게되어서 탈북한 사람도 있지만, 의식이 있어서 변화를 찾아 탈북한 꽤 있다. 이미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도 있고. 탈북한 사람 중에서 북한 복음화를 위해 쓰실 만한 일꾼이 충분히 있을 것이다. 이 리더들을 키워나가고 전략을 세우는 일이 필요하다. 일꾼을 키우고 미래를 준비하면 되지 (내가)평양까지 갈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차세대 교육에 관심이 많을 것 같다.
그렇다. 캘리포니아에서 담임 목회 할 때도, 개척할 때도 교육에 많은 신경을 썼다. 개척할 때는 KM과 EM을 함께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KM의 성장이 빨랐다. 시간을 KM쪽으로 쓰게 되다보니 EM은 맡기게 됐다. 1.5세 목회자로서 다리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차세대 교육에 관심을 갖고 투자하면서 키우고 있다.

-대형교회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축복이다. 하나님께서 왜 은혜를 주셨는지를 생각해봤다.

첫번째, 섬기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시작하게 해주셨다.

개척교회이기 때문에 관심을 갖고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다. 찾아오는 사람들에 대한 교회의 일반적인 관심은 무엇인가? '저 사람이 (교회에) 어떻게 도움이 될 것인가.'하는 것, 그리고 '저 사람을 따라 몇 명이 교회에 나올까?'이다.

내가 교회 개척을 준비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주셨던 마음은 '섬김'이었다. 함께 교회를 개척했던 사람들과도 나눴던 이야기가 있다. "누가 찾아오던지 '어떻게 섬기라고 보내주셨는가', '저 사람의 필요는 무엇인가'를 보자"는 것이었다.

때로는 교회를 옮겨다닌다, 교회를 분열시킨다는 등 악평을 받는 사람들도 찾아온다. 그런 사람들이 찾아오면 많은 이들은 우리에게 '경계하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런 사람들도 '어떤 필요가 있어서 찾아왔을까'생각한다. 찾아오는 사람들을 그런 안목으로 보는 훈련을 시켜주셨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교회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열려있는, 수용하는 분위기가 흐르게 되었다.

우리 교회는 새가정반을 거친 성도가 구원의 확신이 있다는 것이 확인되면, 될 수 있는대로 교회 사역에 참여시킨다. 이런 분위기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던 것 같다. 교회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

두 번째, 하나님께서는 나를 훈련시켜주셨다. 신학교를 졸업한 후 나성영락교회에서 부목사를 하면서 김계용 목사님, 박희민 목사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좋은 교회에서 1세 목회 훈련을 받았고, 영어 목회를 시작했다. 담임 목회도 해봤고, 개척하게 해주셔서, 이곳에서 개척을 시작했다. 이 과정 속에서 '목회가 무엇인가' 깨닫게 해주시고, 교회를 시작하게 해주셨다.

두 분의 선배 목사님을 통해 배운 것은 '인내'다. 이민 교회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다. 또 그 사람들이 다양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래도 이들을 포용하고, 인내하고, 문제를 영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을 배웠다.

이와 함께 헌신하는 것이다. 목회자와 평신도들의 헌신이 귀한 것이다. 그러나 목회자가 앞장서서 헌신할 때 평신도도 헌신할 수 있는 것이다. 목회자의 헌신이 앞서지 않는다면, 평신도들의 헌신은 있을 수 없다.

또한 장로교회의 전통을 훈련받았다. 말씀 사역의 중요성에 대해 철저하게 배웠다. 성경적, 말씀 중심적인 것 말이다. 설교와 성경공부를 위한 시간과 노력의 투자가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세번째, 헌신된 평신도와 함께 개척할 수 있었다. 헌신도가 높은 열 가정이 모였고, 하나님께서 섬기고자 하는 마음을 주시고, 교회를 준비하게 해주셨다.

-성장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는가.
지나온 것은 고생도 아니었다. 돌아볼 때, 고생보다는 하나님의 은혜가 떠오른다. 하나님께서는 필요를 다 채워주셨다. 하나님 앞에 맡기고 나가다보면 필요한 것을 다 채워주신다는 것을 체험했다.

-개척교회에서 대형교회로 변하면서 맡아야 할 책임도 변화했을텐데
그렇다. 그 중에서도 지속적으로 변화되는 것은 '팀웍'에 관한 것이다. 리더십을 혼자 갖지 않고 다른 사람과 나누는가, 팀웍을 얼마나 잘 이뤄가느냐가 중요하다.

평신도가 사역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면서 혼자 이끌던 성경공부를 소그룹에 평신도 리더를 세워서 이끌게 했다. 심방을 나가던 것을 부교역자들이 나눠서 하게 하고, 나아가서는 교구장, 구역장들이 하게 했다. 사역의 책임을 나누는 팀웍, 특히 교역자와 평신도와 나누는 팀웍이 매우 중요하다.

이와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은 수평이동에 관한 것이다. 교회 성장은 새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이뤄지기도 하지만, 교회를 옮긴 사람들로 인해서도 일어난다. 교회를 옮겨온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것 뿐 아니라, 이동해 온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자라나 지역 사회, 지역 교회로 되돌아가는 것도 중요하다. 얼마 전 평신도리더십컨퍼런스도 평신도들이 지역 사회, 지역 교회를 위한 일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열게 된 것이다. 평신도 교육 프로그램을 자체적으로 만들기 어려운 교회들이 많다. 디딤돌리더십아카데미가 지역 사회의 리더를 키우고 이들을 사회 곳곳을 섬기는 일꾼으로 파송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이슬람교가 한국에도 많이 들어오고 있다. 한 정치학자는 21세기에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충돌할 것이며, 이슬람교의 성장률이 기독교의 성장률보다 빠르기 때문에 이슬람교의 영향력이 기독교의 영향력보다 크게 될 것이라 예측하기도 했다.

인간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다윗과 골리앗이 만나면 골리앗이 이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두 종교가 만나면 인간적으로는 이슬람이 이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지 모른다. 그러나 정말 살아 역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성령께서 모든 세상을 주권적으로 다스리신다는 안목으로 본다면 예수의 이름으로 승리하게 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슬람교에 대처하는 자세도 지적인 것이나 학문적인 것, 세상적인 전략보다는 예수님이 보여주신 리더십, 섬기는 리더십을 앞세워 나가야 한다. 이와 함께 성령이 앞서 가야한다. 이슬람 지역 선교에서는 성령의 강한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가.

이슬람은 기독교 국가에서 전도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이슬람 국가에서 전도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성령의 열매를 맺는가. 선교사의 이야기 들어보면 놀라운 역사가 있다. 문이 막혔다 생각하지만, 성령의 역사를 간구하고 예수 이름으로 간구하게 할 때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그 땅의 영혼들이 변화한다. 그런 계시들을 이슬람 선교사들이 나누고 있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가 하는 일은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오직 하나님께서 일할 수 있도록 우리를 맡기는 것만이 필요하다. 이슬람 국가도 그렇게 변화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