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는 교우의 부친상이 있었습니다. 마지막 가시는 길에 천국에 대한 소망을 이야기하시고 믿음을 고백하시고 가셨다고 합니다.

출산 예정일을 맞아 아기를 얻은 가정들이 있었습니다. 아울러 새로운 질병을 발견하고 치료를 위해서 입원하거나 수술을 받기도 하고 심지어 한국에 나간 교우들이 있었습니다.

지난 주에는 장인 어른의 91회 생신을 맞았습니다.

생로병사(生老病死), 태어나고 늙어가고 병들고 죽은 일이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아울러 희노애락(喜怒哀樂), 기쁜 일, 화를 낼 일, 슬픈 일, 즐거운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집니다.

인생은 생生으로만 채워지지 않습니다. 생에 이어서 로老, 병病, 사死가 따라 옵니다. 인생은 희喜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기쁨에 이어서 분노와 슬픔, 즐거움이 함께 어우러져서 찾아옵니다.

인생에 채워지는 로老와 느닷없이 닥치는 병病 때문에 슬퍼해도 소용없습니다. 어느 날 찾아오는 죽음으로 인해서 슬퍼해도 우리의 생과 희락이 죽음을 막아주지 못합니다.

생로병사의 나날 속에서 희노애락을 찾을 뿐입니다. 비록 분노가 기쁨을 뺏어가고 분노의 자리에 슬픔이 가득차도 끝은 아닙니다. 인생은 기쁨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할 때, 그 기쁨이 분노와 슬픔에 자리를 내어 줄 때도 즐거움으로 인생을 마무리 할 수 있음을 알면 됩니다.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더라도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 인생의 저녁은 낙으로 닫을 수 있습니다. 기쁨이 낳아 준 즐거움이 아니라 분노와 슬픔을 겪고 나서 얻은 즐거움이 인생의 마지막 날을 채워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의 소망을 소유한 성도들은 인생이 생로병사의 연속임을 알지만 그것이 끝이 아님을 믿습니다. 사망 후에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 영광의 주님과 함께 영원한 즐거움을 누릴 것을 믿습니다.

영원한 소망을 가진 자들은 이 땅에서 기쁨이 분노가 되고 분노가 슬픔이 되어도 항상 즐거움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아이의 탄생을 알리는 울음 속에는 고통, 분노, 슬픔이 들어 있을지라도 그 울음 소리를 듣는 이들에게는 기쁨이요 즐거움입니다. 사망의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에게 죽음의 순간은 분노와 슬픔을 맞는 순간이지만 사망을 넘어 영원한 소망을 가진 이들에게는 예비된 더 큰 즐거움의 날에 보다 가까워지는 걸음입니다.

오늘도 온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생로병사, 희노애락의 소용돌이 가운데서 소망의 닻줄을 잡고 항상 생을 즐기며, 기쁨으로 시작한 일을 즐거움으로 마무리 할 수 있는 천국의 삶을 누리는 온 교우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