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목양장로교회(담임 송병기 목사)는 2일 오후 8시 인터콥 아프가니스탄 여의사 조은샘 선교사를 초청해 간증을 듣는 시간을 마련했다.
조은샘 선교사는 예수님을 영접한 처음 과정부터 전하기 시작했다. 조 선교사는 유교 집안에서 강력한 불교 집안으로 시집왔다고 한다. 결혼해 명동에 성형외과도 차리고 모든 일이 잘 되어 가던 중 남편이 ‘암’에 걸렸다는 선고를 받게 됐다. 암에 걸린 남편은 미국 텍사스에 와 치료를 받던 중 병원에 찾아온 휴스턴서울교회 최영기 목사의 기도로 예수를 영접하게 됐단다. 조 선교사도 이것을 계기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고 목장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한다.
1월에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지만 예수님이 잘 믿어지지 않았던 조 선교사를 위해 목장 식구들의 기도도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 조 선교사는 4월 부활절에 교회에 갔다 성찬 예식에 참여하며 십자가의 빛이 임하는 체험을 하게 된다.‘성령’이 임하며 '제가 죄인입니다'라는 고백으로 조 선교사는 예수님을 영접하게 됐다.
그리고 나서 한 달 후 교회 집회를 온 오대원 목사의 말씀을 들으며 조 선교사는 ‘의사’라는 전문직을 갖고 있었지만 40평생을 헛살았구나 싶었고, 그것이 억울해서 그 자리에서 선교사로 헌신하기로 결단하고 병원을 그만뒀다고 한다.
조 선교사는 "예수님 믿고 1년이 너무 중요하다. 초신자를 제자로 삼는 것, 초신자때 헌신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자신에게 소중한 것, 놓으면 죽을 것 같은 것을 던져보아라. '나만 사랑하라'하신 주님을 위해 그걸 던져봐야 그것이 우상인줄 안다. "고 말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선교사로 헌신할 것을 결단한 조 선교사는 목장을 통해 새신자 훈련, 전도 훈련, 목자 훈련까지 선교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훈련을 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던 중 남편의 병이 재발해 조 선교사와 남편은 한국으로 들어갔고 남편은 얼마 후 주님 의 부름을 받았다. 남편의 병이 계기가 돼 주님을 만났지만 친정. 시댁 모두가 불신자인지라 한국에서의 신앙생활은 쉽지 않았다. 조 선교사는 성경에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던 아브라함을 보고 1997년 무조건 미국으로 딸과 함께 떠났다.
미국에서의 첫 보금자리는 시애틀이었다. 주님께서는 선교사로 결단했지만 선교의 길을 잡지 못했던 조 선교사를 시애틀온누리교회로 인도해 주셨다. 조 선교사는 시애틀온누리교회에서도 가정교회에서 했던 것처럼 식당에서건, 슈퍼마켓에서건 전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 선교사가 속한 순은 10가정까지 늘어나 분가도 2-3번하고 선교사도 여럿 파송할 수 있었다.
조 선교사는 "성경은 삶을 100% 헌신하며 교회를 개척하신 분들이 쓴 글이니 '목자'가 되지 않으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글이다."며 '집으로 돌아가는 무리'가 아닌 '예수님과 동고동락하는 제자'가 될 것을 권면했다.
교회 생활도 열심히 하며 인터콥에서 행정 간사로도 섬기고 있던 조 선교사는 어느날 본부에 연락해 보라는 메세지를 받았다. 본부에서는 조 선교사에게 아프가니스탄에 의사가 부족하니 가서 사역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조 선교사는 의사를 그만둔 지 10년이 됐는데....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하나님께서 귀한 일에 쓰시려고 의사 공부도 하게 하신 것이라는 생각에 순종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학교 다니던 딸을 떠나는 것도 조 선교사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기도하니 예수님께 맡겨지더라고 전했다.
조 선교사는 "하나님 주신 달란트는 우물에서 물을 퍼 올리듯 자꾸 써야 한다. 우물도 자꾸 써야 나오는 것이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조 선교사는 "모슬렘 선교는 한국사람 아니면 하기 힘들다. 한국인에게는 교회 개척의 은사가 있다. 지금 아프간에 남아있는 선교사도 대부분 한국인이다. 한국인, 미국 교포는 마지막 때 하나님께서 훌륭하게 쓰실 세대이다. "고 전했다.
조 선교사는 아프가니스탄에 도착해 예배를 드리는데 '이 땅까지 와서 나를 경배하느냐' 하시며 기뻐하시는 크신 '주님의 기쁨'이 느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 선교사는 "나에게는 아무 능력이 없이 주님만 바라보는 것이 ‘예배’이다. 주님만 바라볼 때, 필요한 것은 주님께서 주시더라. 선교에 필요한 것은 '아버지의 마음, 열방을 향한 긍휼의 마음'"이라고 전했다.
이어 조 선교사는 현지의 사진을 보여주며 초등학교까지 졸업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직업학교 사역, 어머니 세대들을 대상으로 한 문맹퇴치 사역, 핍박받는 하자라 민족을 대상으로 한 교육(의과대) 사역 등을 소개했다.
조 선교사는 "아프간에는 단기 선교팀도 많이 온다. 단기 선교는 마지막 때 주님께서 주신 선교전략이다. 장기팀은 추방의 위험이 있기에 조심히 사역해야 한다. 그런데 단기 선교팀은 와서 열심히 복음의 씨를 뿌릴 수 있다. 장기와 단기팀이 어떻게 연합할 것인가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 선교사는 단기선교로 한국의 한동대 학생 10명이 SM 선교사로 1년간 와있기도 하다고 전하며 "탈레반이 집권할 때 20년간 비가 안 오던 땅에 선교팀이 예배를 드리니 비가 오고 풀이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단기팀은 자신들이 와서 기도한 것이 응답된 것을 그 다음에 왔을 때 보게 된다. 그래서 단기팀은 더 선교지를 찾게 된다."며 "여러분들도 전부 선교사로 가시기를 바란다. 하나님 앞에 100% 헌신하는 모습이 자녀들에게 줄 가장 귀한 믿음의 유산이 아니겠는가."하고 강조했다.
한편 조은샘 선교사는 3일, 4일 뉴저지 새샘교회에서 진행되는 여성비전스쿨의 강사로, 6일, 7일 뉴욕목양장로교회에서 진행되는 뉴욕 지부 비전스쿨 강사로 강연할 예정이다.
조은샘 선교사는 예수님을 영접한 처음 과정부터 전하기 시작했다. 조 선교사는 유교 집안에서 강력한 불교 집안으로 시집왔다고 한다. 결혼해 명동에 성형외과도 차리고 모든 일이 잘 되어 가던 중 남편이 ‘암’에 걸렸다는 선고를 받게 됐다. 암에 걸린 남편은 미국 텍사스에 와 치료를 받던 중 병원에 찾아온 휴스턴서울교회 최영기 목사의 기도로 예수를 영접하게 됐단다. 조 선교사도 이것을 계기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고 목장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한다.
1월에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지만 예수님이 잘 믿어지지 않았던 조 선교사를 위해 목장 식구들의 기도도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 조 선교사는 4월 부활절에 교회에 갔다 성찬 예식에 참여하며 십자가의 빛이 임하는 체험을 하게 된다.‘성령’이 임하며 '제가 죄인입니다'라는 고백으로 조 선교사는 예수님을 영접하게 됐다.
그리고 나서 한 달 후 교회 집회를 온 오대원 목사의 말씀을 들으며 조 선교사는 ‘의사’라는 전문직을 갖고 있었지만 40평생을 헛살았구나 싶었고, 그것이 억울해서 그 자리에서 선교사로 헌신하기로 결단하고 병원을 그만뒀다고 한다.
조 선교사는 "예수님 믿고 1년이 너무 중요하다. 초신자를 제자로 삼는 것, 초신자때 헌신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자신에게 소중한 것, 놓으면 죽을 것 같은 것을 던져보아라. '나만 사랑하라'하신 주님을 위해 그걸 던져봐야 그것이 우상인줄 안다. "고 말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선교사로 헌신할 것을 결단한 조 선교사는 목장을 통해 새신자 훈련, 전도 훈련, 목자 훈련까지 선교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훈련을 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던 중 남편의 병이 재발해 조 선교사와 남편은 한국으로 들어갔고 남편은 얼마 후 주님 의 부름을 받았다. 남편의 병이 계기가 돼 주님을 만났지만 친정. 시댁 모두가 불신자인지라 한국에서의 신앙생활은 쉽지 않았다. 조 선교사는 성경에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던 아브라함을 보고 1997년 무조건 미국으로 딸과 함께 떠났다.
미국에서의 첫 보금자리는 시애틀이었다. 주님께서는 선교사로 결단했지만 선교의 길을 잡지 못했던 조 선교사를 시애틀온누리교회로 인도해 주셨다. 조 선교사는 시애틀온누리교회에서도 가정교회에서 했던 것처럼 식당에서건, 슈퍼마켓에서건 전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 선교사가 속한 순은 10가정까지 늘어나 분가도 2-3번하고 선교사도 여럿 파송할 수 있었다.
조 선교사는 "성경은 삶을 100% 헌신하며 교회를 개척하신 분들이 쓴 글이니 '목자'가 되지 않으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글이다."며 '집으로 돌아가는 무리'가 아닌 '예수님과 동고동락하는 제자'가 될 것을 권면했다.
교회 생활도 열심히 하며 인터콥에서 행정 간사로도 섬기고 있던 조 선교사는 어느날 본부에 연락해 보라는 메세지를 받았다. 본부에서는 조 선교사에게 아프가니스탄에 의사가 부족하니 가서 사역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조 선교사는 의사를 그만둔 지 10년이 됐는데....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하나님께서 귀한 일에 쓰시려고 의사 공부도 하게 하신 것이라는 생각에 순종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학교 다니던 딸을 떠나는 것도 조 선교사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기도하니 예수님께 맡겨지더라고 전했다.
조 선교사는 "하나님 주신 달란트는 우물에서 물을 퍼 올리듯 자꾸 써야 한다. 우물도 자꾸 써야 나오는 것이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조 선교사는 "모슬렘 선교는 한국사람 아니면 하기 힘들다. 한국인에게는 교회 개척의 은사가 있다. 지금 아프간에 남아있는 선교사도 대부분 한국인이다. 한국인, 미국 교포는 마지막 때 하나님께서 훌륭하게 쓰실 세대이다. "고 전했다.
조 선교사는 아프가니스탄에 도착해 예배를 드리는데 '이 땅까지 와서 나를 경배하느냐' 하시며 기뻐하시는 크신 '주님의 기쁨'이 느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 선교사는 "나에게는 아무 능력이 없이 주님만 바라보는 것이 ‘예배’이다. 주님만 바라볼 때, 필요한 것은 주님께서 주시더라. 선교에 필요한 것은 '아버지의 마음, 열방을 향한 긍휼의 마음'"이라고 전했다.
이어 조 선교사는 현지의 사진을 보여주며 초등학교까지 졸업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직업학교 사역, 어머니 세대들을 대상으로 한 문맹퇴치 사역, 핍박받는 하자라 민족을 대상으로 한 교육(의과대) 사역 등을 소개했다.
조 선교사는 "아프간에는 단기 선교팀도 많이 온다. 단기 선교는 마지막 때 주님께서 주신 선교전략이다. 장기팀은 추방의 위험이 있기에 조심히 사역해야 한다. 그런데 단기 선교팀은 와서 열심히 복음의 씨를 뿌릴 수 있다. 장기와 단기팀이 어떻게 연합할 것인가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 선교사는 단기선교로 한국의 한동대 학생 10명이 SM 선교사로 1년간 와있기도 하다고 전하며 "탈레반이 집권할 때 20년간 비가 안 오던 땅에 선교팀이 예배를 드리니 비가 오고 풀이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단기팀은 자신들이 와서 기도한 것이 응답된 것을 그 다음에 왔을 때 보게 된다. 그래서 단기팀은 더 선교지를 찾게 된다."며 "여러분들도 전부 선교사로 가시기를 바란다. 하나님 앞에 100% 헌신하는 모습이 자녀들에게 줄 가장 귀한 믿음의 유산이 아니겠는가."하고 강조했다.
한편 조은샘 선교사는 3일, 4일 뉴저지 새샘교회에서 진행되는 여성비전스쿨의 강사로, 6일, 7일 뉴욕목양장로교회에서 진행되는 뉴욕 지부 비전스쿨 강사로 강연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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