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종교(Religion)적으론 구원 받을 수 없는가? 왜 십 년 동안을 벽으로 보고 앉아서 수도를 하고 수많은 금식과 금욕을 하면서 심지어는 못 침대에 누워 명상을 하는데도 구원을 받을 수 없을까? 한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선민으로 택함을 받은 유대인들은 왜 율법으로 구원 받을 수 없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이 오늘 본문에 있습니다.
로마서를 구분하면 네 가지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고 지난번에 말씀드렸습니다. 그 첫 번째가 롬 1:18-3:20절 까지로 왜 우리가 구원이 필요한가에 대한 이유를 기록했다고 했습니다(Sin). 두 번째는 롬 3:21-5:21절 (salvation). 세 번째가 롬 6:1-8:39절 으로 어떻게 내가 살 수 있는가?(Sanctification). 네 번째가 삽입으로 롬9:1-11:36절 왜 하나님이 구원 하셨는가?(Sovereignty of God). 다섯 번째가 롬 12:1-15:13절 어떻게 섬기는가?(Service)로 나눌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지금 첫 번째 부분에서 모든 사람에게 구원이 필요하다고 밝히는데 특히 오늘은 유대인의 죄를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율법아래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말로 하면 종교성이 강하다 할지라도 그들도 역시 하나님 앞에서 죄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인에게 필요한 것은 용서이고 바로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구원이 필요한 존재라고 그 이유를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불순종한 사람이나 도덕적으로 흠이 없다고 생각 하는 사람이나, 종교를 열심히 믿고 있는 사람 도를 닦고 있는 사람 모두가 다 구원이 필요한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반항적인 사람, 사회적으로 훌륭한 사람, 종교적인 사람이라도 이들은 다 진리를 억누르고 거절하고 대체하려고 합니다. 이들이 지은 죄는 경건치 않음의 죄입니다. 하나님이 계심을 알고 있으면서도 하나님 없는 것처럼 사는 것, 또 하나는 하나님이 세우신 규칙을 무시하고 사는 죄입니다. 이들은 불의를 행했기 때문이라고 로마서 전반부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자 오늘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스스로 하나님이 세우신 규칙을 잘 지키고 살아간다고 생각 하는 사람들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특히 그러한 자부심이 넘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면에서 아마도 가장 복음이 받아드려지기 힘든 그룹일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방법으로 천국에 다다르려 하고 자신이 세운 종교적인 수행을 의지함으로 의롭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런 유대인들을 향해서 종교적일지는 몰라도 구원은 없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본문 17절 하반에 보면 (롬 2:17) 유대인이라 칭하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라고 나와 있습니다. 만약에 유대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심지어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가 어떤 종교적인 율법(관례, 의식)을 지키고 하나님을 자랑 한다고 해도, 그 마음의 중심에 그리스도가 없으면 마찬가지로 종교주의자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즉 그가 믿고 있는 종교로는 구원을 얻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바울은 7가지 종교주의자에 대한 특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종교주의자의 특성은 그들은 자신의 라벨에 의존합니다.
바울은 17절에 유대인이라 칭하는 이라고 지적합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이름이 바로 천국행 티켓으로 생각 합니다. 유대인이면 바로 천국행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유대인 즉 Jew라는 말은 바로 Judah에서 왔는데 열왕기하16:6에서 처음 사용되어진 것입니다. 유다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께 찬양, 혹은 찬양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의 뜻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의 뜻입니다. 즉 그만큼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가 이루어진 것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제가 성지 순례 중 이말 그대로 그들에게 물어 보았는데 당신은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까? 그러면 그들은 머뭇거리지 않고 물론 이지요. 그러면서 우리는 유대인입니다 그렇게 대답합니다. 이 모습은 오늘 우리 주변에서도 너무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까? 라고 물으면 “물론이지요 저는 장로교인입니다. 침례교인입니다.” 아니면 순복음 교회, 그것도 여의도라는 상표를 붙여서 여의도 순복음교회 장로, 집사입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아니면 우리 부모가 장로입니다, 아니면 우리 할아버지는 선교사였습니다, 우리 삼촌이 목사인걸요.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들은 다 라벨에 의존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이름에 의존한다고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지요? 그래도 교회에서는 이런 사람들 시험에 안 들게 하려고 자신이 교인이라 주장하면 그냥 교인으로 받아들여 놓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복음으로 주님을 영접하게 해야 하는 전도의 대상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두 번째 특성은 자신들의 구원을 어떠한 Rule과 Regulations에 의존 한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의지하며.. 율법의 대표가 바로 모세오경입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에 보면 율법을 주신 목적이 우리로 구원을 얻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 3:19)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유대인의 오류는 바로 율법을 전수 받은 것이 바로 구원의 증표로 여기는데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자신들이 신자라고 생각을 합니다. 마치 성경책만 가지고 있으면 구원을 얻는 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사람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 5: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바로 너희가 성경을 가졌다고 해서 영생을 얻은 것이 아니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미국 남부의 어느 교회에 참으로 열심히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어떠한 불의와도 타협하지 아니하고 무엇을 하여도 하나님 기뻐하시는 것만 골라 가며 하려고 애를 쓰던 교회였습니다. 혹시라도 잘못 된 사람들(술집에 드나드는 사람들, 도박하는 사람들, 혹은 디스코에나 다니며 춤추는 사람들이나 험담하는 사람들 등)이들이 물을 흐릴까봐 철저하게 교회를 지켰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더 그들의 선은 더 엄격하게 그어져 갔습니다. 이혼한 사람들, 여학생 얼굴이나 보러 오는 남학생들, 심지어는 청바지나 미니스커트를 입은 사람들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오로지 어떤 것이 예수를 올바로 믿는 것인가를 나름대로 원칙을 세우고 규칙을 정해서 철저하게 가르치고 배웠습니다. 그리고는 4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교회는 그 동안 그들이 보기에 이 세상 어느 교회보다도 더 거룩하고 흠 없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40년 그들이 바친 열정의 결과가 그 교회에 교인이 10명 남짓한 칠순 할아버지들 할머니들뿐이었다고 하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우리도 우리 교회가 바로 제가 방금 말씀 드린 것 같은 교회가 되기를 원하시는지요? 구원은 어떤 규칙이 아닙니다, 엄격한 규칙에서 오는 것도 아닙니다. 구원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이지 규칙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계속)
로마서를 구분하면 네 가지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고 지난번에 말씀드렸습니다. 그 첫 번째가 롬 1:18-3:20절 까지로 왜 우리가 구원이 필요한가에 대한 이유를 기록했다고 했습니다(Sin). 두 번째는 롬 3:21-5:21절 (salvation). 세 번째가 롬 6:1-8:39절 으로 어떻게 내가 살 수 있는가?(Sanctification). 네 번째가 삽입으로 롬9:1-11:36절 왜 하나님이 구원 하셨는가?(Sovereignty of God). 다섯 번째가 롬 12:1-15:13절 어떻게 섬기는가?(Service)로 나눌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지금 첫 번째 부분에서 모든 사람에게 구원이 필요하다고 밝히는데 특히 오늘은 유대인의 죄를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율법아래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말로 하면 종교성이 강하다 할지라도 그들도 역시 하나님 앞에서 죄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인에게 필요한 것은 용서이고 바로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구원이 필요한 존재라고 그 이유를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불순종한 사람이나 도덕적으로 흠이 없다고 생각 하는 사람이나, 종교를 열심히 믿고 있는 사람 도를 닦고 있는 사람 모두가 다 구원이 필요한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반항적인 사람, 사회적으로 훌륭한 사람, 종교적인 사람이라도 이들은 다 진리를 억누르고 거절하고 대체하려고 합니다. 이들이 지은 죄는 경건치 않음의 죄입니다. 하나님이 계심을 알고 있으면서도 하나님 없는 것처럼 사는 것, 또 하나는 하나님이 세우신 규칙을 무시하고 사는 죄입니다. 이들은 불의를 행했기 때문이라고 로마서 전반부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자 오늘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스스로 하나님이 세우신 규칙을 잘 지키고 살아간다고 생각 하는 사람들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특히 그러한 자부심이 넘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면에서 아마도 가장 복음이 받아드려지기 힘든 그룹일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방법으로 천국에 다다르려 하고 자신이 세운 종교적인 수행을 의지함으로 의롭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런 유대인들을 향해서 종교적일지는 몰라도 구원은 없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본문 17절 하반에 보면 (롬 2:17) 유대인이라 칭하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라고 나와 있습니다. 만약에 유대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심지어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가 어떤 종교적인 율법(관례, 의식)을 지키고 하나님을 자랑 한다고 해도, 그 마음의 중심에 그리스도가 없으면 마찬가지로 종교주의자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즉 그가 믿고 있는 종교로는 구원을 얻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바울은 7가지 종교주의자에 대한 특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종교주의자의 특성은 그들은 자신의 라벨에 의존합니다.
바울은 17절에 유대인이라 칭하는 이라고 지적합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이름이 바로 천국행 티켓으로 생각 합니다. 유대인이면 바로 천국행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유대인 즉 Jew라는 말은 바로 Judah에서 왔는데 열왕기하16:6에서 처음 사용되어진 것입니다. 유다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께 찬양, 혹은 찬양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의 뜻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의 뜻입니다. 즉 그만큼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가 이루어진 것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제가 성지 순례 중 이말 그대로 그들에게 물어 보았는데 당신은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까? 그러면 그들은 머뭇거리지 않고 물론 이지요. 그러면서 우리는 유대인입니다 그렇게 대답합니다. 이 모습은 오늘 우리 주변에서도 너무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까? 라고 물으면 “물론이지요 저는 장로교인입니다. 침례교인입니다.” 아니면 순복음 교회, 그것도 여의도라는 상표를 붙여서 여의도 순복음교회 장로, 집사입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아니면 우리 부모가 장로입니다, 아니면 우리 할아버지는 선교사였습니다, 우리 삼촌이 목사인걸요.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들은 다 라벨에 의존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이름에 의존한다고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지요? 그래도 교회에서는 이런 사람들 시험에 안 들게 하려고 자신이 교인이라 주장하면 그냥 교인으로 받아들여 놓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복음으로 주님을 영접하게 해야 하는 전도의 대상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두 번째 특성은 자신들의 구원을 어떠한 Rule과 Regulations에 의존 한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의지하며.. 율법의 대표가 바로 모세오경입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에 보면 율법을 주신 목적이 우리로 구원을 얻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 3:19)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유대인의 오류는 바로 율법을 전수 받은 것이 바로 구원의 증표로 여기는데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자신들이 신자라고 생각을 합니다. 마치 성경책만 가지고 있으면 구원을 얻는 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사람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 5: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바로 너희가 성경을 가졌다고 해서 영생을 얻은 것이 아니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미국 남부의 어느 교회에 참으로 열심히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어떠한 불의와도 타협하지 아니하고 무엇을 하여도 하나님 기뻐하시는 것만 골라 가며 하려고 애를 쓰던 교회였습니다. 혹시라도 잘못 된 사람들(술집에 드나드는 사람들, 도박하는 사람들, 혹은 디스코에나 다니며 춤추는 사람들이나 험담하는 사람들 등)이들이 물을 흐릴까봐 철저하게 교회를 지켰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더 그들의 선은 더 엄격하게 그어져 갔습니다. 이혼한 사람들, 여학생 얼굴이나 보러 오는 남학생들, 심지어는 청바지나 미니스커트를 입은 사람들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오로지 어떤 것이 예수를 올바로 믿는 것인가를 나름대로 원칙을 세우고 규칙을 정해서 철저하게 가르치고 배웠습니다. 그리고는 4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교회는 그 동안 그들이 보기에 이 세상 어느 교회보다도 더 거룩하고 흠 없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40년 그들이 바친 열정의 결과가 그 교회에 교인이 10명 남짓한 칠순 할아버지들 할머니들뿐이었다고 하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우리도 우리 교회가 바로 제가 방금 말씀 드린 것 같은 교회가 되기를 원하시는지요? 구원은 어떤 규칙이 아닙니다, 엄격한 규칙에서 오는 것도 아닙니다. 구원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이지 규칙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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