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기독교백주년기념관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 이슬람대책위원회(위원장 이상섭 목사) 주최로 ‘이슬람 세미나’가 열렸었다. 주최 측에서는 필자 외에 또 한 사람의 강사를 초청했는데 그분은 국가정보대학원 교수로 30년 간 봉직했고 이슬람을 30년 동안 연구해 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참으로 광범위하게 수집된 자료를 파워포인트로 정리해 보여주며 차근차근 설명하는데 그 많은 주제를 90분 간 어쩌면 그렇게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전달하는지 교수 경력 30년의 노련함을 재확인하면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내 강의는 점심식사 후에 배정되어 있어서 그 교수님과 식사를 하면서 강의를 통해 느낀 감동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한 가지 질문이 있다고 말했더니 웃으면서 뭐냐고 물으셨다. 나는 “강의 중에 ‘한 손에 칼을, 한 손에 꾸란을!’이라는 표어는 중세에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슬람을 폄하하기 위해서 지어낸 말이라고 하셨는데 토마스 아퀴나스가 지은 책을 직접 읽어 보셨습니까”라고 질문했다. 그 교수님께서는 머쓱해 하시면서 솔직하게 “그냥 다른 사람들이 하는 강의를 듣고 전달한 것”이라고 하셨다.
오래 이슬람을 연구하셨다는 교수님의 강의 내용을 트집 잡자는 것이 아니다. 그분조차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도록 열심히 작업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한양대의 어떤 교수는 문화인류학 강의보다 전국을 다니면서 이슬람 홍보 강의를 더 많이 하고 다닌다고 한다. 그가 하는 강의를 들으면 거의 같은 말의 반복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이제 서구의 눈으로 보지 말고 우리의 눈으로 이슬람을 보자”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우리의 눈이라는 것은 한국인의 눈이 아니라 ‘무슬림의 눈’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교수가 강조하는 또 한 가지는 바로 “’한 손에 칼을, 한 손에 꾸란을!’이라는 말은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슬람을 폄하하기 위해서 지어낸 말”이라는 것이다. 서양에서 이슬람 홍보 전문가로 유명한 아하마드 디다트(Ahmad Deedat)와 14년 간 기독교 설교자로 사역하다가 이슬람으로 개종했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유스프 에스테스(Yusuf Estes)라는 사람은 ‘한 손에 칼을, 한손에 꾸란을!’이라는 말은 ‘토마스 카알라일’이라는 사람이 지어낸 말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퀴나스’냐 ‘카알라일’이냐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상이 정말 이슬람에 있느냐 없느냐?’는 것이다. 만일 이슬람에 그런 사상이 있다면 사실 여부를 확인해 보지도 않고 그런 말을 생각 없이 인용한 모두가 본의 아니게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한양대학교 교수는 1995년부터 한국의 중고등학교 교과서 내용을 검토, 수정하는 일에 참여해 왔다. 놀라운 사실은 그 교수가 2007년 자신의 글을 통해 “이제 한국의 교과서에서 ‘이슬람!’하면 떠올리던 ‘한 손에 칼을, 한 손에 꾸란을!’이라는 표현을 완전히 제거했다”고 자랑스럽게 선언한 것이다.
그 교수가 말하는 것처럼 어쩌면 한국의 자라나는 학생들이 잘못된 교과서로 인해 이슬람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사회에 나오게 되었을 때 다문화 평화공존 시대에 불필요한 많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기에 ‘잘못된 내용’을 사전에 바로잡는 것이 국익을 위해서 좋은 일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로 꾸란에 그와 같은 사상이 없을 때의 이야기다. 반대로 꾸란에 정말 그런 사상이 있는데도 없는 것처럼 고쳐서 모두가 속도록 만들었다면 이것은 정말 유럽처럼 급속히 이슬람화로 가는 고속도로를 닦는 일에 최첨단 장비를 제공해 준 격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실인가를 알기 위해서 무슬림 학자들을 초청해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다. 이슬람 학자들의 말보다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이슬람의 경전인 꾸란(Quran)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슬람에는 타끼야(Taqiyah)라는 교리가 있어서 무슬림들은 얼마든지 자신들의 진심을 숨기고 혐오스럽지 않게 위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꾸란 2장225절, 꾸란 16장106절 등 참조)
꾸란에는 그렇게 해석할만한 너무 많은 구절들이 있기에 대표적인 몇 구절만 보는 것이 좋겠다. ‘이슬람의 칼의 구절’이라고 하는 꾸란 9장5절은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금지된 달이 지나면 너희가 발견하는 불신자마다 살해하고 그들을 포로로 잡거나 그들을 포위할 것이며 그들에 대비하여 복병하라. 그러나 그들이 회개하고 예배를 드리며 이슬람세를 낼 때는 그들을 위해 길을 열어 주리니 실로 알라는 관용과 자비로 충만하심이라.
여기서 금지된 달이란 비무슬림들에게 이슬람에 귀의하라고 주어진 4개월간의 유예기간을 말하는데 그 후에 발견되는 불신자는 죽이라는 것이다. 이 구절을 해석하는 이슬람 변증가들의 말을 들어 보면 이는 전쟁 시에 해당하는 명령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월남전에서 미군장교가 사병들에게 베트콩들을 발견하는 대로 죽이라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듯이 전쟁 시에 비무슬림들을 발견하는 대로 그 자리에서 죽이라는 것은 당연한 명령이 아니겠느냐”고 변명을 한다.
그러나 그 앞의 꾸란 9장2절을 보면 ‘4개월간을 자유로이 나라 안을 여행해 보라’고 하는데 이것을 어떻게 전쟁 시의 장면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그러니까 이 구절은 여행하는 비무슬림들을 죽이라는 것이다. 3절에서도 ‘회개하라(즉 이슬람을 받아들여라) 만일 거역한다면...고통스런 벌만이 있을 것이다’고 말하고 있다.
꾸란 9장3절이나 5절을 요약하면 ‘이슬람과 꾸란을 믿어라. 아니면 칼로 죽임을 당하리라’는 내용이다. 이것을 더 줄여서 표현하면 ‘한 손에 칼을, 한 손에 꾸란을!’이라는 표어가 되는 것이다.
이 뿐이 아니다. 꾸란의 도처에 이와 비슷한 사상이 발견된다.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받았다고 하는 메시지들은 평화를 주장한다. 그러나 그 평화는 그가 힘이 생길 때까지만 유효한 것이었다. 무함마드가 메디나의 최고 통치자가 되고 나서 처음 맞는 해 즉 AD624년 이후 그가 말한 모든 평화로운 계시들은 알라로부터 새로 받았다고 하는 잔인한 계시에 의해서 모두 취소되었다.(꾸란 2장106절)
무슬림 들이여! 너희가 얼마나 잔인한지를 알 수 있도록 가까이 있는 불신자들과 싸우라. 알라께서는 경건한 자들과 함께 계시느니라.(꾸란 9장123절)
여기서 싸우라고 번역된 말은 아랍어로 까탈라(Qatala, 죽이다)라는 말의 파생어로 원어로 까아탈라(Qaatala), 즉 죽이도록 노력하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싸우라는 이 명령은 말다툼이나 멱살잡이 정도가 아니라 죽일 목적으로 잔인하게 싸우라는 것이다. 그 후 이슬람의 역사는 피비린내 나는 정복 역사로 이어져 나갔다. 우상 숭배를 하던 유목민족들은 죽기 싫어서 억지로 이슬람을 받아들이고 무함마드에게 복종하는 척했다. 아래 꾸란 구절을 보면 무함마드도 그들의 심중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유목부족들은 “우리는 믿습니다”라고 말한다. 말해주어라. “너희들은 믿지 않으면서 믿는다”고 말한다. 너희들 마음 속에는 신앙심이 들어있지 않다. 그러나 너희들이 알라와 그 사도(무함마드)에게 진실로 복종한다면 너희의 어떤 행위의 보상도 조금도 감하지 않으신다. 알라는 관용과 자비로 충만하시니라.(꾸란49장14절)
AD624년 무함마드가 메디나의 최고 통치자가 되고 나서는 그 동안 힘이 없었기 때문에 ‘종교는 강제로 하지 말라’(꾸란 2장256절)고 하며 속으로 억눌러 왔던 분노를 더 이상 참아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그 때 메디나 시에는 무함마드를 비난하는 시(詩)를 지은 마르완(Marwan)의 딸 아스마(Asma)라는 여인이 있었다. 무함마드는 누가 나를 위해서 마르완을 딸을 처치하겠느냐고 묻자 그녀와 같은 민족 출신의 한 무슬림이 자원했다. 그는 밤에 그녀의 집에 숨어들어가 다섯 아이 중 제일 어린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잠들어 있는 그녀를 칼로 죽이고 돌아와 성공했음을 보고했다.
다음날 아침 잔인한 살해 소식을 듣고 모여든 사람들에게 “누구든지 이 여인의 죽음에 불만이 있는 사람은 나와 대결하자”고 공공연히 도전을 했으나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는 그녀의 남편까지도 입을 다물고 두려워 떨고 있었다. 그 때는 이미 이슬람의 힘이 누구도 함부로 대항할 수 없을 만큼 강해졌기 때문이었다.
‘한 손에 칼을, 한 손에 꾸란을!’이라는 말은 이슬람의 역사를 조금만 살펴보면 너무나 분명한 초기 이슬람의 원칙이었다. 이슬람 역사가들의 말에 의하면 632년 무함마드가 죽자 후계자 문제로 이슬람 지도부는 어수선해졌다. 죽음이 두려워 마지못해 이슬람을 받아들였던 많은 우상숭배자들이 그 틈을 이용하여 옛 신앙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에 이슬람 지도부는 무함마드의 친구였던 아부 바크르(Abu Bakr)를 서둘러 후계자로 승인했는데 그는 권력을 잡은 후 3개월 동안 이슬람 신앙을 버리려고 했던 사람들을 찾아내서 8만 명을 죽였다고 한다. 이는 무함마드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한 것이었다.(마크 가브리엘, 이슬람과 유대인, 글마당 p190)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무슬림 박사들이 이를 위장하느라고 많은 노력을 한 덕에 한국의 교과서에서 이런 표현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하니 심히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지구상에서 가장 철저히 이슬람 신앙을 실천하는 나라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기를 보면 아랍어로 이슬람의 신앙고백인 ‘알라 외에 다른 신이 없고 무함마드는 알라의 메신저다’라는 문장이 있고 밑에 긴 칼이 그려져 있다. 이 칼은 장식용도 아니요 호신용 은장도도 아니다. 전쟁 시에 사람을 죽이는데 사용되었던 장검이다.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직접 장검(長劍)을 빼 들고 27차례나 전쟁에 참여하여 잔인하게 사람들을 죽였다는 것을 부인할 수 있는 이슬람 학자는 없을 것이다.
가장 철저한 이슬람 국가를 상징하는 국기의 도안이 첫 줄에는 이슬람의 신앙고백이 있고 그 밑에는 사람 죽이는 칼이 그려져 있다면 먼저 그 칼을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로 바꿔놓고 ‘한 손에 칼을, 한 손에 꾸란을!’이라는 말이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만석 목사(한국이란인교회)
내 강의는 점심식사 후에 배정되어 있어서 그 교수님과 식사를 하면서 강의를 통해 느낀 감동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한 가지 질문이 있다고 말했더니 웃으면서 뭐냐고 물으셨다. 나는 “강의 중에 ‘한 손에 칼을, 한 손에 꾸란을!’이라는 표어는 중세에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슬람을 폄하하기 위해서 지어낸 말이라고 하셨는데 토마스 아퀴나스가 지은 책을 직접 읽어 보셨습니까”라고 질문했다. 그 교수님께서는 머쓱해 하시면서 솔직하게 “그냥 다른 사람들이 하는 강의를 듣고 전달한 것”이라고 하셨다.
오래 이슬람을 연구하셨다는 교수님의 강의 내용을 트집 잡자는 것이 아니다. 그분조차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도록 열심히 작업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한양대의 어떤 교수는 문화인류학 강의보다 전국을 다니면서 이슬람 홍보 강의를 더 많이 하고 다닌다고 한다. 그가 하는 강의를 들으면 거의 같은 말의 반복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이제 서구의 눈으로 보지 말고 우리의 눈으로 이슬람을 보자”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우리의 눈이라는 것은 한국인의 눈이 아니라 ‘무슬림의 눈’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교수가 강조하는 또 한 가지는 바로 “’한 손에 칼을, 한 손에 꾸란을!’이라는 말은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슬람을 폄하하기 위해서 지어낸 말”이라는 것이다. 서양에서 이슬람 홍보 전문가로 유명한 아하마드 디다트(Ahmad Deedat)와 14년 간 기독교 설교자로 사역하다가 이슬람으로 개종했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유스프 에스테스(Yusuf Estes)라는 사람은 ‘한 손에 칼을, 한손에 꾸란을!’이라는 말은 ‘토마스 카알라일’이라는 사람이 지어낸 말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퀴나스’냐 ‘카알라일’이냐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상이 정말 이슬람에 있느냐 없느냐?’는 것이다. 만일 이슬람에 그런 사상이 있다면 사실 여부를 확인해 보지도 않고 그런 말을 생각 없이 인용한 모두가 본의 아니게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한양대학교 교수는 1995년부터 한국의 중고등학교 교과서 내용을 검토, 수정하는 일에 참여해 왔다. 놀라운 사실은 그 교수가 2007년 자신의 글을 통해 “이제 한국의 교과서에서 ‘이슬람!’하면 떠올리던 ‘한 손에 칼을, 한 손에 꾸란을!’이라는 표현을 완전히 제거했다”고 자랑스럽게 선언한 것이다.
그 교수가 말하는 것처럼 어쩌면 한국의 자라나는 학생들이 잘못된 교과서로 인해 이슬람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사회에 나오게 되었을 때 다문화 평화공존 시대에 불필요한 많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기에 ‘잘못된 내용’을 사전에 바로잡는 것이 국익을 위해서 좋은 일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로 꾸란에 그와 같은 사상이 없을 때의 이야기다. 반대로 꾸란에 정말 그런 사상이 있는데도 없는 것처럼 고쳐서 모두가 속도록 만들었다면 이것은 정말 유럽처럼 급속히 이슬람화로 가는 고속도로를 닦는 일에 최첨단 장비를 제공해 준 격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실인가를 알기 위해서 무슬림 학자들을 초청해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다. 이슬람 학자들의 말보다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이슬람의 경전인 꾸란(Quran)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슬람에는 타끼야(Taqiyah)라는 교리가 있어서 무슬림들은 얼마든지 자신들의 진심을 숨기고 혐오스럽지 않게 위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꾸란 2장225절, 꾸란 16장106절 등 참조)
꾸란에는 그렇게 해석할만한 너무 많은 구절들이 있기에 대표적인 몇 구절만 보는 것이 좋겠다. ‘이슬람의 칼의 구절’이라고 하는 꾸란 9장5절은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금지된 달이 지나면 너희가 발견하는 불신자마다 살해하고 그들을 포로로 잡거나 그들을 포위할 것이며 그들에 대비하여 복병하라. 그러나 그들이 회개하고 예배를 드리며 이슬람세를 낼 때는 그들을 위해 길을 열어 주리니 실로 알라는 관용과 자비로 충만하심이라.
여기서 금지된 달이란 비무슬림들에게 이슬람에 귀의하라고 주어진 4개월간의 유예기간을 말하는데 그 후에 발견되는 불신자는 죽이라는 것이다. 이 구절을 해석하는 이슬람 변증가들의 말을 들어 보면 이는 전쟁 시에 해당하는 명령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월남전에서 미군장교가 사병들에게 베트콩들을 발견하는 대로 죽이라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듯이 전쟁 시에 비무슬림들을 발견하는 대로 그 자리에서 죽이라는 것은 당연한 명령이 아니겠느냐”고 변명을 한다.
그러나 그 앞의 꾸란 9장2절을 보면 ‘4개월간을 자유로이 나라 안을 여행해 보라’고 하는데 이것을 어떻게 전쟁 시의 장면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그러니까 이 구절은 여행하는 비무슬림들을 죽이라는 것이다. 3절에서도 ‘회개하라(즉 이슬람을 받아들여라) 만일 거역한다면...고통스런 벌만이 있을 것이다’고 말하고 있다.
꾸란 9장3절이나 5절을 요약하면 ‘이슬람과 꾸란을 믿어라. 아니면 칼로 죽임을 당하리라’는 내용이다. 이것을 더 줄여서 표현하면 ‘한 손에 칼을, 한 손에 꾸란을!’이라는 표어가 되는 것이다.
이 뿐이 아니다. 꾸란의 도처에 이와 비슷한 사상이 발견된다.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받았다고 하는 메시지들은 평화를 주장한다. 그러나 그 평화는 그가 힘이 생길 때까지만 유효한 것이었다. 무함마드가 메디나의 최고 통치자가 되고 나서 처음 맞는 해 즉 AD624년 이후 그가 말한 모든 평화로운 계시들은 알라로부터 새로 받았다고 하는 잔인한 계시에 의해서 모두 취소되었다.(꾸란 2장106절)
무슬림 들이여! 너희가 얼마나 잔인한지를 알 수 있도록 가까이 있는 불신자들과 싸우라. 알라께서는 경건한 자들과 함께 계시느니라.(꾸란 9장123절)
여기서 싸우라고 번역된 말은 아랍어로 까탈라(Qatala, 죽이다)라는 말의 파생어로 원어로 까아탈라(Qaatala), 즉 죽이도록 노력하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싸우라는 이 명령은 말다툼이나 멱살잡이 정도가 아니라 죽일 목적으로 잔인하게 싸우라는 것이다. 그 후 이슬람의 역사는 피비린내 나는 정복 역사로 이어져 나갔다. 우상 숭배를 하던 유목민족들은 죽기 싫어서 억지로 이슬람을 받아들이고 무함마드에게 복종하는 척했다. 아래 꾸란 구절을 보면 무함마드도 그들의 심중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유목부족들은 “우리는 믿습니다”라고 말한다. 말해주어라. “너희들은 믿지 않으면서 믿는다”고 말한다. 너희들 마음 속에는 신앙심이 들어있지 않다. 그러나 너희들이 알라와 그 사도(무함마드)에게 진실로 복종한다면 너희의 어떤 행위의 보상도 조금도 감하지 않으신다. 알라는 관용과 자비로 충만하시니라.(꾸란49장14절)
AD624년 무함마드가 메디나의 최고 통치자가 되고 나서는 그 동안 힘이 없었기 때문에 ‘종교는 강제로 하지 말라’(꾸란 2장256절)고 하며 속으로 억눌러 왔던 분노를 더 이상 참아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그 때 메디나 시에는 무함마드를 비난하는 시(詩)를 지은 마르완(Marwan)의 딸 아스마(Asma)라는 여인이 있었다. 무함마드는 누가 나를 위해서 마르완을 딸을 처치하겠느냐고 묻자 그녀와 같은 민족 출신의 한 무슬림이 자원했다. 그는 밤에 그녀의 집에 숨어들어가 다섯 아이 중 제일 어린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잠들어 있는 그녀를 칼로 죽이고 돌아와 성공했음을 보고했다.
다음날 아침 잔인한 살해 소식을 듣고 모여든 사람들에게 “누구든지 이 여인의 죽음에 불만이 있는 사람은 나와 대결하자”고 공공연히 도전을 했으나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는 그녀의 남편까지도 입을 다물고 두려워 떨고 있었다. 그 때는 이미 이슬람의 힘이 누구도 함부로 대항할 수 없을 만큼 강해졌기 때문이었다.
‘한 손에 칼을, 한 손에 꾸란을!’이라는 말은 이슬람의 역사를 조금만 살펴보면 너무나 분명한 초기 이슬람의 원칙이었다. 이슬람 역사가들의 말에 의하면 632년 무함마드가 죽자 후계자 문제로 이슬람 지도부는 어수선해졌다. 죽음이 두려워 마지못해 이슬람을 받아들였던 많은 우상숭배자들이 그 틈을 이용하여 옛 신앙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에 이슬람 지도부는 무함마드의 친구였던 아부 바크르(Abu Bakr)를 서둘러 후계자로 승인했는데 그는 권력을 잡은 후 3개월 동안 이슬람 신앙을 버리려고 했던 사람들을 찾아내서 8만 명을 죽였다고 한다. 이는 무함마드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한 것이었다.(마크 가브리엘, 이슬람과 유대인, 글마당 p190)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무슬림 박사들이 이를 위장하느라고 많은 노력을 한 덕에 한국의 교과서에서 이런 표현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하니 심히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지구상에서 가장 철저히 이슬람 신앙을 실천하는 나라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기를 보면 아랍어로 이슬람의 신앙고백인 ‘알라 외에 다른 신이 없고 무함마드는 알라의 메신저다’라는 문장이 있고 밑에 긴 칼이 그려져 있다. 이 칼은 장식용도 아니요 호신용 은장도도 아니다. 전쟁 시에 사람을 죽이는데 사용되었던 장검이다.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직접 장검(長劍)을 빼 들고 27차례나 전쟁에 참여하여 잔인하게 사람들을 죽였다는 것을 부인할 수 있는 이슬람 학자는 없을 것이다.
가장 철저한 이슬람 국가를 상징하는 국기의 도안이 첫 줄에는 이슬람의 신앙고백이 있고 그 밑에는 사람 죽이는 칼이 그려져 있다면 먼저 그 칼을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로 바꿔놓고 ‘한 손에 칼을, 한 손에 꾸란을!’이라는 말이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만석 목사(한국이란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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