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8월15일은 광복 63주년을 맞이한다. 재미 교포들은 미국의 독립기념일을 축하하면서 또한 대한민국 해방기념일을 더 진하게 경축한다. 광복은 자유의 승리다. 조물주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 중에 가장 귀한 것은 자유다.
신학자 토마스 아큐나스는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에 "그리스도인들의 성숙도를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이 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얼마나 자유롭게 사느냐에 있다"고 한 말은 명언 중에 명언이다.
자유하면 연상되는 사람이 있다. 헨리 패트릭이다. "나에게 자유를 달라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선언이다. 그만큼 인간은 신으로부터 받은 귀한 자유를 강도에게서도 도둑맞을 수 없다는 뜻이다.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인가? 사람이 의식주를 해결하고 말과 글을 자유롭게 하고 쓰고 모임과 단체를 구성하고 종교를 선택하고 거주의 자유를 갖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나라를 빼았긴 식민지하에서는 불가능하다. 또한 잘못된 지도자를 만나면 역시 자유가 없는 독재자의 노예로 전락된다. 공산주의의 본 고장인 러시아나 붉은 물이 진하게 들었던 중국이 한 세대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진 가장 큰 원인은 국민의 자유를 말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질병으로부터의 자유다. 잠깐 앓는 감기로부터 시작해 수많은 병에서 가능한 빨리 해방돼야 한다. 더욱 큰 쇠사슬은 불안이다. 건강, 직업, 사업, 자녀, 사랑 등. 사실 그런 불안은 내가 스스로 만든 노예의 쇠 사슬에 얽매어 허우적거릴 때가 더 많다.
베네딕트파 수도원의 수도사들 각방에는 색다른 글이 걸려 있다. "만일 수도생활이 싫으면 수도복을 벗고 이곳에 들어올 때 입었던 옷으로 갈아입고 나가도 된다"라는 것이다. 옛 어른들이 말하듯 "평양감사도 자기가 싫으면 안 한다"고 하듯 크고 작은 선택의 기회가 일생 따른다. 문제는 '선택의 기준이 무엇인가'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쪽을 택한다. 그것이 돈 일수도 있고 권력이나 명예, 자기의 욕심을 채우는 수단일 수도 있다. 그것을 욕망의 노예라고 한다. 그러나 뜻있는 사람들의 기준은 다르다. 어디까지나 정의와 의리 그리고 참 사랑을 기준으로 삼는다. 그런 사람들은 욕망의 노예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사는 사람들이다.
지금의 이란에 우르 라는 곳에 독특한 두 사람이 살았다. 롯이라는 사람은 어려서 양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었다. 또 한 사람은 롯의 백부인 아브라함이다. 그가 롯의 양 아버지 노릇을 해 준 덕분에, 롯은 바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부모형제친척을 떠나 내가 지시하는 곳으로 고향을 떠나라는 지시를 내리자 그는 갈등이 생겼다. 아직 독립생활 하기는 어린 롯을 떼 놓고 혼자 갈 수가 없어 신의 명령을 어기면서 까지 조카 롯을 데리고 고향을 떠났다. 두 사람은 이국 땅에 갔지만 열심히 성실하게 일해서 부자소리를 듣게 됐다. 백부는 어느 날 롯에게 많은 짐승을 떼 주면서 독립해 살도록 해주었다.
그러나, 몇 년 후에 생각지 못한 문제가 생겼다. 물과 풀이 한정된 곳에서 두 집의 늘어나는 짐승들이 같이 살기는 역부족이었다. 하루는 백부가 조카에게 사정을 설명하면서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고 네가 오른쪽으로 가면 나는 왼쪽으로 가겠다고 제의를 하자 조카는 기다렸다는 듯이 물과 풀이 많은 소돔과 고모라 쪽을 선택했다. 백부는 박토인 가나안에 거하게 되었다. 백부는 얼마나 섭섭했을까! 그 때 롯이 "백부님이 먼저 정하십시오 그 후에 제가 따르겠습니다. 제가 오늘 있게 된 것이나 또 부자가 된 것이 오직 백부님 덕택입니다"라고 한마디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두 사람의 결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됐다. 기름진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한 롯과 그의 아내, 딸들 또한 주민들은 한결같이 롯을 닮아서 자기들의 욕망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라 싸움이 끊이지 않고 성적으로 타락하고 도덕도 윤리도 없는 사회가 됐다. 결국 하늘의 분노가 끝에 달해서 어느 날 비처럼 쏟아 지는 유황불에 그 기름진 땅은 흙으로 덮어졌다.
늘 남을 배려하고 사랑을 쫓아 사는 백부 아브라함은 그 때는 손해를 봤지만 하나님은 다른 면으로 엄청난 복을 그에게 갚아 주셨다. 선택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과 사랑을 중시했기에 가는 곳 마다 복을 받은 것이다. 그는 일생동안 욕심에서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그렇다. 욕심을 가능한 주리고 남을 배려하면 자유인이 되고 여러 면으로 복된 일이다.
연락처) 650-610-9303
신학자 토마스 아큐나스는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에 "그리스도인들의 성숙도를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이 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얼마나 자유롭게 사느냐에 있다"고 한 말은 명언 중에 명언이다.
자유하면 연상되는 사람이 있다. 헨리 패트릭이다. "나에게 자유를 달라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선언이다. 그만큼 인간은 신으로부터 받은 귀한 자유를 강도에게서도 도둑맞을 수 없다는 뜻이다.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인가? 사람이 의식주를 해결하고 말과 글을 자유롭게 하고 쓰고 모임과 단체를 구성하고 종교를 선택하고 거주의 자유를 갖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나라를 빼았긴 식민지하에서는 불가능하다. 또한 잘못된 지도자를 만나면 역시 자유가 없는 독재자의 노예로 전락된다. 공산주의의 본 고장인 러시아나 붉은 물이 진하게 들었던 중국이 한 세대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진 가장 큰 원인은 국민의 자유를 말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질병으로부터의 자유다. 잠깐 앓는 감기로부터 시작해 수많은 병에서 가능한 빨리 해방돼야 한다. 더욱 큰 쇠사슬은 불안이다. 건강, 직업, 사업, 자녀, 사랑 등. 사실 그런 불안은 내가 스스로 만든 노예의 쇠 사슬에 얽매어 허우적거릴 때가 더 많다.
베네딕트파 수도원의 수도사들 각방에는 색다른 글이 걸려 있다. "만일 수도생활이 싫으면 수도복을 벗고 이곳에 들어올 때 입었던 옷으로 갈아입고 나가도 된다"라는 것이다. 옛 어른들이 말하듯 "평양감사도 자기가 싫으면 안 한다"고 하듯 크고 작은 선택의 기회가 일생 따른다. 문제는 '선택의 기준이 무엇인가'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쪽을 택한다. 그것이 돈 일수도 있고 권력이나 명예, 자기의 욕심을 채우는 수단일 수도 있다. 그것을 욕망의 노예라고 한다. 그러나 뜻있는 사람들의 기준은 다르다. 어디까지나 정의와 의리 그리고 참 사랑을 기준으로 삼는다. 그런 사람들은 욕망의 노예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사는 사람들이다.
지금의 이란에 우르 라는 곳에 독특한 두 사람이 살았다. 롯이라는 사람은 어려서 양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었다. 또 한 사람은 롯의 백부인 아브라함이다. 그가 롯의 양 아버지 노릇을 해 준 덕분에, 롯은 바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부모형제친척을 떠나 내가 지시하는 곳으로 고향을 떠나라는 지시를 내리자 그는 갈등이 생겼다. 아직 독립생활 하기는 어린 롯을 떼 놓고 혼자 갈 수가 없어 신의 명령을 어기면서 까지 조카 롯을 데리고 고향을 떠났다. 두 사람은 이국 땅에 갔지만 열심히 성실하게 일해서 부자소리를 듣게 됐다. 백부는 어느 날 롯에게 많은 짐승을 떼 주면서 독립해 살도록 해주었다.
그러나, 몇 년 후에 생각지 못한 문제가 생겼다. 물과 풀이 한정된 곳에서 두 집의 늘어나는 짐승들이 같이 살기는 역부족이었다. 하루는 백부가 조카에게 사정을 설명하면서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고 네가 오른쪽으로 가면 나는 왼쪽으로 가겠다고 제의를 하자 조카는 기다렸다는 듯이 물과 풀이 많은 소돔과 고모라 쪽을 선택했다. 백부는 박토인 가나안에 거하게 되었다. 백부는 얼마나 섭섭했을까! 그 때 롯이 "백부님이 먼저 정하십시오 그 후에 제가 따르겠습니다. 제가 오늘 있게 된 것이나 또 부자가 된 것이 오직 백부님 덕택입니다"라고 한마디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두 사람의 결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됐다. 기름진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한 롯과 그의 아내, 딸들 또한 주민들은 한결같이 롯을 닮아서 자기들의 욕망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라 싸움이 끊이지 않고 성적으로 타락하고 도덕도 윤리도 없는 사회가 됐다. 결국 하늘의 분노가 끝에 달해서 어느 날 비처럼 쏟아 지는 유황불에 그 기름진 땅은 흙으로 덮어졌다.
늘 남을 배려하고 사랑을 쫓아 사는 백부 아브라함은 그 때는 손해를 봤지만 하나님은 다른 면으로 엄청난 복을 그에게 갚아 주셨다. 선택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과 사랑을 중시했기에 가는 곳 마다 복을 받은 것이다. 그는 일생동안 욕심에서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그렇다. 욕심을 가능한 주리고 남을 배려하면 자유인이 되고 여러 면으로 복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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