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성경 중에 복음서와 사도행전은 돌탕들의 간증들로 가득 차 있다. 돌탕은 '돌아온 탕자의 줄인 말이다. '돌아온 탕자'는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누가 복음 15장의 이야기이다. 이 비유에 있어 이제껏 강조된 해석은 아버지 측면에서는 간절히 기다리는 아버지, 그리고 용서할 뿐 아니라 사랑하고 아들로 대접하는 아버지 그리고 아들 측면에서는 믿음으로 돌아온 탕자, 겸손해져 아들이 아니라 종으로 돌아온 탕자 등에 그 초점이 맞추어 져 있다.

그러나 돌탕이야기의 백미(白眉)는 아무래도 대대적인 돌탕 환영파티이다. 원조 돌탕은 맏아들의 불평에도 불구하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버지의 대대적 환영파티로 해피엔딩을 마지한다. 그러나 현대교회는 질펀한 돌탕파티가 사라지고 집탕(집안의 탕자)인 맏아들의 불평만 소복하다.

한국 교회는 한때 너무 많은 가짜 돌탕 간증집회가 횡횡하여 교계를 어지럽게 한 적이 있다. 가짜 돌탕들은 진짜보다 더 진짜스럽게 연기하여 순전한 성도들을 울리고 웃겼다. 그러나 모든 돌탕들이 가짜는 아니었기에 진짜 돌탕 파티들은 성도들의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감동과 감사를 새겨 넣기에 충분하였고 새로운 돌탕들을 맞기 위한 훈련이 잘 되었던 것이다.

이런 돌탕들의 출현은 교회를 새롭게 하고 활력을 불어 넣는 윤활유였다. 나도 한 사람의 돌탕으로 수많은 젊은이들 앞에서 간증한 적이 있다. 케이스 글라스라고 하는 화란인 선교사의 전도 설교에 앞서 구원 간증한 것인데 수십년전 일인데도 생생하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 하면서 설교자보다 더 간절하게 외쳤던 것이다. 그 짧은 간증을 통하여 새로운 돌탕들이 탄생하였고 그들과 오랫동안 교유하였다.

어떤 이민 목회자 한 분이 돌탕복음이란 책을 써 공전의 히트를 쳤다는데 그 내용인즉 사역하면서 경험한 수많은 ‘돌탕’들과의 만남과 신앙과 세상의 경계지대를 살던 ‘덜탕’들과의 만남을 이 책에서 풀어놓고 있다. 참으로 귀한 일이다. 앞으로도 돌탕행전이 계속되기를 기도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대교회가 돌탕들의 눈물과 웃음이 범벅이된 파티가 사라져 버리고 집탕들의 싸움과 고성이 만발한 것이 현실이 아닌가! 그런가 하면 이 집탕들이 이 집 저 집을 제집 드나들듯이 드나드는 바람에 소위 새 신자 모임은 돌탕들의 모임이 아닌 집탕들의 모임으로 전락하고 말았으니 잡탕모임이라고나 할까? 단언컨대 돌탕없는 집탕들은 잡탕일뿐아다.

세간에 돌싱이란 신조어가 유행이다 돌아온 싱글 곧 젊은 이혼녀나 이혼남을 두고 하는 말인데 그들의 성가(聲價)가 대단하단다. 오죽하면 돌아온 화려한 싱글이라 하겠는가! 그러나 돌탕이 돌싱보다 못해서는 말이 안된다. '돌아온 화려한 탕자'라고는 못한다 하더라도 '돌아온 탕자를 대대적으로 환영하는 맏아들'이라는 술로건을 내걸어야 한다. 하루빨리 교회안에 돌탕 파티가 재개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