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사람에게 있어서 속수무책의 세력인 동시에 모든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가장 두려워하는 불랙홀이다. 키엘케골은 인간의 생애를 “죽음에 이르는 병을 앓고 있는 존재”라고 정의하였고, 하이데거는 인생을 죽음으로 향하는 존재라고 보았다. 그래서 다섯 가지 명제를 제시하였다. 그것은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 죽음은 언제 올지 모른다. 죽음은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다. 죽음은 가장 정확하다. 죽음은 결코 반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전에 세상을 떠난 세계적인 팝 스타 마이클 잭슨이 매해 약값으로만 수천 만원을 지불하였다 한다. 그럼에도 그는 죽음을 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보통 죽음은 끝을 의미한다. 어쩔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이르렀을 때 ‘나는 죽었다.’고 한다. 그리고 부엉이 바위 아래로 낙하한 분도 있다. 이 말대로 죽음은 절망의 끝이다. 도저히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한계인 것이다.

죽을병에 걸렸을 지라도 치료 받고 있는 환자는 대부분 살 희망을 가진다. 그러나 치료 포기를 선언할 때 그 환자는 희망도 죽고 살 의욕도 죽고, 미래도 죽는다. 이같이 인생에게 최대의 적은 죽음이지 가난이나 고생이나 못난 것이 아니다. 그렇게도 바람기 많아 속 태우던 남편이건만 살아만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것이 사람이며, 오랫동안 병 속에서 밥 한 끼니 할 수 없는 부인 곁에 남자의 까만 눈동자 8개(남편 아들 셋)가 근심어린 눈으로 그저 누워만 있어도 좋으니 제발 살아만 다오 한다. 죽음은 모든 것을 끝내고 말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그의 사랑하는 자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오셨을 때는 그가 무덤 속에 있은 지가 벌써 나흘이나 되었다. 유대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날 바로 장사한다. 많은 사람들이 오라버니를 잃은 마르다와 마리아를 위로하러 온 그 장소에 예수께서 오신 것이다. 죽음의 장소에 예수께서 오시면 문제가 달라진다. 예수는 생명의 부활이신 까닭이다. 예수님은 그 자신이 부활하시므로 죽음을 정복하셨다. 부활이란 무엇인가? 부활은 더도 덜도 아닌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명령하시는 생명의 부활의 주체이신 예수의 명령에 죽음은 굴복하고 나사로는 다시 살아났다. 성경 중에 이처럼 신나고 흥분되는 말씀은 다시 없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그러나 오늘날 이 세상에 실로 많은 교인들이 예수를 부활의 주로 믿지 않는다. 심지어 목사가운데도 믿지 않는 분들이 있다. 모 여자대학에서 구 순(旬)의 나이에 아직도 성경을 강의하는 정정한 목사가 있는데 지식인들에게 보통 인기가 많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 부활을 믿지 않는다. 그러니 장래 육체적 부활을 믿지 못하는 것은 불문가지 이다. 그의 성경 강의에 수백의 지성인이 몰린다 하여도 그런 사람의 신앙은, 안됐지만, 다 헛것이다. 부활은 빼놓고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의 신앙은 거짓인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