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날의 기억은 생생하다. 1998년 8월, 모스크바의 여름은 매우 아름답고 화창하다. 한국에서 교수님 한 분이 선교사님들을 위한 강의를 하러 오셔서 우리집에 모시고 있는 중에, 시간을 내어 함께 모스크바 시내 구경을 나갔다.
지하철을 타고서 “극장(찌아뜨랄리나야)”이라 이름하는 지하철역으로 가는 중에 지하철 열차 안에서 생긴 일이다. 나는 이것을 ‘3분 간의 전쟁’이라고 명명하고 짧은 글을 적는다.
모스크바 지하철은 1940~60년대에 만들어진 것인데, 그 웅장함과 편리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로 잘 되어 있다. 50~100m의 땅 지하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화려하고 웅장한 지하철 내부의 모습이 보는 이들을 감동시킨다. 조금 시끄럽기는 하지만 달리는 속도 하며 출퇴근시간에는 정확하게 30초 간격으로 들어오는 지하철을 보면서 그 기술과 운영의 묘에 감탄하고, 지하철 내부에 장식되어 있는 예술성에 누구나 한 번은 탄성을 울리게 된다.
어느 정거장에서 전동차가 멈췄다가 출발하였는데, 조금 전까지도 보이지도 않았던, 그 유명한 집시들이 떼거지로 15-20명 정도 나타나서 나를 빙 둘러싸고 접근해 오는 것이 아닌가? ‘아차! 이거 큰일 났구나’ 하면서 긴장감이 돌기 시작하였다. 함께한 교수님에게 저 멀리 피하라고 소리치고, 특히 주머니와 지갑 여권을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고, 나는 곧장 방어 태세에 들어갔다.
보아하니 대부분 아이들이었다. 5~6세의 꼬마들과 14-5세의 여자 아이들이 등에 어린아이들을 업고서, 말없는 그들의 눈은 먹이를 발견한 사자처럼 삼킬 기회를 노리는 듯 보였다. 돈을 달라고 모두들 손을 벌린다. 수십 개의 손이 나를 향하여 벌려진 것이다. 잠자는 아이를 들쳐 업고, 손을 벌리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안쓰럽다는 측은한 생각이 들기도 하였지만, 이러한 장면은 영화 속에나 볼 수 있을 만한 일이 아닌가? 나는 주인공처럼 착각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1994년도, 오래 전이었지만 나는 이런 집시를 만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러시아 말을 오직 두 마디, “감사합니다(스빠시버)”와 “안 돼(닐자)”밖에 알지 못한 때였다. 그 때의 위기를 넘기 것은 “닐자(안 돼)”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그 때, 함께하였던 나이 많은 목사님, 그 목사님을 둘러싸고 집시 아이들은 목을 조이며 안주머니 속으로, 가방 속으로, 뒷주머니 하며, 수십 개의 손들이 들어가며 아수라장이 되었던 그 순간, 급기야는 윗양복이 벗겨지고 있었다. 그런데 앞서 가던 내가 뒤를 돌아보는 순간 그 장면을 목격하고, 소리를 치면서 그들을 향하여 돌진을 하였던 것이다. 지하철 내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다니고 있었지만, 모두들 구경꾼이 되어 있는 그 상황에 나는 그들을 향하여 “닐자(안 돼)” 하면서 고함을 치던 그때가 다시 생각이 났다.
워낙 반격이 심하고, 고함을 쳤더니, 그들은 황당하여 물러갔던 것이다. “어, 어, 어” 하시면서 당황해 하시던 그 목사님, 위기는 넘겼지만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는 목사님에게 할 말이 없었다. “주님,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기도하면서 다시 길을 갔던 그 때, 그 시절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면서 다시금 과거의 현장에 서 있는 오늘, 나의 실상인 것이다. 이 아이들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1단계 작전이 시작되었다. 모두들 손을 내밀고 나의 반응과 태도를 보면서 구걸을 한다. 나는 묵묵부답으로 방어 자세를 취하였다. 그들은 낯선 이방인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1분이 지나도록 반응을 보이지 않자, 제2단계 작전에 돌입 하였다. 모두들 한 발씩 일보 전진. 그리고 어떤 아이는 내 손을 붙잡고, 다른 아이는 내 얼굴을 만지고, 짧은 턱수염을 만지면서 덤벼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를 1분이 지났다. 그러는 동안의 나는 더욱 더 단단히 나를 경계하고 도전하였다.
그들은 이제 시간이 없는지라. 3단계 긴박한 작전에 돌입하였다. 아이들이 한꺼번에 육탄전으로 공격하여 들어오는게 아닌가? 가방을 빼앗고, 옷을 당기고, 밀치고 덮치고 치고 받고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나의 고함소리와 방어가 격하게 진행되었다. 정신이 없었다. 밀치고 당기는 순간 나의 방어자세는 완전 다 풀어지고, 그 순간 어느새 한 아이의 손이 가방을 열고 손이 들어갔다 나오는 것이 아닌가? 고개를 돌려보니 지갑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순간 손으로 낚아챘는데, 그만 지갑이 땅에 떨어졌다.
잽싸게 몸을 돌려 지갑을 주우려고 보니 이게 웬일, 수많은 발들이 지갑을 밟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나는 주먹으로 그 발들을 쳐내면서 필사적으로 지갑을 움켜쥐었다. 지갑을 털면서 가방에 다시 집어넣으니, 전동차가 다음 정거장에 멈추어 섰다. 정확하게 3분간에 이루어진 사건이었다. 어느새 지하철은 내리고 타는 사람들로 붐비고 아이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멍하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저 쪽에 교수님이 새파랗게 질려서 떨고 있었다. 교수님, 오늘 정말 좋은 구경 하셨습니다.
지하철에 함께 타고 가는 수많은 러시아 사람들은 구경만 하고 있을 뿐 누런 동양인이 당하는 수모를 구경만 하고 있었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지하철은 달리고 사람들은 다시 시끄럽게 떠들면서 지하철은 덜컹거린다.
이 아이들은, 손찌검을 하거나 때리면 안된다. 보이지 않는 그 어딘가에 덩치가 큰 놈들이 망을 보면서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들은 살아간다. 러시아 남부지방으로 가면 이들이 사는 지역이 있다. 그들은 아주 좋은 아파트를 짓고 함께 공동체로 살아간다. 상당히 부자로 살아간다.
지금도 집시들은 러시아를 비롯하여 각국을 헤매면서 살아간다. 지금도 시내를 거닐다가 혹은 그들의 모습을 보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머리에 수건을 쓰고, 어린아이들이 어린아이를 업고……. 막가는 인생들, 그들이 떼를 지어 덤비면 당할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 지역에서는 집시들을 대상으로 선교하는 사람들이 있다. 러시아 집시와는 좀 다른 형태의 집시들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얼마나 어려울까 생각을 해본다. 깨어 근신하라는 말씀을 다시금 기억하면서 세상이 전쟁터요 영적 싸움의 현장인 것을 깊이 새기는 아찔한 순간들이었다. 현장에서는 예기치 못한 수많은 일들이 발생한다.^^
현장에서 생긴 일
Sergei(모스크바 선교사)
지하철을 타고서 “극장(찌아뜨랄리나야)”이라 이름하는 지하철역으로 가는 중에 지하철 열차 안에서 생긴 일이다. 나는 이것을 ‘3분 간의 전쟁’이라고 명명하고 짧은 글을 적는다.
모스크바 지하철은 1940~60년대에 만들어진 것인데, 그 웅장함과 편리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로 잘 되어 있다. 50~100m의 땅 지하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화려하고 웅장한 지하철 내부의 모습이 보는 이들을 감동시킨다. 조금 시끄럽기는 하지만 달리는 속도 하며 출퇴근시간에는 정확하게 30초 간격으로 들어오는 지하철을 보면서 그 기술과 운영의 묘에 감탄하고, 지하철 내부에 장식되어 있는 예술성에 누구나 한 번은 탄성을 울리게 된다.
어느 정거장에서 전동차가 멈췄다가 출발하였는데, 조금 전까지도 보이지도 않았던, 그 유명한 집시들이 떼거지로 15-20명 정도 나타나서 나를 빙 둘러싸고 접근해 오는 것이 아닌가? ‘아차! 이거 큰일 났구나’ 하면서 긴장감이 돌기 시작하였다. 함께한 교수님에게 저 멀리 피하라고 소리치고, 특히 주머니와 지갑 여권을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고, 나는 곧장 방어 태세에 들어갔다.
보아하니 대부분 아이들이었다. 5~6세의 꼬마들과 14-5세의 여자 아이들이 등에 어린아이들을 업고서, 말없는 그들의 눈은 먹이를 발견한 사자처럼 삼킬 기회를 노리는 듯 보였다. 돈을 달라고 모두들 손을 벌린다. 수십 개의 손이 나를 향하여 벌려진 것이다. 잠자는 아이를 들쳐 업고, 손을 벌리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안쓰럽다는 측은한 생각이 들기도 하였지만, 이러한 장면은 영화 속에나 볼 수 있을 만한 일이 아닌가? 나는 주인공처럼 착각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1994년도, 오래 전이었지만 나는 이런 집시를 만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러시아 말을 오직 두 마디, “감사합니다(스빠시버)”와 “안 돼(닐자)”밖에 알지 못한 때였다. 그 때의 위기를 넘기 것은 “닐자(안 돼)”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그 때, 함께하였던 나이 많은 목사님, 그 목사님을 둘러싸고 집시 아이들은 목을 조이며 안주머니 속으로, 가방 속으로, 뒷주머니 하며, 수십 개의 손들이 들어가며 아수라장이 되었던 그 순간, 급기야는 윗양복이 벗겨지고 있었다. 그런데 앞서 가던 내가 뒤를 돌아보는 순간 그 장면을 목격하고, 소리를 치면서 그들을 향하여 돌진을 하였던 것이다. 지하철 내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다니고 있었지만, 모두들 구경꾼이 되어 있는 그 상황에 나는 그들을 향하여 “닐자(안 돼)” 하면서 고함을 치던 그때가 다시 생각이 났다.
워낙 반격이 심하고, 고함을 쳤더니, 그들은 황당하여 물러갔던 것이다. “어, 어, 어” 하시면서 당황해 하시던 그 목사님, 위기는 넘겼지만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는 목사님에게 할 말이 없었다. “주님,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기도하면서 다시 길을 갔던 그 때, 그 시절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면서 다시금 과거의 현장에 서 있는 오늘, 나의 실상인 것이다. 이 아이들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1단계 작전이 시작되었다. 모두들 손을 내밀고 나의 반응과 태도를 보면서 구걸을 한다. 나는 묵묵부답으로 방어 자세를 취하였다. 그들은 낯선 이방인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1분이 지나도록 반응을 보이지 않자, 제2단계 작전에 돌입 하였다. 모두들 한 발씩 일보 전진. 그리고 어떤 아이는 내 손을 붙잡고, 다른 아이는 내 얼굴을 만지고, 짧은 턱수염을 만지면서 덤벼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를 1분이 지났다. 그러는 동안의 나는 더욱 더 단단히 나를 경계하고 도전하였다.
그들은 이제 시간이 없는지라. 3단계 긴박한 작전에 돌입하였다. 아이들이 한꺼번에 육탄전으로 공격하여 들어오는게 아닌가? 가방을 빼앗고, 옷을 당기고, 밀치고 덮치고 치고 받고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나의 고함소리와 방어가 격하게 진행되었다. 정신이 없었다. 밀치고 당기는 순간 나의 방어자세는 완전 다 풀어지고, 그 순간 어느새 한 아이의 손이 가방을 열고 손이 들어갔다 나오는 것이 아닌가? 고개를 돌려보니 지갑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순간 손으로 낚아챘는데, 그만 지갑이 땅에 떨어졌다.
잽싸게 몸을 돌려 지갑을 주우려고 보니 이게 웬일, 수많은 발들이 지갑을 밟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나는 주먹으로 그 발들을 쳐내면서 필사적으로 지갑을 움켜쥐었다. 지갑을 털면서 가방에 다시 집어넣으니, 전동차가 다음 정거장에 멈추어 섰다. 정확하게 3분간에 이루어진 사건이었다. 어느새 지하철은 내리고 타는 사람들로 붐비고 아이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멍하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저 쪽에 교수님이 새파랗게 질려서 떨고 있었다. 교수님, 오늘 정말 좋은 구경 하셨습니다.
지하철에 함께 타고 가는 수많은 러시아 사람들은 구경만 하고 있을 뿐 누런 동양인이 당하는 수모를 구경만 하고 있었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지하철은 달리고 사람들은 다시 시끄럽게 떠들면서 지하철은 덜컹거린다.
이 아이들은, 손찌검을 하거나 때리면 안된다. 보이지 않는 그 어딘가에 덩치가 큰 놈들이 망을 보면서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들은 살아간다. 러시아 남부지방으로 가면 이들이 사는 지역이 있다. 그들은 아주 좋은 아파트를 짓고 함께 공동체로 살아간다. 상당히 부자로 살아간다.
지금도 집시들은 러시아를 비롯하여 각국을 헤매면서 살아간다. 지금도 시내를 거닐다가 혹은 그들의 모습을 보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머리에 수건을 쓰고, 어린아이들이 어린아이를 업고……. 막가는 인생들, 그들이 떼를 지어 덤비면 당할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 지역에서는 집시들을 대상으로 선교하는 사람들이 있다. 러시아 집시와는 좀 다른 형태의 집시들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얼마나 어려울까 생각을 해본다. 깨어 근신하라는 말씀을 다시금 기억하면서 세상이 전쟁터요 영적 싸움의 현장인 것을 깊이 새기는 아찔한 순간들이었다. 현장에서는 예기치 못한 수많은 일들이 발생한다.^^
현장에서 생긴 일
Sergei(모스크바 선교사)
© 2020 Christianitydaily.com All rights reserved. Do not reproduce without per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