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고 꿈을 성취하기 위해 사는 존재는 피조물 가운데 사람이 유일합니다. 여타 피조물은 생존을 위해 살지만 사람은 꿈을 위해 살아갑니다. 사람은 단순히 동물적 생존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꿈의 성취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가 이루어 가야만 합니다. 꿈을 이루기에 적합한 환경이 별도로 있지 않습니다. 부적합한 환경을 정복해야만 합니다. 부적합한 환경의 정복을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정복해야 합니다. 자신을 정복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환경도 정복할 수 없습니다. 꿈의 사람으로 대표적인 인물이 요셉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이루기 위해 쓰임받은 요셉의 삶에서 본받을 만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은 자기 정복에 성공한 사람입니다.

꿈을 성취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부지런했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훗날 국무총리 자리에 앉게 되었을 때 그가 애굽의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지 못했다면 어찌 국무총리직을 감당할 수 있었겠습니까? 요셉은 다른 노예들이 잠을 잘 때도 미래를 위해 열심히 준비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낮에는 남들과 같이 일하고, 밤에는 애굽의 언어와 문화를 익히기 위해 부지런히 공부했을 것입니다. 꿈은 아무 때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때가 있습니다. 그때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준비한 사람이요, 준비한 사람만이 그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우리에게 주신 재능과 은사를 발견하고 개발하기 위해서 부지런해야 합니다. 한 달란트 맡았던 종을 향해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고 말씀 하십니다. 게으른 자가 거두는 것은 가시덤불과 잡초뿐입니다. 게으른 자가 거두는 것은 빈궁뿐입니다. 게으른 자가 발달하는 것은 핑계를 대는 머리와 변명하는 입술입니다. 게으른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변명과 핑계로 가득차 있습니다. 자신의 궁핍과 어려운 형편을 자기의 책임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인생을 탓하고, 운명을 탓합니다.

하나님이 귀하게 쓰신 인물들의 특징은 부지런함입니다. 피와 눈물과 땀을 아끼지 않습니다. 피는 용기를 말합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담대했던 에스더는 민족을 구하는 일에 쓰임 받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과감하게 도전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눈물은 정성과 성실함과 인내를 말합니다. 끝까지 성실하게 인내할 때에 성공은 다가옵니다. 땀 흘리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노력 없이 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머슴살이 하던 야곱은 "내가 낯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창31:40). 52일 만에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과업을 성취한 느헤미야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내가 내 형제들이나 종자들이나 나를 좇아 파수하는 사람들이나 다 그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기계를 잡았었느니라."(느4:23).

꿈을 성취한 사람들의 특징은 편안함을 포기 했다는 것입니다.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도 요셉은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곧바로 애굽 전역을 순찰했습니다. 창41:46에 보면 "요셉이 애굽왕 바로왕 앞에 설 때에 삼십 세라 그가 바로 앞을 떠나 애굽 온 땅을 순찰 하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저절로 위대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지런함에 의해서만 가능하게 됩니다. 게으름은 모든 사람의 장애물입니다. 게으름은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안주하고 싶은 마음, 안정을 추구하고 싶은 마음 편안함을 누리고 싶은 마음으로 찾아옵니다. 무엇보다도 위험한 것은 게으름을 두둔하고 합리화 시키려는 마음의 자세입니다. 게으름을 정복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필수적인 방법은 새벽을 정복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정복한 사람은 자신을 정복한 사람이었고, 자신을 정복한 사람은 게으름을 정복했고 게으름을 정복한 사람은 새벽을 정복한 사람이었습니다. 꿈을 성취하는 사람은 새벽을 깨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새벽을 깨우는 사람을 축복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