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주체(주제)로 나와 너, 나와 하나님, 나와 자연, 나와 동물과의 관계를 서술한 논문이나 책은 너무도 많다. 그러나, 나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관해서는 그리 많지 않다.
처음 예수를 믿고 성경을 많이 읽을 때 누가복음을 읽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한 부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즉 풍년이 들어 엄청난 곡식을 거두어 새로 더 큰 창고를 짓고 배를 두들기며 하는 말이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라는 구절이다. 내가 내 영혼에게 말한다는 구절은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있다는 것을 새로 알았다. (눅12:19) 사도 바울은 로마 교인들에게 보낸 글에서 자기의 내면 세계를 솔직하게 드러냈다. 자기에게 선한 나와 악한 내가 서로 끝임 없이 싸우고 있으며 어느 한 쪽으로 하나가 되기가 매우 힘들다고 했다.(롬7:15-25;) 교인들은 바울을 천사처럼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그도 인간으로써의 본성을 벗어 날 수가 없었다.
이런 문제에 대하여 예수님은 일찌기 언급하셨다. "천국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지 말라. 천국은 지금 네 속에 있다(The kingdom of God is within you).(눅17:21;)" 죽어서 천당 가는 것을 보장 받은 교인은 살아서 천국을 소유하고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면서, 또 한편으로는 반대로 지옥의 마음도 가질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울은 예수 선생님의 뜻을 따라서 마음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즉 성도는 자기 안에 거룩한 성전을 이룰 수 있다고 설교했다. 당시 유대인들은 성전은 그 나라의 수도인 예루살렘에 46년이나 걸려서 지은 찬란하고 웅장한 건물 뿐이라고 생각했다.
예수님은 그 생각을 깼다. 성전은 어떤 한정된 곳이나 건물에 있는 것이 아니고 참 사랑을 가진 사람은 마음에 거룩한 성전을 이룰 수 있다는 진리다.(고전3:16-17) 또 한 반대의 경우도 생각하게 된다. 엄청난 큰 교회 건물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많은 헌금이 모인다고 해도 그 안에 사랑이 없으면 도적들의 소굴이 된다는 것이다.(막11:17) 또 개인적으로는 악하게 살면 더러운 쓰레기통(똥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으로 양분하기 보다는 한 사람 안에 두 개의 내가 있는데 선한 내가 주동이되면 천사처럼 되고 악한 내가 주동이되면 악마처럼 된다고 믿는다. 성경을 보면 선한 면이 강했던 아브라함이나 다윗, 베드로, 바울, 스데반 같은 성자가 있고 반대로 가인, 사울, 헤롯, 빌라도, 가룟 유다 같은 악마 짓을 한 사람도 있다. 후자에 속한 사람들도 한 때는 선한 사람으로 살았으나 결국은 악한 사람으로 더 기울어져 불행하게 생을 마쳤다. 어느 누구도 마귀에게 끌려가지 않는다는 보장을 못한다. 내 속에 있는 악한 부분을 도려 내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같이 가야 하는 운명의 나.
보라! 악한 나는 가능한 나를 위한다는 미명아래 나의 이익과 나의 본능을 만족시키려고 한다. 그것이 결국은 나를 죽이는 것이다. 그러나 선한 나는 나 보다는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케 하고 모든 행동이 하나님의 공의에 맞게 살도록 인도한다. 그 길은 어려워도 결국은 구원의 길이다.
어떻게 하면 선한 사람으로 살까! 방법이 있다. 첫째는 내가 모방할 사람을 정한다. 즉 남들에게 존경을 받을 때 더욱 겸손하고 반대로 시련 중에도 희망의 끈을 붙잡고 성실하게 살면서 많은 사람에게 덕을 끼친 사람을 본받는 일이다. 그 대표적인 분은 그리스도시다. 주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섬기는 종으로 세상에 와서 많은 사람들을 섬기다가 만인의 죄를 대속 하기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이다. 두 번째는 때도 시도 없이 고개를 들고 시험하는 내 속의 악의세력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공급 받아야 한다. 젊어서는 이성의 유혹, 장년에는 돈과 권력의 시험, 노년에는 명예에 대한 욕심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가 계속 따라온다.
그것을 이길 수 있는 힘은 내 의지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오직 성령의 도우심이 절대적이다. 마치 홍수에 휩쓸려 떠내려 갈 때에 헬리콥터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온 구조대원에게 구조되듯 말이다. 셋 번째는 내 안에 있는 선한 부분을 강하게 만들어 악의 부분을 사랑으로 정복하는 일이다. 그 사랑의 힘은 하나님을 죽도록 섬기며 또 한편으로는 주위에 있는 이웃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선으로 악을 이기며 살 때에 마음속에 천국을 이루고 또 거룩한 성전을 짓고 행복하게 그리고 멋지게 사는 것이다.
처음 예수를 믿고 성경을 많이 읽을 때 누가복음을 읽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한 부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즉 풍년이 들어 엄청난 곡식을 거두어 새로 더 큰 창고를 짓고 배를 두들기며 하는 말이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라는 구절이다. 내가 내 영혼에게 말한다는 구절은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있다는 것을 새로 알았다. (눅12:19) 사도 바울은 로마 교인들에게 보낸 글에서 자기의 내면 세계를 솔직하게 드러냈다. 자기에게 선한 나와 악한 내가 서로 끝임 없이 싸우고 있으며 어느 한 쪽으로 하나가 되기가 매우 힘들다고 했다.(롬7:15-25;) 교인들은 바울을 천사처럼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그도 인간으로써의 본성을 벗어 날 수가 없었다.
이런 문제에 대하여 예수님은 일찌기 언급하셨다. "천국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지 말라. 천국은 지금 네 속에 있다(The kingdom of God is within you).(눅17:21;)" 죽어서 천당 가는 것을 보장 받은 교인은 살아서 천국을 소유하고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면서, 또 한편으로는 반대로 지옥의 마음도 가질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울은 예수 선생님의 뜻을 따라서 마음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즉 성도는 자기 안에 거룩한 성전을 이룰 수 있다고 설교했다. 당시 유대인들은 성전은 그 나라의 수도인 예루살렘에 46년이나 걸려서 지은 찬란하고 웅장한 건물 뿐이라고 생각했다.
예수님은 그 생각을 깼다. 성전은 어떤 한정된 곳이나 건물에 있는 것이 아니고 참 사랑을 가진 사람은 마음에 거룩한 성전을 이룰 수 있다는 진리다.(고전3:16-17) 또 한 반대의 경우도 생각하게 된다. 엄청난 큰 교회 건물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많은 헌금이 모인다고 해도 그 안에 사랑이 없으면 도적들의 소굴이 된다는 것이다.(막11:17) 또 개인적으로는 악하게 살면 더러운 쓰레기통(똥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으로 양분하기 보다는 한 사람 안에 두 개의 내가 있는데 선한 내가 주동이되면 천사처럼 되고 악한 내가 주동이되면 악마처럼 된다고 믿는다. 성경을 보면 선한 면이 강했던 아브라함이나 다윗, 베드로, 바울, 스데반 같은 성자가 있고 반대로 가인, 사울, 헤롯, 빌라도, 가룟 유다 같은 악마 짓을 한 사람도 있다. 후자에 속한 사람들도 한 때는 선한 사람으로 살았으나 결국은 악한 사람으로 더 기울어져 불행하게 생을 마쳤다. 어느 누구도 마귀에게 끌려가지 않는다는 보장을 못한다. 내 속에 있는 악한 부분을 도려 내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같이 가야 하는 운명의 나.
보라! 악한 나는 가능한 나를 위한다는 미명아래 나의 이익과 나의 본능을 만족시키려고 한다. 그것이 결국은 나를 죽이는 것이다. 그러나 선한 나는 나 보다는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케 하고 모든 행동이 하나님의 공의에 맞게 살도록 인도한다. 그 길은 어려워도 결국은 구원의 길이다.
어떻게 하면 선한 사람으로 살까! 방법이 있다. 첫째는 내가 모방할 사람을 정한다. 즉 남들에게 존경을 받을 때 더욱 겸손하고 반대로 시련 중에도 희망의 끈을 붙잡고 성실하게 살면서 많은 사람에게 덕을 끼친 사람을 본받는 일이다. 그 대표적인 분은 그리스도시다. 주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섬기는 종으로 세상에 와서 많은 사람들을 섬기다가 만인의 죄를 대속 하기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이다. 두 번째는 때도 시도 없이 고개를 들고 시험하는 내 속의 악의세력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공급 받아야 한다. 젊어서는 이성의 유혹, 장년에는 돈과 권력의 시험, 노년에는 명예에 대한 욕심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가 계속 따라온다.
그것을 이길 수 있는 힘은 내 의지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오직 성령의 도우심이 절대적이다. 마치 홍수에 휩쓸려 떠내려 갈 때에 헬리콥터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온 구조대원에게 구조되듯 말이다. 셋 번째는 내 안에 있는 선한 부분을 강하게 만들어 악의 부분을 사랑으로 정복하는 일이다. 그 사랑의 힘은 하나님을 죽도록 섬기며 또 한편으로는 주위에 있는 이웃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선으로 악을 이기며 살 때에 마음속에 천국을 이루고 또 거룩한 성전을 짓고 행복하게 그리고 멋지게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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