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에 충격적인 소식을 두 번 들었다. 첫 번째는 젊은 부부의 이혼이다. 부모 따라 어린 나이에 미국와서 열심히 공부해서 변호사로 돈 잘 벌면서 음대를 나온 미인과 결혼해서 남매를 낳고 좋은 주택에서 잘사는데 웬 이혼이냐? 이해가 되지 않는다. 후에 안 일은 남편이 같은 사무실에 있는 여직원과 불륜관계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황혼 이혼소식이다. 미국에 이민와서 죽지 않으면 까무러치기로 밤낮 고생해서 자녀 넷을 잘 키웠다. 그들은 자기 전문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며 멀지 않는 곳에서 산다. 나이 70세를 바라보는 노 부부는 손자 손녀보는 것도 재미 중 하나다. 그런데, 그 나이에 헤여져? 지금까지 몇 십 년 아들 달 낳고 살았는데. 알고 보니 할아버지께서 원례 성격이 난폭해서 누구가 있던지 없던지 쌍소리로 자주 욕을 하고 심하면 매질까지 한다는 것이다. 몇 일 전에도 심하게 맞아 병원에 실려갔다와서 독한 마음을 먹고 결정진 일이란다. 지금까지 산 것은 자녀들 결혼시킬 때까지였다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 가정은 남편이자 아버지를 가장으로 삼고 위계질서가 잡혀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누구가 위고 아래가 없고 각자가 자기의 행복을 추구하는 한 공동체다. 여기에는 평등과 민주적이고 각자의 주장이 있고 어떤 강요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 나름의 문제도 있다. 즉 각자가 자기의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면서 자기의 책임을 지지않는데 큰 문제다. 즉 현제 같이 사는 상대자는 그 많은 사람 가운데 일생의 반려자로 선택했으면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살아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런데 어느 한쪽에서 그 책임을 소흘히 하면 그 가정의 행복은 금이 가는 것이다. 행복은 누가 갖다주는 것이 아니고 서로 만들어 가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약점은 자유를 한 없이 행사하려고 하면서도 따라오는 책임은 가능한 외면한다. 그 자유라는 것도 그때그때 일어나는 욕정도 자유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마음대로 행하는 것도 용납할 수 있을까? 그것은 방종이다. 즉 내가 하고싶은 대로 하는 가정은 오늘 결혼 3쌍에 1쌍 이상이 이혼하는 통계가 우리가 사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다. 이대로 가면 이혼율은 더 높아질 전망이다.

가정이 무너지면 사회도 같이 무너진다. 더욱 가관인 것은 어린 애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모르면 그것을 걱정하면서 불행하게 사는 결혼생활은 더욱 불행하다는 것이다. 즉 나의 자유와 행복이 우선인 사람들에게는 가정을 위해 내가 희생한다는 말은 웃기는 것이다. 남편은 자기 가족을 부양할 절대책임감, 아내는 남편과 같이 자녀를 잘 키우는 희생, 자녀들은 부모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사는 행복한 가정이 그리운 것이다. 전통적으로 우리는 가정을 "정"의 공동체로 생각해왔다. 그래서 "우리"라는 말을 늘 쓴다, 우리 집 사람, 우리 집 양반, 우리 애들, 우리가 사는 동네 등. 아버지 중심의 가정에서 그 분의 말씀이 법이었다. 오늘 평등과 자유를 강조하는 시대로 바뀌면서 절대적인 아버지를 밀어내고 그 자리에 정신적인 대들보를 갖다 놓지 못했다.오직 각자 마음대로 하는 하숙집으로 전락하는 기분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생각만 바꾸면 된다. 첫째는 두 사람의 만남을 창조주의 섭리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 많은 사람 가운데 이 사람을 만난 것은 바울의 말처럼 신비에 속한 사건이다. 그러기에 신이 두 부부에게 행복하게 살라는 복도 주셨지만 또 한편으로는 작은 등불이 되여 어두운 세상을 밝히라는 사명주신 것을 실천해야 한다. 두번째는 상대방을 나의 욕구를 채워주는 사람으로 착각하지말고 서로의 부족을 서로 메꾸며 사는 반려자로 모셔야 한다. 두 사람이 부모를 떠나 한 몸이 되는 것도 그런 뜻이다. 한 사람이 잘 될 때 같이 기뻐하고 그 분이 괴로울 때 같이 고통을 나누는 것이다. 서울대학 병원에 박재형 교수는 식물인간이 된 아내를 볼 때마다 "여보 내가 왔어요 오래 살아만 줘요" 하고 간호하기를 10년 이상하고 계신다. 그것이 따뜻한 가정이 아닌가! 세번째는 자녀에게 멋지게 사는 모습을 전승시키는 것이다. 집에서 부모님이 서로 희생과 사랑으로 멋지게 사는 모습을 자녀에게 심어주는 것은 수백만불 유산을 주는 것보다 더 큰 것이다. 시카고 근방에 이민 온 가정은 외동 딸을 하버드 법대를 졸업하는 뒷 바라지를 했다. 딸은 변호사로 큰 회사에서 잘 나가고 있는데 어머니가 중병으로 눕자 그 좋은 자리를 접고 엄마 옆으로 와서 간호하며 같이 산다. 그 딸은 이민와서 고생하면서도 서로 위로하며 사랑하며 자기를 사랑한 부모를 보고 자란 딸은 그런 결단을 낸 것이다. 가정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