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90주년을 맞아 발표된 ‘평화와 통일을 위한 한국교회 3·1선언(이하 3·1선언)’의 의미와 전망을 논의하는 자리가 기독교통일학회(회장 주도홍 교수) 주최로 마련됐다.

기독교통일학회가 주최한 제5회 멘사 토크에서는 이만열 교수(전 국사편찬위원장), 김영한 교수(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장), 서경석 목사(기독교사회책임 공동대표), 김영주 목사(남북평화재단 상임이사) 등 관련 전문가들을 초청, 이들의 의견을 청취했다.

3·1선언은 지난 2월 27일 3·1운동 정신을 계승해 민족분단의 평화적 해소와 통일국가의 평화적 완성을 한국교회의 이름으로 촉구한 것이다. 이번 선언은 21년 전인 1988년 2월 29일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NCCK 통일선언)’을 계승한다는 뜻에서 NCCK 통일선언이 발표됐던 서울 연동교회에서 발표된 바 있다.

이만열 교수 “한국교회 진보-보수 최대공약수 반영”

‘3·1선언의 역사적 의의’를 주제로 기조강연한 이만열 교수는 “이번 선언은 1990년대 북한 돕기를 계기로 서로 힘을 모았던 한국교회가 2000년대 북핵 문제 등으로 다시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운 이후 다시 의견을 모으게 됐다는 데서 의미가 있다”며 “내용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현 시점에서 한국교회 진보와 보수의 의견을 최대공약수로 반영해 나타내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선언문을 발표하는 자리에 직접 참석하는 등 3·1선언 발표의 중심에 있었던 이 교수는 선언의 역사적 의의를 부각시키며 “타협의 산물이라고도 할 이 선언은 양측 극단주의자들에게는 불만스러운 내용일 수 있지만, 서로의 주장에 최대한 경청하고 양보하면서 이룩한 산물이라는 점에서 의의를 규명해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노력의 예로 그는 종래 진보진영에서나 국민의정부·참여정부에서 거의 거론하지 않았던 북한 당국에 대한 언급 등을 들었다.

그러나 그는 강연에서 이 선언이 멀리는 1985년의 ‘한국교회 평화통일 선언’과 1988년 NCCK 통일선언 등 진보교계를 대표하는 NCCK 통일이념을 계승하고 가까이는 지난해 9월과 11월 잇따라 발표된 ‘계속되는 남북관계 경색을 우려하는 기독인의 입장-진정한 상생과 공영 정책의 이행을 촉구합니다’ 선언을 계승하고 있다고 밝힘으로써 이번 선언이 진보교계에 다소 치우쳐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내기도 했다.

김영한 교수 “예언자적 선언에서 왜 북한 눈치 보나”

이후 발제자들은 이번 선언에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다소 비관적인 태도를 보였다. 발제자들은 3·1선언에 직접 참여하지 않아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하다.

첫번째 발제에 나선 김영한 교수는 ‘북한 주민의 절박한 사정보다는 북한 정권의 눈치를 보는 너무 부드러운 선언’이라는 제목으로 이번 선언을 요약했다. 김 교수는 “한국교회가 분단된 한반도를 위해 사회적·민족적 책임을 각성하고 선언한 것은 뜻있는 일”이라고 평가하면서도 “한국교회는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증언해야 하고, 예언자적 선언은 어느 한 정권의 반응을 너무 예민하게 고려할 필요가 없음에도 이 선언은 옹호받고 격려받아야 할 오늘날 억눌려 있는 북한 주민의 인권과 이들의 절박한 사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하나님 나라 신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3·1선언의 의미와 평가’ 발제에서 그는 “90년 전 3·1독립선언문은 일제 식민지배 하에 억눌린 조선 민족의 존엄·자유와 정의를 촉구하고 선언했지만, 이번 선언은 북한에서 억눌려 있는 북한 주민의 그것을 충분히 대변해주지 않는다는 느낌”이라고 둘을 비교하면서 “이 선언은 남북문제를 북한 정권을 많이 의식하는 관점에서 보고 있지 당사자인 북한 주민의 입장에서 보지 않는다는 인상을 준다”고 밝혔다.

<>b“이해 초월한 종교단체가 인권·생존권 거론해야”

무엇보다 모든 문제의 주된 원인인 경제파탄과 주민을 굶어죽게 한 북한 정권에 대해 침묵한 것에 대해 “이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의도가 담긴 너무 부드러운 선언문”이라며 “만일 오늘날 구약의 예언자 이사야나 예레미야가 인권과 정의, 자유가 유린된 북한 사회를 봤더라면 뭐라고 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북한이 벌써 중국을 따라 경제 개방으로 국제사회 일원이 돼 문호를 개방했더라면 이러한 경제적 파탄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중국처럼 공산당 자체가 개방적·자기 개혁적이고 세습 아닌 새로운 유능한 젊은 지도자에게 정권을 넘겼더라면 변신한 공산주의 종주국 러시아나 중국처럼 달라졌을거라는 말이다.

그는 “이러한 북한 당국에 대해 정부 당국이나 정치인들이 경고하고 견제하는 것은 긴장을 초래하고 심각한 갈등으로 나아갈 수 있기에 부담스럽다”며 “이러한 어려운 일은 이해관계를 초월한 종교단체가 해야 하고, 한국교회는 인권과 생존권이 위협당하는 북한 주민들의 절박한 현실을 국제 사회에 알리고 이들을 위로하고 희망을 주며 북한 지도층에 대해서는 준엄하게 경고하고 개방을 통해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는 일이 북한의 살 길임을 알리는 예언자적 사명을 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한국교회는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정치적·사회적 대립을 넘어 미래에 다가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해야 하고, 그 하나님 나라는 정의와 평화의 왕국이며 인권과 자유, 평등이 온전히 실현되는 나라”라며 “이에 비해 한국이나 북한 사회는 이에 미흡하므로 하나님 나라를 평화와 통일의 목표요 시금석으로 삼아야 하고, 한국교회는 양 체제를 넘어서는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서경석 목사 “한국교회 보수-진보의 어정쩡한 타협”

이어 발표한 서경석 목사는 “이번 3·1선언은 북한 문제에 대한 한국교회 입장을 하나로 통일시키려고 노력한 결과 북한인권 문제를 언급하고 탈북자 강제송환을 반대하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에 난민지위 인정을 요구하고 북한이 6·25에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등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할 부분이 있다”며 “이러한 내용들은 일반 국민들이 보기에 지극히 당연한 주장이지만 진보 교계는 이제까지 이런 성명에 서명한 적이 없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서 목사는 “이번 선언문 초안에는 ‘한국전쟁에 대해 북한도 책임의 당사자인 것을 겸허하게 인정해야 한다’고 썼다가 수정하기도 했는데, 이를 고집했더라면 큰 파란을 일으킬 뻔했다”는 뒷얘기도 소개했다.

그는 “이번 3·1선언은 한국교회 보수와 진보 사이의 상당히 어정쩡한 타협의 산물이며, 충분한 토론과 합의의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며 “또 정부에 퍼주기를 촉구하려는 의도를 갖고 기획된 점이 엿보이는데, 이래서는 정론이 되기 힘들다”고 조언했다. 다양한 이념과 스펙트럼, 각자 놓여진 처지가 다른 상황에서는 합의된 선언을 만들려 애쓰는 것보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 만나 충분히 대화하고 토론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너무 조급하게 역사적으로 포장하려 하지 말아야”

특히 그는 이번 선언을 역사적인 것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일부 세력에 대해 “너무 조급하게 역사적인 선언으로 포장하려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며 “정말 역사적인 선언이 되려면 시대상황과 부합해야 하고, 5년·10년 후에도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1970년대 NCC의 글리온 선언이 당시 역사적인 선언으로 생각됐지만 지금도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대북 식량 및 비료 지원 등 인도적 지원을 즉각 재개하고 매년 정부 예산의 1%를 대북지원 및 개발협력 기금으로 배정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문제가 있다”며 북한 주민의 생명이 직접적인 위협을 받을 때는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해서 지원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모든 인도적 지원을 핵폐기와 인권개선 문제와 연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정부예산 1%’ 제안에 대해서는 “매우 좋은 일이지만 이 기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문제”라며 지금처럼 일체의 인권개선이 없고 핵개발을 다시 시작하는 상황에서는 굶어 죽어가고, 결핵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는 일 외에는 이 돈을 쓰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