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안에 들어온 사람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전5:17). 이 구절은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이전 것은 지나고 전혀 새로운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말한다. 그런데 예수 믿고 난 후에도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옛 사람의 습관이나 나쁜 생각들은 도대체 뭔가?

개심하고 각성한 후엔 크게 변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옛날과 별로 달라진 게 없는 자신을 보고 실망한다. 옛날의 나쁜 생각과 아집과 못된 습관이 여전하다. 경건하게 살려는 그리스도인일수록 ‘어째서 잘 안 되는지’ 절망감이 클 것이다. 예수 믿기 전에 배웠던 술, 담배를 끊으려는 것조차 잘 안된다.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 것이 되었다는데 그럼 나는 뭔가? 이런 의구심이 믿음까지 흔들어 놓는다.

예수 믿고 거듭난 후에도 옛 사람의 모습이 남아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 거듭날 때 새로워진 것은 영의 영역일 뿐 혼과 몸은 아직 멀었다. 거듭나는 순간 우리 영은 즉시 새로워진다. 거듭난 영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순종한다. 그러나 혼은 아직 대부분 옛 모습 그대로다. 혼은 이제부터 구원을 이루어가야 한다. 우리 생각과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영이 아니라 아직은 자기 생각과 뜻을 고집하려는 혼이다. 행동을 결정하는 주체가 아직 구원받지 못한 혼이기 때문에 거듭난 사람도 옛 사람의 습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영이 구원받을 때 혼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가는 시작 단계에 돌입한다. 우리 몸은 하늘 나라에 가는 그 순간이 되어야 비로소 완전히 새로워질 것이다. 영이 거듭난 후에도 혼은 종종 하나님의 다스림을 부정하며 자신을 높이는 일에 열중한다. 소위 ‘구원받았다’는 그리스도인들이 자만심을 버리지 못하고, 급한 성질도 죽이지 못하고, 때때로 좋은 사람처럼 보이려고 사실을 왜곡하는 위선에 빠지는 것은 거듭나지 못한 혼 때문이다.

기독교로 개심하기 전에 혼에 견고한 요새를 갖고 있던 사람은 예수 믿노라 고백한 후에도 잘못된 습관과 아집에 사로잡혀 있을 가능성이 높다. 회심하기 전에 음란물이나 마약에 중독된 경우, 예수 믿고 죄 사함을 받은 후에도 저절로 그 유혹이 소멸되지 않는다. 성화되지 못한 혼은 여전히 과거의 습관이나 욕망과 내적 전투를 벌어야 하고 잘난 척하다 죄를 짓기도 할 것이다. 이런 문제로 갈등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으로 얻은 구원을 의심하지 말고 혼을 변화시키는 일에 전력하기 바란다.

신학에서는 영의 구원을 '칭의'(justification)로 표현하고 혼의 구원을 '성화'(sanctification)라고 부른다. 칭의의 구원은 예수님을 믿는 순간 단번에 성취된다. 믿는 순간 영은 구원 얻는다. 하지만 성화의 구원은 죽을 때까지 계속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나쁜 습관 하나도 당장 소멸되지 않는다. 나쁜 습관을 고치려면 몇 단계를 거쳐 싸워야 한다. 우선 잘못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동의하고 그걸 미워해야 한다. 그 다음 변명하는 혼과 사욕을 사랑하는 몸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 그런 다음에 영의 지배를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한다. 그러면 혼의 영역과 몸의 영역에 거룩해지는 변화가 나타난다.

우리 옛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것은 죄의 몸을 멸하여 다시는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죄의 욕망에 굴복해 옛 습관으로 돌아가지 말고 그 순간 십자가의 죽음을 기억하며 죄의 권능에 저항하라. 마귀는 당신이 거듭나기 전에 즐기던 죄악의 욕망에 빠져 혼의 구원을 이루지 못하도록 유혹할 것이다. 죄악의 쾌락을 포기하지 못하면 나쁜 습관을 고치기 어렵다. 성령 안에서 의와 평안을 누릴 수 있도록 죄의 욕망에 저항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