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한국 여행을 통해서 한국의 변화된 모습을 조금이나마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약 3년 전에 중국 단기 선교 다녀오는 길에 약 1주일 머무르며 변화된 조국의 모습을 피부로 느꼈었는데, 이번 여행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부모님이 사시는 가양동에 있는 실버타운 아파트와 할아버님이 입원해 계셨던 대방동 성애병원만을 주로 오가는 일정이었지만, 저는 마치 이방인과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 분들이 제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들었고, 저 역시 그 분들이 하는 말을 못 알아들어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은 적이 많았습니다. 한강 다리가 3개 있을 때 조국을 떠났는데 이제 무려 18개가 있으니, 다리 이름도 모르고, 당시는 강변도로도 한 개였는데, 이제는 이름을 다 기억할 수도 없었습니다. 7,500원 나오는 거리를 15,000원이 나올 정도로 빙빙 돌아서 데려다 주는 악덕 택시 운전기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일 차이를 많이 느꼈던 것은 장례 문화와 관습이었습니다. 기독교인들조차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병원에서 마지막 시간을 갖습니다. 집에서 돌아가신 분들도 병원 영안실에서 장례식을 갖게 됩니다. 병원 영안실은 전문적인 장의사보다도 더 시설이 잘 되어 있습니다. 동시에 7-8 장례를 치룰 규모별 빈소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장례용품 판매에서부터, 빈소를 찾는 조객들을 위한 식당이 빈소별로 있고, 유족들을 위한 숙소와 휴게실까지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습니다. 편의점과 꽃집까지 있습니다. 종교별 예배실까지 갖추어져 있습니다. 남녀 검은 상복 일체를 대여해 주기도 합니다. 시신만 오면 모든 것을 다 제공해 준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3-5일 장이 보통인데, 제일 힘든 것은 돌아가신 직후부터 곧바로 빈소가 차려지고, 상주들이 3-5일 동안 조객을 거의 24시간동안 계속해서 빈소에서 맞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미국에서는 Viewing(입관 후 보통 저녁 한 차례 장의사에 가서 문상하는 절차) 한 번과 다음 날 Funeral(발인예배) 및 하관(Burial)이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과는 큰 대조를 이룹니다.

문상객이 오면 도우미 아줌마들의 도움으로 수많은 문상객들에게 일일이 식사 대접을 합니다. 염이라고 해서 시신을 씻어 주고 종이와 수의로 일일이 둘러싼 후, 관에 넣는 절차를 유리 한 장 차이로 유족들에게 보여 주는데 이것이 매우 고통스러웠습니다. 시신을 정성껏 다루는지 장의사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미국같이 대부분의 장의사가 공원묘지에 위치해 있지 않아서 발인 예배를 오전 6-7시에 드리기 때문에 가족 외에는 아무도 발인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관습도 특이하게 느껴졌습니다.

미국에 와서 30년 가까이 살다보니 한국에서는 당연한 것도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진 것 같습니다. 최근에 세브란스 대학병원측이 빈소 문화를 바꾸려고 했다가 소비자들에게 혼이 나서 다시 시설을 개조하고 원상태로 복귀했다고 합니다. 장례식 화환 숫자가 고인의 유명도를 말해준다는 말도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로마에서는 로마인들처럼 하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한국의 장례문화도 유족 중심이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