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한인사회의 정립기(1976년~1989년)

1. 애틀랜타 한인 사회의 개요(1976년 경)
1976년 11월 27일 애틀랜타 한국 총영사관 개관 파티가 열렸는 데, 이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애틀랜타를 방문한 한국일보 시카고 지사 조광동 기자와 김순성 기자가 애틀랜타 특집기사를 1976년 12월 28일 발행한 한국일보 미주뉴스 애틀랜타 난에 게재하였다. 이 특집 기사는 당시의 애틀랜타 한인 사회를 매우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다음은 그 기사 중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미국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애틀랜타 한인 인구수도 정확히 알 수 없다. 애틀랜타에 약 3천 명의 한인들이 살고 있다고 보고, 조지아 주 전체 한인 수는 약 5천 명으로 잡고 있다. 1972년부터 새로 이주해 오는 한인들이 많아 애틀랜타 한인 인구가 급성장하였다. 애틀랜타 한인회는 1968년 10월에 15명의 한인들이 모여 발족하였다. 이 당시 애틀랜타 한인은 약 250명에 불과하였다. 1969년 김순응 박사가 초대 한인회장을 지낸 이후 1976년 8대 강석영 회장까지 한인회는 한인사회 전체를 대표하는 단체로 자리잡았다.

대부분의 미국 한인사회에서 중추적인 활동 무대가 교회이듯이 애틀랜타 한인사회에도 교회가 중심에 서 있다. 현재 일곱 개의 개신교 교회와 한 달에 한 번씩 모이는 천주 교회가 있다. 교회는 교인들의 취업 문제, 생활 상담, 자녀 교육 문제 등에 관심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해결해 가고 있다. 애틀랜타 한인 교회의 남재현 목사는 초기 한인 이민들이 미국에서 적응할 수 있도록 교회는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애틀랜타 제일 장로 교회의 서삼정 목사는 주일 학교에 한글반을 설치하여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애틀랜타 한인 감리 교회의 박성용 목사는 해외 이주 정착은 접목과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한인 이민들이 먼저 새로운 정착지의 특수 사정을 그대로 인정하고 이해하면서 적응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박 목사는 교회가 그러한 적응을 돕는 어드바이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애틀랜타 한인들의 직업 중에서 가장 많은 분포를 보이는 것은 간호원이다. 애틀랜타에는 대략 250명의 한인 간호원이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RN(Registered Nurse)일 때 시간 당 5달러 선의 임금을 받고 있으며 보조 간호원일 경우 시간당 2달러 10센트 선의 임금을 받는다. 간호원이 조지아 주에 들어오게 되면 18개월 동안 세 번의 시험을 볼 자격을 주며, 그 동안에는 임시 면허를 발급한다. 세 번 안에 시험에 합격하여야 하며, 불합격할 경우에는 임시 면허가 취소된다. 이러한 어려움 때문에 근래 간호원들이 애틀랜타를 떠나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다수의 한인들이 방직 공장, 담배 공장, 매직 마켓 문포드 회사 등에 나가며, 주부들은 바느질 공장 등에서 일한다. 공장에 다니는 한인들이 시간당 임금은 3달러 선이고, 주부들은 2달러 30센트 선이다. 처음에 들어간 한인들은 남자가 시간당 2달러 50센트, 여자가 시간당 2달러 선의 임금을 받는다. 특별한 기술이 없는 화이트칼라 출신의 한인들은 매직 마켓이라는 상점에서 일한다. 애틀랜타 조지아 텍 등을 비롯하여 애틀랜타 대학에 근무하는 한인 대학 교수가 약 10명이다.

애틀랜타에는 가발 가게 20개, 햄버거 가게 8개, 태권도장 5개, 주유소 3개, 한국 식품점 2개, 한국 식당 1개, 꽃가게 1개, 전자제품상 1개 등의 한인 사업체가 개업하고 있다. 그리고 무역업을 하는 한인 11명이 있고, 미국 식품점 경영자로 일하는 한인 10명이 있다. 상당수 한인은 메카닉 등의 기술자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들어 이주한 지 2~4년 되는 한인들이 식당, 식품점, 주유소, 가발상 등을 개업하는 경우가 많다. 애틀랜타에서도 개인 사업의 붐이 일어나고 있다. 1976년 한 해 동안 20여 명의 한인이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자기 사업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한인 사회의 기관, 단체로는 애틀랜타 총영사관과 지난 1976년 개관한 애틀랜타 무역관 외에 애틀랜타 한인 방송, 한미 문화 협회, 한인 상조회, 보라매회, 간호 협회, 과학기술 협회 등이 있다.

애틀랜타 간호 협회는 약 250명의 회원을 가지고 있으며 초대 회장 안귀분 씨(유일하게 나이팅게일 기장을 받은 분) 다음으로 이정숙 씨가 현 회장으로 있다. 가장 큰 직능별 조직체로서 한인 간호원들의 권익 신장을 위해 주 정부 당국과 꾸준한 접촉을 계속하고 있다. 이봉호 박사가 회장으로 있는 한미 문화 협회는 한국 문화를 미국 사회에 보급하고 한인 사회에 기여할 것을 목적으로 1977년 5월에 창립되었다. 현재 약 30명의 회원을 갖고 있다. 한미 문화 협회의 첫 사업으로 애틀랜타 한국 학교를 설립하였는 데, 이민 2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어린이 한글반과 이민 생활에 필요한 법률 및 일반 교양을 가르치는 성인반을 동시에 운영하고 있다.

1976년 8월에는 한국 학생들로 구성된 소년 축구팀을 구성해 매주 미국팀과 정기적인 경기를 갖고 있다. 한인 상조회(회장 이광명)는 30세대로 구성되어 있는 데, 주로 메카닉 등 기술자들이 중심이 되어 한인들 간의 협조를 도모하고 있다. 공군 전역자들의 모임인 보라매회(회장 김선희)는 친목을 넘어서서 한인 음악회를 구성하는 등 한인 사회 일에 적극성을 보여주고 있다. 매주 일요일 오전 9시부터 10시까지 전파를 타는 애틀랜타 한인 방송은 김규환 씨 등 5명의 독지가들이 운영하고 있으며, 김지니 아나운서가 수고하고 있다. 애틀랜타 한인상공회의소(초대회장 노화석)는 각종 개인 비즈니스에 종사하는 50여 명의 회원들을 가지고 있으며 각종 세미나 등을 계획하고 있다.

애틀랜타 공항에서 시내로 이어지는 85번 도로는 30분 간을 달려서 도심으로 연결된다. 애틀랜타를 방문한 날은 한국 총영사관이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들을 위해 개관 파티를 연 날이다. 총영사 관저에서 열린 개관 파티에는 350여 명의 한인들이 참석하였다. 조지아 주를 비롯하여 노스캐롤라이나 주,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테네시 주, 앨라배마 주, 플로리다 주 등 6개 주를 관장할 애틀랜타 총영사관은 초대 총영사 오명호 박사, 경제담당 박건우 영사(후에 주미대사 역임), 민원담당 김원태 영사 등이 첫 팀으로 출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