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오래 사신 분들께는 생소한 여러 가지 신조어(新造語)들이 한국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눈에 띠는 표현 가운데 "신분 상승"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신분 상승은 말마따나 우리의 신분이 상승되는 것을 표현하는 말이지만 요즘 들어 이 표현이 한국 사회의 지나친 빈부의 차로 말미암은 계급주의(classism)에 대한 부정적인 표현으로 사용되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불쌍할 정도로 시달리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고 수없이 많은 학원(?)을 다니는 것이 어디에나 일반화된 현상입니다. 이러한 교육 열풍이 치열한 경쟁 사회를 거치면서 신분 상승을 목표로 한 투자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이전부터 학원 다니는 것은 시작이 되는데, 암산학원, 미술 학원, 음악 학원, 영어 학원은 물론 심지어는 노는 것도 자연스럽게 할 수 없는 사회에서 자라다보니 놀이학원도 생겨서 아이들에게 놀이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배우게끔 하는 형편입니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집, 학교와 학원의 세 곳을 다람쥐 쳇바퀴를 돌듯이 부모가 정해주는 스케줄에 따라 다니게끔 되어 있고 아이들의 스케줄 관리를 잘 해주고 효율적인 학원을 선정해 주는 엄마가 좋은 엄마로 자리매김을 하는 실정입니다. 놀이 학원이 생겼다는 것은 한국 사회의 병리현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집에 있어 동네에서 놀고 싶어도 같이 놀 친구들이 하나도 없는 현실입니다. 자기 또래의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학원을 다녀야 하는 실정이다 보니 한국이라는 사회 전체가 병적인 교육 환경이 창출된 상황입니다.

이 모든 것이 자녀들의 "신분 상승"을 위한 부모들의 고육지책입니다. 강북에 사는 사람들은 강남으로 진출하는 것이 신분 상승이라고 생각하니까 재물이 사람의 신분을 결정하는 사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대학을 나오고 취직을 해도 능숙히 영어를 할 줄 알면 연봉이 몇 백 ~ 몇 천만 원이 더 지급되는 사회입니다. 그러니 부모들은 자녀들의 신분 상승을 위해 어떤 대가라도 지불하겠다는 각오가 대단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교육환경에 아이는 적게 낳을 수밖에 없으니 한 아이를 낳은 부모는 모든 것을 그 아이를 위해 희생하고 부모의 모든 인생이 아이의 장래에 달린 것처럼 살아가는 사회가 된 것입니다.

이러한 vicious cycle (악순환)의 고리는 끊을 수 없는 운명처럼 한국 사회를 병들어가게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왜 이렇게 각박하게만 살아야 하는 것인가? 이러한 사회적인 병리 현상을 절망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 중의 극단적인 사람들은 인간적인 해결 방안으로 도박으로 일확천금을 노리거나 남을 무참히 짓밟고서라도 신분상승을 노리는 등 끔찍한 일을 추진하는 상황입니다. 또 다른 일각에서는 이러한 자본주의의 병리 현상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공산주의가 낫다고 생각하는 좌경화된 ideology가 무리 없이 무산층에 팽배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인 병리현상을 타개할 수 있는 것은 복음 밖에 없습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랑하는 것만이 이러한 총체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신분 상승은 복음을 떠나서는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늘나라의 유업을 상속하는 것이 바로 신분 상승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도 하늘 보좌 우편에 그리스도와 함께 앉아 세상을 다스리는 사람들입니다. 영적인 파워만이 시대적인 망국현상을 타파할 수 있습니다. 16세기에 종교개혁을 이룬 마틴 루터도 그랬고, 그를 이은 칼빈도 마찬가지였고, 18세기의 영국의 망국현상을 극복한 요한 웨슬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복음만이 우리의 사고를 철저하게 바꾸게 합니다. 복음으로 바뀐 우리의 가치관만이 현 세대의 병리적 현상을 타파할 수 있는 길입니다. 16세기, 17세기 18세기 등 인류 역사의 모든 위기의 시대에 이러한 복음의 능력은 이미 검증된 파워로 사회를 바꾸게 하는 원동력이 된 바 있습니다. 복음만이 우리의 살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