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최고의 북방 도시 알라스카 훼어뱅스(ALASKA FAIRBANKS)에서 뉴욕, 워싱톤, 오클라호마, 맥시코주, 아리조나주, 시애틀, 그 외에 일본, 한국까지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가 있다. 존 웨슬리의 '전 세계가 나의 교구'라는 유명한 말처럼 '전 세계를 향해 날아가는 복음 전도지'를 만들고 싶은 비전을 가진 알라스카 훼어뱅스사랑의교회 김송환 목사가 바로 그 목회자다. 알라스카 훼어뱅스사랑의교회는 2004년부터 복음 전도지 '겨자씨'를 발행해 귀한 복음의 열매들을 맺고 있다. 이에 본지는 서면 인터뷰를 통해 김송환 목사의 문서 선교 사역과 비전에 관해 들어 보았다.
1. 문서 선교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으십니까?
저는 남미 에콰돌(Ecuador) 수도 키토에서 만15년 사역을 했습니다. 그때 문서 선교의 소중함을 깨달았습니다.
당시 제가 시무하던 한인교회 성도들의 대부분은 1년 365일 중에 약 200일 정도는 에콰돌에 와서 장사를 하고 나머지 165일 정도는 미국으로, 한국으로 중국으로 다니면서 옷을 사서 컨테이너를 채워 뱃짐을 만들어 붙여 와서 도매업을 했었답니다.
구입해온 물건을 다 팔면 또 나가고 이런 삶의 반복이니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도저히 채워 줄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그 영혼들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 하던 중 문서 선교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득 담긴 작은 신문을 만들어 비행기에서 호텔에서 읽으며 은혜 받고 공부하도록 했더니 상당히 좋은 효과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 후 좀 더 발전시켜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도 내용도 실어서 복음을 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성령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젊은이들과 의논하여 각자 분야별 기자가 되게 했지요. 저는 매주 저의 설교를 타이핑해서 내놓기로 하고 어떤 사람은 컴퓨터로 고국의 신문의 내용 중에 좋은 부분을 발췌하기도 하고(20년 전에는 사람들이 컴퓨터로 고국의 신문 보는 것이 어려운 시대였지요) 또 어떤 사람은 기독 만화 또는 생활정보 등 각종 좋은 글을 모으게 했고 모여진 기사들을 편집하여 프린트하니 좋은 전도지, 모든 사람들에게 호응 받고 칭찬 듣는 작은 신문이 되었습니다.
당시에 그곳 교민들이 이 신문을 매주 받아보고 너무 좋아하시고 찬조금도 많이 주어서 그 찬조금으로 기자들에게 회식비를 지급해 주기도 했었답니다.
그러다 지금 제가 사명 감당하고 있는 ALASKA FAIRBANKS (알라스카 훼어뱅스)에 2004년 9월에 새로 부임되어 왔는데 이곳은 미국이라도 남미보다 한인들이 적게 살고 대부분은 미국 사람들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 분들이기에 만나기도 힘들고 전도하기도 불가능했습니다.
당시 제가 부임된 교회에는 성도가 한인 미국인 합쳐서 7명 있었지요. 참으로 암담한 현실 속에서 전도 전략을 위해 기도하다가 남미에서 했던 문서 선교를 이곳에서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컴퓨터 한 대도 없고 아무 기재가 없었습니다.
그때 주님을 믿는 자에게 불가능은 없다는 말씀을 되새기면서 250달러짜리 프린터기 한 대를 샀고 제가 남미에서 가져온 노트북 한 대로 시작 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는 일꾼도 없고 제 자신이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루는 것도 아니고 시설도 없고 이것을 계속 할 수 있는 재정적인 뒷받침도 미약하고 해서 너무 힘들었습니다.
하루는 남미에서 노트북 속에 입력하여 가지고 온 자료들이 다 날아가 버려서 문서선교를 포기하려고 했는데 제 아내가 "포기하면 김송환 목사가 아니지, 끈기와 인내가 다 어디 갔느냐, 용기를 내어서 다시 해보시오" 하더라구요. 생각해 보면 그때 아내의 말이 주님의 음성이었던 것 같습니다. 힘써 해보니 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졌으니까요. 그래서 다시 힘을 내어 지금까지 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다 타주에 살고 계시는 분이 우리교회에 다니시는 부모님을 만나 뵈러 오셨다가 감동을 받아 컴퓨터 한 대를 사주셨고 프린터기도 좀 더 좋은 것으로 마련해 준 일도 있습니다.
2. 교회 신문이나 잡지 발행은 대부분 중. 대형 교회에서 하는 것으로 아는데 '겨자씨'선교지 발행이 쉽지만은 않으실 것 같습니다.
지금 저희 교회는 성도들이 한인 15명, 미국인 30명쯤 됩니다. 결국 저는 매주 10여명의 한인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 셈이지요. 미국인은 미국인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고 있으니까요. 이곳 사정과 형편으로 본다면 목양의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겨자씨가 있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온 세계를 저의 구역으로 삼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 은혜를 받는다고 생각하니 기쁨이 충만하답니다.
앞으로 교회의 일꾼과 재정이 더 허락된다면 정말 본격적인 문서 선교를 하고 싶습니다. 교회 안에 성도들을 모아놓고 설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서를 통해서 말씀을 전하는 것도 참으로 귀한 사명이라는 것을 날이 갈수록 더 깨닫게 됩니다. 아마도 하나님 앞에 가서 설 때 이 문서선교에 대하여 칭찬해 주실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저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하고 심혈을 기울여서 하고 있으니까요.
3.'겨자씨'는 언제부터 시작됐고 어느 지역에 몇 부 정도 배포되고 있습니까?
제가 이곳 ALASKA에 2004년 9월에 부임되어서 그해 10월3일에 창간호가 6페이지로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부임 하자마자 서둘러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에는 매주 60부씩 발행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곳 교민 주소록을 보니까 이웃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세어보니 약 40 가정 정도가 전도 대상이더군요. 그래서 40부는 이 지역 모든 가정에 우편으로 보냈고 나머지 10부는 우리교회 성도들에게 주어서 보도록 하고 있으며 나머지 10부는 한인식품점에 비치하여 우편에서 누락된 한인들이 식품점에 왔다가 가져가서 보게 했답니다.
그러다 조금씩 알려져서 보내주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생겨나서 120부로 늘려 만들고 페이지도 6페이지에서 12페이지로 확장하게 되었습니다.
보내고 있는 곳은 이 지역 FAIRBANKS(훼어뱅스) 전체와 ANCHORAGE(앵커러지) 20부 LA. 뉴욕. 워싱톤. 오클라호마. 맥시코주. 아리조나주. 시애틀. 등등 그 외에 일본. 한국 이렇게 다양한 곳으로 날아가고 있습니다.
2007년 12월까지 이것을 매주 발행하다가 2008년 1월부터 재정 형편상 격주로 발행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1년에 겨자씨를 위한 비용이 8000 달러가 들어갔는데 교세가 약하다 보니 이것도 힘들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미약한 교회를 섬기면서 요한계시록 3장에 소개된 빌라델비아 교회를 생각합니다.
"...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계3:8)
이 말씀대로 적은 능력밖에 없는 교회이지만 주님의 말씀대로 선교해 보겠다고 몸부림 칠 때 칭찬해 주실 것을 기대해 봅니다.
4. '겨자씨'를 통해 복음을 얻은 간증이 많으실 텐데 몇 가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장학호 선교사님(이전 에콰도르 과야낄 선교사)이 한국의 재소자들 3명을 소개해주어서 겨자씨를 열심히 보내주었더니 세상과 결별된 높은 담장 속에서 복음이 무르익는 냄새가 이곳까지 풍겨져 나오고 있습니다. 겨자씨를 읽고 편지를 보내온 것을 보면서 너무 감사하여 눈물을 흘린 일도 있었습니다.
장 선교사님이 고국의 재소자 세분을 소개하시기 전에 이곳 훼어뱅스 감옥에 한인 두 사람이 수감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면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약 1년간을 매주 면회하여 정해진 면회 시간 1시간을 유리벽 사이로 마주보면서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1주일에 한 시간은 새 생명이 자라나게 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가로막힌 유리벽 때문에 또는 감옥소의 법칙상 아무것도 직접 전달하지 못하게 되어 있더군요. 그래서 알아보았더니 우편으로 겨자씨 정도 크기의 신문은 넣어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부터 열심히 넣어주었고 그 분들은 열심히 탐독하여 너무 빠른 속도로 새 생명이 자라나는 것을 보게 되었고 그 기쁨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제 목회 27년 중에 세상 가운데서는 이렇게 빠르게 새 생명을 키워 본 일이 없었습니다. 두 분 중에 한 분은 15년 형을 받아 타 지방으로 전출하게 되었고 또 한사람은 모든 형기를 마치고 나왔습니다. 그 한사람이 감옥에서 겨자씨를 통해 전도가 되니 온 가족이 다 주님을 영접했고 침례를 받았으며 한국에 있는 부모님까지 예수를 믿게 된 것입니다. 그 가정 삼대가 한꺼번에 전도가 된 셈이지요. 이 분들은 지금도 저희 교회에서 충성을 다하고 있답니다.
작은 겨자씨는 비록 적은 생명운동이지만 제가 갈수 없는 곳을 자유자재로 날아가니 민들레 홀씨 같다는 말이 아주 실감 나네요.
5. '겨자씨'를 통해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특별한 그룹이나 대상이 있으십니까?
만약 우리교회가 커진다면 전 세계를 향해 날아가는 복음 전도지를 만들고 싶습니다.
이단자 여호와 증인들이 세계 여러 나라 말로 그들의 전도지를 만들어 배포하듯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복음을 전하는데 정해진 대상자는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역시 복음은 소외되고 힘든 지역에서 더 잘 받아지고 열매가 많이 나타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영육 간에 굶주리고 소외된 곳에 더욱 많이 보낼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지향하는 운동은 역시 겨자씨 생명운동입니다. 눈에 잘 띄지도 않은 작은 생명 운동이기에 이 소임에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
저는 겨자씨 운동을 하면서 저의 노년에 할 일도 발견했습니다. 현재 나이 63세이니까 곧 다가올 미래이지요. 교회를 섬기는 사명이 끝나면 더 적극적으로 문서 선교를 하려고 지금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답니다.
1. 문서 선교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으십니까?
저는 남미 에콰돌(Ecuador) 수도 키토에서 만15년 사역을 했습니다. 그때 문서 선교의 소중함을 깨달았습니다.
당시 제가 시무하던 한인교회 성도들의 대부분은 1년 365일 중에 약 200일 정도는 에콰돌에 와서 장사를 하고 나머지 165일 정도는 미국으로, 한국으로 중국으로 다니면서 옷을 사서 컨테이너를 채워 뱃짐을 만들어 붙여 와서 도매업을 했었답니다.
구입해온 물건을 다 팔면 또 나가고 이런 삶의 반복이니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도저히 채워 줄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그 영혼들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 하던 중 문서 선교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득 담긴 작은 신문을 만들어 비행기에서 호텔에서 읽으며 은혜 받고 공부하도록 했더니 상당히 좋은 효과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 후 좀 더 발전시켜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도 내용도 실어서 복음을 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성령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젊은이들과 의논하여 각자 분야별 기자가 되게 했지요. 저는 매주 저의 설교를 타이핑해서 내놓기로 하고 어떤 사람은 컴퓨터로 고국의 신문의 내용 중에 좋은 부분을 발췌하기도 하고(20년 전에는 사람들이 컴퓨터로 고국의 신문 보는 것이 어려운 시대였지요) 또 어떤 사람은 기독 만화 또는 생활정보 등 각종 좋은 글을 모으게 했고 모여진 기사들을 편집하여 프린트하니 좋은 전도지, 모든 사람들에게 호응 받고 칭찬 듣는 작은 신문이 되었습니다.
당시에 그곳 교민들이 이 신문을 매주 받아보고 너무 좋아하시고 찬조금도 많이 주어서 그 찬조금으로 기자들에게 회식비를 지급해 주기도 했었답니다.
그러다 지금 제가 사명 감당하고 있는 ALASKA FAIRBANKS (알라스카 훼어뱅스)에 2004년 9월에 새로 부임되어 왔는데 이곳은 미국이라도 남미보다 한인들이 적게 살고 대부분은 미국 사람들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 분들이기에 만나기도 힘들고 전도하기도 불가능했습니다.
당시 제가 부임된 교회에는 성도가 한인 미국인 합쳐서 7명 있었지요. 참으로 암담한 현실 속에서 전도 전략을 위해 기도하다가 남미에서 했던 문서 선교를 이곳에서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컴퓨터 한 대도 없고 아무 기재가 없었습니다.
그때 주님을 믿는 자에게 불가능은 없다는 말씀을 되새기면서 250달러짜리 프린터기 한 대를 샀고 제가 남미에서 가져온 노트북 한 대로 시작 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는 일꾼도 없고 제 자신이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루는 것도 아니고 시설도 없고 이것을 계속 할 수 있는 재정적인 뒷받침도 미약하고 해서 너무 힘들었습니다.
하루는 남미에서 노트북 속에 입력하여 가지고 온 자료들이 다 날아가 버려서 문서선교를 포기하려고 했는데 제 아내가 "포기하면 김송환 목사가 아니지, 끈기와 인내가 다 어디 갔느냐, 용기를 내어서 다시 해보시오" 하더라구요. 생각해 보면 그때 아내의 말이 주님의 음성이었던 것 같습니다. 힘써 해보니 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졌으니까요. 그래서 다시 힘을 내어 지금까지 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다 타주에 살고 계시는 분이 우리교회에 다니시는 부모님을 만나 뵈러 오셨다가 감동을 받아 컴퓨터 한 대를 사주셨고 프린터기도 좀 더 좋은 것으로 마련해 준 일도 있습니다.
2. 교회 신문이나 잡지 발행은 대부분 중. 대형 교회에서 하는 것으로 아는데 '겨자씨'선교지 발행이 쉽지만은 않으실 것 같습니다.
지금 저희 교회는 성도들이 한인 15명, 미국인 30명쯤 됩니다. 결국 저는 매주 10여명의 한인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 셈이지요. 미국인은 미국인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고 있으니까요. 이곳 사정과 형편으로 본다면 목양의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겨자씨가 있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온 세계를 저의 구역으로 삼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 은혜를 받는다고 생각하니 기쁨이 충만하답니다.
앞으로 교회의 일꾼과 재정이 더 허락된다면 정말 본격적인 문서 선교를 하고 싶습니다. 교회 안에 성도들을 모아놓고 설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서를 통해서 말씀을 전하는 것도 참으로 귀한 사명이라는 것을 날이 갈수록 더 깨닫게 됩니다. 아마도 하나님 앞에 가서 설 때 이 문서선교에 대하여 칭찬해 주실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저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하고 심혈을 기울여서 하고 있으니까요.
3.'겨자씨'는 언제부터 시작됐고 어느 지역에 몇 부 정도 배포되고 있습니까?
제가 이곳 ALASKA에 2004년 9월에 부임되어서 그해 10월3일에 창간호가 6페이지로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부임 하자마자 서둘러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에는 매주 60부씩 발행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곳 교민 주소록을 보니까 이웃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세어보니 약 40 가정 정도가 전도 대상이더군요. 그래서 40부는 이 지역 모든 가정에 우편으로 보냈고 나머지 10부는 우리교회 성도들에게 주어서 보도록 하고 있으며 나머지 10부는 한인식품점에 비치하여 우편에서 누락된 한인들이 식품점에 왔다가 가져가서 보게 했답니다.
그러다 조금씩 알려져서 보내주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생겨나서 120부로 늘려 만들고 페이지도 6페이지에서 12페이지로 확장하게 되었습니다.
보내고 있는 곳은 이 지역 FAIRBANKS(훼어뱅스) 전체와 ANCHORAGE(앵커러지) 20부 LA. 뉴욕. 워싱톤. 오클라호마. 맥시코주. 아리조나주. 시애틀. 등등 그 외에 일본. 한국 이렇게 다양한 곳으로 날아가고 있습니다.
2007년 12월까지 이것을 매주 발행하다가 2008년 1월부터 재정 형편상 격주로 발행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1년에 겨자씨를 위한 비용이 8000 달러가 들어갔는데 교세가 약하다 보니 이것도 힘들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미약한 교회를 섬기면서 요한계시록 3장에 소개된 빌라델비아 교회를 생각합니다.
"...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계3:8)
이 말씀대로 적은 능력밖에 없는 교회이지만 주님의 말씀대로 선교해 보겠다고 몸부림 칠 때 칭찬해 주실 것을 기대해 봅니다.
4. '겨자씨'를 통해 복음을 얻은 간증이 많으실 텐데 몇 가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장학호 선교사님(이전 에콰도르 과야낄 선교사)이 한국의 재소자들 3명을 소개해주어서 겨자씨를 열심히 보내주었더니 세상과 결별된 높은 담장 속에서 복음이 무르익는 냄새가 이곳까지 풍겨져 나오고 있습니다. 겨자씨를 읽고 편지를 보내온 것을 보면서 너무 감사하여 눈물을 흘린 일도 있었습니다.
장 선교사님이 고국의 재소자 세분을 소개하시기 전에 이곳 훼어뱅스 감옥에 한인 두 사람이 수감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면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약 1년간을 매주 면회하여 정해진 면회 시간 1시간을 유리벽 사이로 마주보면서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1주일에 한 시간은 새 생명이 자라나게 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가로막힌 유리벽 때문에 또는 감옥소의 법칙상 아무것도 직접 전달하지 못하게 되어 있더군요. 그래서 알아보았더니 우편으로 겨자씨 정도 크기의 신문은 넣어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부터 열심히 넣어주었고 그 분들은 열심히 탐독하여 너무 빠른 속도로 새 생명이 자라나는 것을 보게 되었고 그 기쁨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제 목회 27년 중에 세상 가운데서는 이렇게 빠르게 새 생명을 키워 본 일이 없었습니다. 두 분 중에 한 분은 15년 형을 받아 타 지방으로 전출하게 되었고 또 한사람은 모든 형기를 마치고 나왔습니다. 그 한사람이 감옥에서 겨자씨를 통해 전도가 되니 온 가족이 다 주님을 영접했고 침례를 받았으며 한국에 있는 부모님까지 예수를 믿게 된 것입니다. 그 가정 삼대가 한꺼번에 전도가 된 셈이지요. 이 분들은 지금도 저희 교회에서 충성을 다하고 있답니다.
작은 겨자씨는 비록 적은 생명운동이지만 제가 갈수 없는 곳을 자유자재로 날아가니 민들레 홀씨 같다는 말이 아주 실감 나네요.
5. '겨자씨'를 통해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특별한 그룹이나 대상이 있으십니까?
만약 우리교회가 커진다면 전 세계를 향해 날아가는 복음 전도지를 만들고 싶습니다.
이단자 여호와 증인들이 세계 여러 나라 말로 그들의 전도지를 만들어 배포하듯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복음을 전하는데 정해진 대상자는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역시 복음은 소외되고 힘든 지역에서 더 잘 받아지고 열매가 많이 나타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영육 간에 굶주리고 소외된 곳에 더욱 많이 보낼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지향하는 운동은 역시 겨자씨 생명운동입니다. 눈에 잘 띄지도 않은 작은 생명 운동이기에 이 소임에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
저는 겨자씨 운동을 하면서 저의 노년에 할 일도 발견했습니다. 현재 나이 63세이니까 곧 다가올 미래이지요. 교회를 섬기는 사명이 끝나면 더 적극적으로 문서 선교를 하려고 지금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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