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1월 말 샌프란시스코 공항을 거쳐 캘리포니아대학 데이비스캠퍼스에 도착했다. 데이비스에서는 10년 전, 2년 정도 살았기 때문에 그다지 낯설지는 않다. 이번에는 6개월 간 체류하면서 농업정책을 연구할 계획이다.

와서 보니 데이비스 식료품 가게, 새크라멘토 이발소와 자동차 정비소의 안면 있는 한국분들이 여전히 성실하게 일하고 있어서 반가웠다. 처음 며칠동안 살림살이와 먹고 마실 거리를 장만하느라고 분주히 움직였다. 지인의 차를 빌려 이것저것 구입하러 다니는데 한 곳에서 생수 1갤런에 1달러의 세일을 하고 있었다. 최소 구입 단위가 10갤런이라 운반하기가 만만치 않게 보였다. 하지만 마실 물이 떨어져서 작은 병에 수도물을 받아서 냉장고에 넣고 나온 처지라 정말 ‘견물생심’의 ‘물’자가 마시는 ‘물’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물욕심’이 들었다.

이곳 학교에 와서 가장 자주 들은 이야기 중의 하나가 가뭄에 관한 것이다. 2007년과 2008년에 가물었는데 금년도 그에 못지 않게 가물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주는 원래 사막지대이다. 주 이름도 ‘뜨거운 오븐’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럼에도 캘리포니아주는 시에라 산맥 눈 녹은 물을 거대한 댐에 가두었다가 산업 및 생활용수로 사용하고 부족한 물은 겨울에서 4월까지 내리는 강수량을 통해 보충하는 방식으로 물이 공급되어 별 문제 없이 경제성장을 이뤄왔다.

매년 50만명 정도 늘어나는 인구와 미국 전체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원예작물과 견과류를 생산하는 농업은 캘리포니아 주 풍요의 상징이다. 그러나 스왈제네거 주지사는 금년을 ‘가뭄의 해’로 선포하고 대책에 나섰다. 이는 1991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시에라 산맥에는 곳곳에 센서가 설치되어 적설의 깊이와 수분함량을 측정하고 있는데 금년의 측정치는 평년에 비해서 상당히 낮다. 게다가 1월 강수량도 평년 수준에 훨씬 미치지 못하였다. 가뭄에 따른 물 부족은 주지사의 말처럼 경제, 일자리, 지역사회, 그리고 삶의 질 전반에 걸쳐 장기적으로 큰 영향을 미칠 심각한 사안이다.

가뭄과 물 부족 현상은 한국을 포함한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금년 다보스 포럼에서 ‘물 부도 (Water Bankruptcy)’가 언급된 것도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물 부족’ 국가 중의 하나인 한국도 작년 하반기 이후 강수량이 적어서 일부지역에서는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다. 국내의 지방자치단체 사이에 물을 둘러 싼 분쟁도 점차 그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일부 지역 주민들은 생활과 가축사육에 필요한 물이 부족하여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가뭄과 물 부족 현상은 멕시코, 아르헨티나, 호주, 중국, 태국 등 지구촌 동서남북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가뭄이 심한 호주는 약 120년 전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최악의 가뭄이 7년 째 지속되어 쌀과 원예작물 생산이 급감하고 상징적인 유칼립투스 나무도 가뭄이 심한 지역에서는 거의 고사되고 있다. 2004년 한국의 쌀 재협상 때 호주 정부가 어렵사리 확보한 한국 쌀 수출 쿼터는 가뭄 때문에 한 번도 써먹지도 못하였으며, 호주의 쌀 산업 자체가 존폐의 기로에 처해 있을 정도이다.

우리는 예로부터 물은 ‘흔한’ 것, ‘값싼’ 것, ‘아무데나 있는’ 것으로 여겼다. 돈을 ‘물 쓰듯’ 한다, 심각한 일에 ‘물 타기’ 한다는 식으로 물을 가볍게 여겼다. 미국에서도 수도요금은 사용량과 관계없고, 생수는 항상 ‘세일’하며 '워터링 (watering)'이란 단어의 쓰임을 볼 때 한국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과학자들의 경고가 아니더라도 세상은 물이 부족한 상황으로 크게 바뀌고 있다. 올 봄 캘리포니아에 갑자기 많은 비가 내려 가뭄이 일시적으로 해소될 확률은 낮고 대세는 바꿀 수는 없다. 산업과 생활 양면에서 물을 절약하는 기술이 개발, 도입되고, 수자원 절약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속속 마련될 것이다. 그 전에 일상생활에서 물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인식하고 물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습관을 길러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필자 약력
최정섭(崔正燮)
1954년 生(부인과 1남 1녀)
서울대학교 졸업
미국 위스콘신주립대 농업경제학박사
농림부 농업통상정책관 (차관보) 역임
제10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 역임
현 캘리포니아대학 농업문제연구소 (데이비스 캠퍼스) 객원연구원

jsupchoi@primal.ucdavis.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