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도는 말씀 안에 들어오면 길이 있고 생명이 있고, 사는 방법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9절에 중요한 말씀이 있는데,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 민족을 이끈 모세가 이런 말을 합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나타난 줄을 믿게 함이니라.”
시대가 바뀌고 주변의 사람이 바뀌어도 말씀을 부여잡고 살면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야곱의 하나님이, 이삭의 하나님이 바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겁니다.
옛날에 충청남도 산골에 머슴이 한명 살았습니다. 말 그대로 머슴이라 누구 하나 사람 같지 않은 대접을 할 때 입니다. 주인에게 있어 막 부리는 머슴이고, 아이들조차도 반말을 하고, 동네에 다녀도 때로는 개만도 못한 취급을 당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동네에 교회가 들어섰는데, 목사님도 허리 굽혀 인사하고 장로님도 허리 굽혀 인사하는 게 아닙니까? 다들 ‘종’처럼 자기를 사람 취급도 안하는데, 그 분들은 자기를 사람 같이 대접하는 게 아닙니까?
얼마나 놀랬겠습니까? 그래서 그 교회 부흥회에 한 번 갔는데, 부흥회 이틀째에 강사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 투자하는 사람은 최고 100배까지 이익을 올린다.’는 것입니다.
그 머슴은 이 말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는 정말 이 말씀을 믿고 싶었고, 이 말씀을 꽉 붙잡았습니다. 그는 평생소원이 20마지기 농사를 짓는 것인데, 당시 논 1마지기 값은 쌀 10가마니였습니다.
그러니까 20마지기 논농사를 지으려면 쌀 200가마니가 있어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투자하면 최고 100배까지 이익을 올릴 수 있으니, 쌀 2가마니만 하나님께 바치면 된다는 계산이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그 머슴은 당장 살던 집을 팔아버리게 됩니다. 그 집이 어떤 집인고... 하니, 총각시절에 벌었던 쌀 3가마니로 샀던 집입니다. 그는 급히 집을 내놓았고, 그는 쌀 2가마니 받고 집을 팔아 즉시 교회에 갖다 바칩니다. 이제 그에게는 집도 땅도 없이 살아야 할 판입니다.
그런데 그 집을 샀던 사람이 이사 날짜를 잡으려고 무당을 찾아갔는데, 그 무당이 말하기를, “당신 그 집에 들어가면 죽어, 그 집에 들어가면 안 돼”라는 겁니다. 놀라서 그 집 산 사람이 머슴을 찾아와 무르자고 합니다. 그러나 이미 그 머슴은 집 판 값, 쌀 2가마니를 하나님께 바쳐버렸기 때문에 무를 수도 없다고 대답합니다.
그 집 산 사람은 무당 말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그만 집을 포기하고 말아버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집에 그냥 눌러앉아 그대로 살면서 정말 하나님 말씀을 무섭게 붙잡았다고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고 100배로 받을 줄로 믿었다고 합니다.
소문이 나자 그 교회 목사님도 겁이 나서 아주 세게 기도해 주었는데,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놀랍게도 정말 나중에는 차례차례로 논을 사들여 땅 부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머슴에게는 소원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학교 선생님이 되는 것입니다. 그 소원을 목사님께 말씀드렸더니, 목사님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 머슴이 선생님이 된 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지혜롭게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 되는 것보다 더 나은 게 있습니다. 아예 학교를 지어 이사장님이 되십시오."
그러자 그는 정말 중, 고등학교를 지어 이사장이 됐습니다. 많은 선생님들을 거느리는 이사장이 된 것입니다. 이 머슴 이야기는 지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실제적으로 일어난 일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은, 하나님을 강력하게 붙잡고 믿고 나아가는 자에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증거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붙들고 살아갑니까? 세상의 것 붙잡으면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것 붙잡으면 소망이 생기는 겁니다.
확실한 소망이 없는 사람은 현실 앞에 주저앉지만, 확실한 소망이 있는 사람은 약속이 있기 때문에 다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찬양한다는 것은, 현실 앞에서 다른 거 안 보고, 주님 끈 놓치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 하나님을 높여드릴 때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 오늘 나의 하나님으로 찬양의 역사가 일어나는 놀라운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찬양 속에 소망을 붙드시는 행복한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갈라디아서 3:9절에 중요한 말씀이 있는데,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 민족을 이끈 모세가 이런 말을 합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나타난 줄을 믿게 함이니라.”
시대가 바뀌고 주변의 사람이 바뀌어도 말씀을 부여잡고 살면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야곱의 하나님이, 이삭의 하나님이 바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겁니다.
옛날에 충청남도 산골에 머슴이 한명 살았습니다. 말 그대로 머슴이라 누구 하나 사람 같지 않은 대접을 할 때 입니다. 주인에게 있어 막 부리는 머슴이고, 아이들조차도 반말을 하고, 동네에 다녀도 때로는 개만도 못한 취급을 당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동네에 교회가 들어섰는데, 목사님도 허리 굽혀 인사하고 장로님도 허리 굽혀 인사하는 게 아닙니까? 다들 ‘종’처럼 자기를 사람 취급도 안하는데, 그 분들은 자기를 사람 같이 대접하는 게 아닙니까?
얼마나 놀랬겠습니까? 그래서 그 교회 부흥회에 한 번 갔는데, 부흥회 이틀째에 강사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 투자하는 사람은 최고 100배까지 이익을 올린다.’는 것입니다.
그 머슴은 이 말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는 정말 이 말씀을 믿고 싶었고, 이 말씀을 꽉 붙잡았습니다. 그는 평생소원이 20마지기 농사를 짓는 것인데, 당시 논 1마지기 값은 쌀 10가마니였습니다.
그러니까 20마지기 논농사를 지으려면 쌀 200가마니가 있어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투자하면 최고 100배까지 이익을 올릴 수 있으니, 쌀 2가마니만 하나님께 바치면 된다는 계산이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그 머슴은 당장 살던 집을 팔아버리게 됩니다. 그 집이 어떤 집인고... 하니, 총각시절에 벌었던 쌀 3가마니로 샀던 집입니다. 그는 급히 집을 내놓았고, 그는 쌀 2가마니 받고 집을 팔아 즉시 교회에 갖다 바칩니다. 이제 그에게는 집도 땅도 없이 살아야 할 판입니다.
그런데 그 집을 샀던 사람이 이사 날짜를 잡으려고 무당을 찾아갔는데, 그 무당이 말하기를, “당신 그 집에 들어가면 죽어, 그 집에 들어가면 안 돼”라는 겁니다. 놀라서 그 집 산 사람이 머슴을 찾아와 무르자고 합니다. 그러나 이미 그 머슴은 집 판 값, 쌀 2가마니를 하나님께 바쳐버렸기 때문에 무를 수도 없다고 대답합니다.
그 집 산 사람은 무당 말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그만 집을 포기하고 말아버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집에 그냥 눌러앉아 그대로 살면서 정말 하나님 말씀을 무섭게 붙잡았다고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고 100배로 받을 줄로 믿었다고 합니다.
소문이 나자 그 교회 목사님도 겁이 나서 아주 세게 기도해 주었는데,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놀랍게도 정말 나중에는 차례차례로 논을 사들여 땅 부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머슴에게는 소원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학교 선생님이 되는 것입니다. 그 소원을 목사님께 말씀드렸더니, 목사님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 머슴이 선생님이 된 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지혜롭게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 되는 것보다 더 나은 게 있습니다. 아예 학교를 지어 이사장님이 되십시오."
그러자 그는 정말 중, 고등학교를 지어 이사장이 됐습니다. 많은 선생님들을 거느리는 이사장이 된 것입니다. 이 머슴 이야기는 지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실제적으로 일어난 일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은, 하나님을 강력하게 붙잡고 믿고 나아가는 자에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증거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붙들고 살아갑니까? 세상의 것 붙잡으면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것 붙잡으면 소망이 생기는 겁니다.
확실한 소망이 없는 사람은 현실 앞에 주저앉지만, 확실한 소망이 있는 사람은 약속이 있기 때문에 다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찬양한다는 것은, 현실 앞에서 다른 거 안 보고, 주님 끈 놓치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 하나님을 높여드릴 때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 오늘 나의 하나님으로 찬양의 역사가 일어나는 놀라운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찬양 속에 소망을 붙드시는 행복한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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