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책 한 권을 손에 들었다. 지혜가 태권도 class를 하는 동안 읽으려고 말이다. 하지만 옆에서 블록 놀이를 하는 기쁨이와 놀아주다보니, 책을 펼 시간이 없었다. 그러다가 책 사이에 껴있는 종이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옛날 주보였다. 지금은 3단으로 바뀌었지만, 2006년만 해도 2단 주보였던 모양이다. (나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흙내음소리’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고마운 마음, 미안한 마음”이란 제목이었는데, 내가 썼으면서도 새로운 글을 읽는양 한숨에 읽어내려갔다. 옛날 생각이 났다. 소중한 기억이었다. 요즘은 방학 중에도 로체스터에 남아 있는 청년들이 많아, 수요예배때 빈자리가 많이 느껴지지 않지만, 3년 전만해도 방학이 되면 세네 명이 예배 드리곤 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지내왔던 일들이 소중한 기억으로 다가온다. 조그만 것에도 감사했던 일들이 떠오른다. 그래서 이번 주에는 ‘그때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 고마운 마음, 미안한 마음! > (2006년 1월 8일)

방학 때가 되면, 예배 인원이 눈에 띄게 줄어듭니다. 주일 예배도 그러하지만, 수요기도회도 인원이 감소됩니다. 그 이유는 예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학생들이 방학을 맞아 한국으로, 또는 (미국 내) 각자 집으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지난 수요일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예배 시간 얼마 전에 전화가 왔습니다. 규진 자매였습니다. “목사님, 혹시 오늘 반주자가 있나요?”라는 뜬금없는 질문에, 제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무슨 말이죠?” 알고 보니, 반주 하던 자매가 보스턴으로 레슨을 받으러 간 것이었습니다. 선영 자매가 지난 주, 제 아내에게 얘기를 했다는데, 아내가 그만 잊어버리고 저에게 말을 안 해 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은영 자매 역시 이 날(수) 동료 언니 이사
하는 것을 도와주어야 했기에, 교회에 나오지 못할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반주자가 없는 셈이었습니다. 규진 자매가 그 사실을 알고 전화를 한 것이었지요. 그런데 규진 자매도 지금 로체스터가 아닌 모양이었습니다. 하지만 반주자가 없을 것임을 확인하고는, “최대한 빨리 예배 시간에 맞춰 가겠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 마음이 귀했습니다.

시간이 되어 예배당에 갔습니다. 7:30! 예배 시간이 되었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공교롭게도 수요기도회에 참석하는 멤버들이 이날따라 연주회다, out of town 이다 해서, 예배에 나오지 못한 것입니다. 5분이 지났습니다. 아내와 예배를 드리려고 일어서려고 하는 순간, 누가 서둘러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규진 자매였습니다. 순간 고맙기도 하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에는 무엇이 고마웠는지, 무엇이 미안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냥 두 마음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규진 자매는 피아노 앞에 앉았고, 저는 제단 앞에 섰고, 앞에는 제 아내와 지혜가 앉아 있었습니다. 찬송을 부르면서도 자꾸 시선이 문 쪽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이내 예배에 집중하기로 하고, 열심히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아내의 기도가 끝난 후, 함께 일어나 성경을 봉독했습니다. 그리고 설교를 시작하려는데,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또 다시 들었습니다.

설교를 시작한 지 5분 정도가 지나서였을까요.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최선이 성도와 세린이였습니다. 순간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나와 줘서 고맙다는 식의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기도하는 자리에 한 영혼이 와서 앉아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귀한 일인지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것이었습니다. 비록 시간에 늦었지만, 이 자리를 기억하고, 하나님 앞에 머리 조아리고 기도하러 나온 그 발걸음이 이렇게 귀하게 여겨진 것은 처음입니다.

아마도 그래서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나 봅니다. 고마운 마음은, 함께 이 교회를 기도함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 나온 발걸음들에 대한 고마움이었고, 미안한 마음은 한 영혼의 귀함을 잊고 살았던 그리고 나의 영적 상태가 보여지는 것 같아 하나님 앞에 드는 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비록 적은 인원이 예배를 드렸지만, 함께 기도할 수 있는 성도들이 있음에 위로가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이 자리에 나온다고 해서 완벽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목회자인 저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은 죄와 허물 그리고 실수를 저지르며 살아갑니다. 그래도 그들이 아름다운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여,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모여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간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잊지 맙시다. 바쁜 중에도, 힘든 가운데서도, 예배에 참석하며 함께 기도할 때 그 교회는 살아납니다. 문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기도하러 나오는 한 영혼 한 영혼을 보시며 예수님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