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이 다가오고 있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그렇듯 세상이 온통 성탄 분위기에 들떠 있다. 거리에는 거대한 트리와 화려한 장식들이 즐비하고 백화점과 샤핑몰은 선물을 사기 위해 모여든 인파로 북적인다. 어린 아이들도 산타클로스의 선물공세를 기대하며 양말을 준비하는 일에 분주하다.

그러나 성탄절의 전통이 상업성과 그에 편승하는 일부에 의해 본래 의미를 잃고 있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예수 탄생을 기념하는 기독교 성일이 세속적 축일로 전락해 버렸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같은 현실을 바로잡고 불신자들을 계몽시켜야 할 책임을 안고 있는 교회들조차 이러한 분위기에 휩쓸려 성탄절 세속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매년 성탄절마다 대부분의 교회에서 행해지는 관련행사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어른들은 예수 탄생과 관련된 노래를 들으며 그 뜻을 되새길지라도 어린이나 청소년들은 예수가 쏙 빠진 화이트 크리스마스, 산타를 찾으라 한다. “애들이 뭘 알아”라는 어른들의 교만은 아기로 오신 예수님이 우리의 어린 자녀 2세들에겐 의미없는 존재로 전락하도록 내버려 둔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아기로 오실 이유가 없었다.

어떤 교회학교에서는 가짜 산타클로스까지 동원해 선물을 나눠준다. 세속적 캐롤과 산타로 대변되는 성탄 분위기를 교회로 고스란히 옮기는, 아무런 검증되지 않은 이런 구태의연한 행사가 올해도 여러 교회에서 계속된다. 존귀한 하나님의 아들이 자신의 피와 살을 나누어 주고자 인간의 옷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그 의미를 묵상한다면 산타가 주는 선물이나 캐롤은 그 비우심의 거룩한 사랑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러한 세태 속에 시카고 지역의 한 교회가 뜻깊은 성탄을 보내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하고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글렌브룩감리교회(담임 백영민 목사)다. 주일학교 어린이들이 주축이 되어 성탄 이브인 24일, 노숙자들을 찾아가 식사와 선물을 나눠주고 이후에는 이들과 함께 교제의 시간도 가진다고 한다. 어린이들을 산타나 기다리는 소극적 존재가 아닌, 예수의 성육신과 섬김을 체험하는 적극적 성도로 만들어 가려는 시도다.

성탄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죄악에 개입해 오신 하나님의 대사건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태어나기로 예언된 베들레헴에는 오히려 그분이 태어날 여관방 하나 준비되지 않았듯 예수를 맞이해야 할 사명이 있는 한인교회에도 오히려 그분을 누일 작은 공간, 심지어 구유조차 없지 않은가? 교회는 산타나 어색한 캐롤의 자리를 당당히 주인된 그리스도에게 내어 놓고 그의 오심과 사랑을 기뻐하고 선포해야 할 책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