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정체성 갈등을 겪고 있는 한인은 비단 1.5세나 2세만이 아니다. 바로 한인 입양인들이다. 미국인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더라도, 한국말을 전혀 할 줄 모르고 영어만 능숙하더라도 자신의 뿌리인 한국을 잊기는 쉽지 않다. 1.5세나 2세가 한국문화와 미국문화 사이에서 갈등한다면, 한인 입양인은 한국문화로부터 격리된 미국문화 속의 한인인 자신의 모습에 갈등한다.

지난 7일 오후 남부시카고한인연합감리교회에 백인 부모님의 손을 잡은 한인 어린이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성탄절을 맞이해 한인 입양인과 함께 하는 파티가 있기 때문이다. 남부시카고한인연합감리교회에서 준비한 음식과 한국 절 배우기 등 다양한 시간이 마련됐다. 입양되어 미국인 가정에서 자라며 한국음식을 맛볼 기회가 없는 입양 어린이들에게 불고기, 잡채 같은 한국음식은 아직 생소한 모습이었다. 백인 부모의 손을 잡고 온 한 한인 어린이는 자신의 흑인 형제를 다른 한인 친구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이들에게 그랜드마(Grandma)로 통하는 강윤자 권사는 벌써 15년째 이 모임을 열고 있다. 당시 이 지역에 한인이 많지 않던 때이다. 세탁업을 하던 강 권사는 세탁물을 맡기러 백인 부모의 손을 잡고 세탁소를 방문하는 한인 어린이들을 안아주기 시작했다. 한번 안고 두번 안고 세번 안고… 나중에는 한인들은 돌잔치를 어떻게 하는지 그들이 물어 왔다.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한복을 빌리고 떡을 마련해서 잔치를 도와 주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강 권사의 한인 입양인 사랑은 이제 남부시카고한인연합감리교회로 번졌다. “누가 뭐라 해도 이 아이들은 한국의 미래이고, 우리의 자손이고, 우리의 가족이예요. 우리가 이렇게 사랑을 주고 섬기면 이 아이들이 미국의 미래가 되고 한인교회와 교회의 일꾼이 되요.”

▲강윤자 권사와 한인 입양인들의 15년 사랑은 벌써 이들을 주님 안의 한 가족으로 만들었다.
기자가 강 권사를 만나는 중간 중간에 몰려드는 어린이들은 강 권사에게 자신의 한복입은 모습을 보여 주며 자랑하기도 하고, 이번에 대학에 합격했다는 좋은 소식을 전해주는 청소년도 있었다. 벌써 15년째이니 그때의 어린이들이 이젠 벌써 대학생인 셈이다. 부모들도 강 권사에게 안부를 물으며 오늘의 ‘great dinner’에 감사를 표했다.

이 지역에 한인 입양인 가족은 70여 가정이다. 매년 성탄절을 앞둔 잔치에는 120여명이 참석한다고 한다. 오늘은 40여 가정이 참석했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친목을 다진다.

대학생이 되고 어른이 되어 이 지역을 떠나는 어엿한 입양인들의 이야기를 할 때, 강 권사는 눈물을 훔쳤다. “당신은 나에게 특별한 사람이에요”라는 그들의 말 한마디는 뿌리를 찾아 회귀하는 본능을 가진 한국인들에게 뿌리를 찾아준 그랜드마에 대한 감사를 대변해 주는 듯 하다.

▲절을 배우는 어린이들의 모습에 재미와 진지함이 묻어난다.
갑자기 강당이 소란해지며 어린이들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지금은 한국식 절에 관해 배운다고 한다.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는 어린이들의 모습에 즐거움과 재미가 넘쳐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