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얼마전 소말리아에서 83년도부터 지역 사회 개발과 교육 사업 등을 펼쳐온 한 선교사를 만나게 되었다.

배우 김혜자 씨가 담담한 필체로 써 내려간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라는 책을 통해 접한 소말리아는 극한 혼돈과 불안으로 점철된 곳이었다.

하지만 그 혼돈의 가운데서 25년 이상을 지내온 소말리아 선교사의 얼굴에는 평안함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 참 놀라웠다.

이 선교사는 시카고세계선교대회 참가와 보스턴 퍼킨스 맹학교 교장과의 만남을 위해 미국을 방문했다. 선교대회를 통해 한 명이라도 동역자를 찾고 현재 운영하고 있는 맹아 학교 '레인보우 스쿨'과의 협력을 위함이었다.

소말리아의 상황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선교사는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에서 서술하는 때보다는 훨씬 나아졌다는 희망적인 메세지를 전해 주었다.

89년 말부터 전쟁의 조짐이 보이다 90년 12월에 시작된 내전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지만 92년 유엔군과 함께 구호 단체들이 들어오며 3-4년만에 아이들의 영양 상태도 급격히 좋아졌다고 전했다.

그러나 혼돈과 불안은 여전해 개인 차원의 봉사자들도 들어오기를 꺼려하기 때문에 의료 사정은 열악하고 그 이유로 맹아들도 더욱 늘어나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선교사는 모두가 가난한 중에도 맹아인이나 장애인들은 더욱 가난하게 사는 것이 그 곳의 현실이라고 전했다. 문맹률이 88%인 그 곳의 교육의 부재가 가난을 대물림시킨다는 생각에 선교사는 3명의 맹아 학생들을 위해 학교를 시작했고 현재는 4학년까지 학생들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

학교가 없는 그 곳에서의 지속적인 교육은 어렵기 때문에 선교사는 미래를 내다보고 학생들에게 영어 교육을 시킨다. 또한 학교는 기숙 학교로 운영돼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학생들에게 훈련시킨다.

그 곳의 학생들은 "우리가 맹아인 것이 오히려 행복해요. 그렇지 않았으면 이렇게 잘 먹지도 못하고 영어 공부도 할 수 없었을텐데..."라고 말한다는 선교사의 얘기를 들으며 코 끝이 찡해졌다.

얼마전 부모 세미나 취재를 갔을 때 "길거리에서 크게 울던 아이도 부모가 안아주면 그 울음 소리가 적어지고 평정심을 되찾는다"는 얘기를 들은 것이 기억이 났다. 그 아이들도 사랑하는 아버지의 품에 안겨 폭풍우 같은 현실에 처해 있지만 안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 '행복한 학생'들을 가르치는 맹아 학교의 지도자는 케냐에서 많이 스카웃해 오는 편인데 유엔군이 파병되었을 때 한국에서 들어온 상록수 부대와 함께 만든 상록수 학교 졸업생들도 훈련을 받아 맹아 학교 지도자로 쓰임을 받는다. 맹아 학교의 지도자들은 보수는 많지 않지만 헌신하는 마음으로 맹아 학생들을 섬기고 있다고 선교사는 전했다.

그런데 얼마 전 이 선교사와 함께 일하던 형제 한 명이 복음을 전했다는 이유로 총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 작년 이 형제를 죽일지 모른다는 소문을 듣고 피신을 시켰지만 피신을 간 그 곳에서 그 형제는 주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선교사는 "그의 때가 되었으니 그런 일을 당한 것"이라고 담담하게 얘기했지만 그 마음은 오죽했을까. 그 일을 당하고 얼마 되지 않아 후원 교회에 보낸 선교사의 편지에 "순교가 복이라고 식구들에게 말하기가 참 힘이 들었습니다"라고 씌어져 있어 기자는 그 담담한 대답이 말할 수 없이 애통한 심정을 하루 하루 추스리고 추스려 나온 믿음의 고백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선교사는 그렇게 힘들 때마다 "하나님께서 '내가 음지나 양지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는 것처럼 저들도 구원받아야 한다. 네가 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전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음성을 듣고 그 곳에서 지금까지 일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선교사들을 만나고 선교지들의 사역을 전해 들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곳에도 살아계시고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며 동일하게 사랑하시며 사람을 세워 그들을 위해 일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비록 소말리아와 같이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비극적인 나라들의 상황을 볼 때에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하나 하는 암담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우리의 지식과 능력 너머에 계시는 주님께서 그 땅을 회복시키시기 위해 힘차게 일하시고 계시는 모습을 보며 희망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