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두 살 되는 아들 녀석이 사춘기에 접어드는 것 같습니다. 가끔 녀석의 몸에서 아버지의 로션 냄새가 나는 것과 목소리가 제법 굵어지는 것, 아버지의 속 옷 중 맘에 드는 것이 있으면 하나씩 입어 보는 것, 그리고 부모 앞에서도 자기 주장을 확실하게 하기 시작한 것을 보면, 이제 막 사춘기가 시작한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겠습니다.

한 달 전이던가, 갑자기 옷을 사달라는 것입니다. 한 번도 특정 상표의 옷을 사달라고 요구해 본 적이 없었던 아이인지라, 깜짝 놀랐지만, 그래도 자기의 취향이 생길 정도로 장성해간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은, 언젠가 함께 쇼핑 몰에 갔을 때 본 적이 있는 애버크롬비(abercrombie)와 홀리스터(holister)라는 것이었는데, 그 앞을 지나면서도 비싸겠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이 입에서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안된다고 했습니다. 값이 비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런 유명 제품을 입힐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이는 순간 실망하며 안색이 변하였지만, 그래도 하나만 사달라고 귀찮을 정도로 애걸했습니다. 전과 같지 않은 아이의 태도를 보니 이유가 있겠다 싶어 집에 돌아 온 뒤 살며시 다른 사람에게 알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또래 아이들이나 고등 학생들이 유행처럼 그 옷을 입는 다며 그렇게 비싸지도 않다고 귀 띰 해주었습니다. 그래도 유명 브랜드를 골라 입히기는 싫은 마음에 미적거리며 미루다가, 어떤 일을 성취했다는 격려로 티셔츠 한 장을 사주기로 하고 나섰습니다. 숨쉬기 조차 어려운 굴속 같은 매장, 우글거리는 아이들 틈 속에서 맘에 드는 옷 하나를 골라, 십 불 조금 넘게 주고 나오면서, 요즘 아이들의 유행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거리가 먼 청소년 문화 속으로 아들이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으로 마음이 다소 불편했지만, 녀석은 그렇게도 좋은지, 지금가지도 그 옷을 아침 저녁으로 손수 빨아 입곤 합니다. 더 비싼 다른 옷은 벗은 그대로 팽개쳐도, 그 옷은 옷걸이에 고이 걸어 두는 것을 보고 그저 웃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이에게 옷을 사 준 이후, 길거리나 교회에서 왜 그리 애버크롬비와 홀리스터를 입은 사람이 많이 눈에 뜨이는 지 모르겠습니다. 전에는 상표 이름조차 낯설었지만, 이제는 아이들 서넛이 모여 있으면 한 두 사람이 입은 같은 상표 옷이 눈에 들어옵니다. 말하자면, 전에 보이지 않던 것이 누군가에 의해서, 혹은 어떤 한 사건으로 말미암아 갑자기 보이게 된 것입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의도하지 않았을지라도 우리도 어느 한 사람의 시야를 열어줄 수 있습니다. 다만 어떤 것을 향한 시야를 열어주느냐, 이것이 중요할 뿐입니다. 그동안 보이지 않던 아름답고 선한 일을 보이게 할 수 있을 것이며, 한 번도 만나지 않았던 더럽고 추한 것들이 보이도록 도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좌절과 낙심의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에게 긍정과 소망이 보이도록 눈을 열어주는 말과 행동이 있을 것이며, 희망과 용기로 담대하게 사는 사람에게 두려움과 절망의 늪이 보이도록 밀어 넣는 말과 행동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도 우리의 말과 글이 누구에게 어떤 눈을 열어 주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 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들에게 하늘을 향한 눈을 열어주고 싶습니다. 비록 그 사람도 의식하지 못하고, 나도 깨닫지 못해도, 결과적으로 하늘을 보이는 자연스러운 삶이 값진 인생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누가 무슨 옷을 입는가 내 눈을 열어 준 아들이, 앞으로 살아가는 내내, 어떤 선한 일에 내 눈과 다른 사람의 눈을 열어줄 것인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하늘을 바라봅니다.

글/ 그레이스교회 원종훈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