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이 신앙생활을 하지만 그 사람의 환경과 성격, 경험에 따라 하나님을 표현하는 생각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자신이 좋으면 좋으신 하나님이고, 그렇지 않을 때는 이해되지 않는 하나님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면서도 하나님은 이해 하실거야, 또는 좋아하실 거야 등으로 나름대로 생각합니다. 이와 반면에 늘 고난을 생각하기에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것들을 누려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과 함께 심술궂은 하나님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폴 리틀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마치 천국 베란다에 서서 누구라도 인생을 즐기는 사람이 있는지 감시하는 스크루지 영감처럼 생각한다. 스크루지는 행복한 사람이 눈에 띄기만 하면 고함을 지른다. ‘당장 그만두지 못해!’ 하나님을 그런 분으로 여기는 것은 신성모독이며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는 일이다.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어쩌다가 하나님을 재미없고 흥이나 깨뜨리는 방해꾼으로 보는 시각이 생겨났는지 쉽게 알 수는 없습니다. 아마도 신약성경의 제자들의 삶에서 세상을 버리고 금욕과 절제,희생의 생활 속에서만 더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다는 선배 사역자들의 외침에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우리가 좋아하는 것은 우상이 되기 쉬우며, 오직 주님으로부터만 즐거움이 비롯되어야 한다는 근본주의적인 신앙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성경은 렘29: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롬8:2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라고 말씀하십니다. 스쿠르지와는 정반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세상 속에서 선용함으로 즐거움을 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단, 롬12:2의 말씀처럼 “선하시며 기뻐하시는 온전하신 뜻”을 생각하며 누려야 할 것입니다.

미국이민생활이라 좀 독특한 문제들이 있습니다. 한국영화와 오락 프로그램들을 보려고 가끔 비디오집에 갑니다. 아는 성도님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솔직히 서로 머쓱할 때가 있습니다. 골프 때문에 고민하시는 목회자와 성도님들도 있습니다. 다 본인의 생각과 환경을 고려할 때 나름대로의 판단기준이 있을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장애인 부모는 즐거운 일이 있어도 장애자식을 생각하며 죄스럽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늘 죄책감과 '눌림" 속에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아내와 함께 공원을 산책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아내와 두 손을 잡고 걷고 있는데 이런 기본적인 여유도 없을 장애인들과 가족들을 생각하니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러나 말씀을 묵상하며 책을 읽으면서 ‘자유함’이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신 환경 속에서 자녀들이 안식과 기쁨, 즐거움을 누리기를 원하고 계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내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면 장애를 가진 환경 속에서 즐거운 일을 찾고 누리면 그것이 감사할 일입니다. 내가 가난한 나라에서 산다면 그 가난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기쁘고 즐거운 생활을 살면 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한국 비디오를 봄으로 향수를 좀 달래준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주신 문명의 이기인 것입니다. 골프를 치고 나서 힘차게 직장생활을 하고 주일 날 예배를 드린다면 삶을 잘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열심으로 일해서 돈을 버는 기쁨을 얻고, 그 돈을 가족과 교회와 이웃, 어려운 자들을 위해 쓴다면 그것처럼 아름다운 직장생활이 없는 것입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을 스쿠루지 영감으로 생각하며, 자신도 남을 판단하는 스쿠루지 영감이 되어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