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 ) J.존. ©위키피디아
J.존. ©위키피디아

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J.존의 기고글인 '할로윈 가면 뒤에 숨겨진 것들'(Behind the masks of Halloween)을 10월 13일 게재했다.  

J. 존은 목사, 연사, 방송인,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개인 팟캐스트인 'J.John Podcast'를 운영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할로윈은 거대한 상업적 행사로 자리 잡았다. 달력 속 하나의 기념일이었던 이 날은 이제 상점과 학교, 동네와 소셜미디어를 호박과 해골, 유령과 마녀, 화려한 분장으로 채우는 대중문화 행사가 됐다. 

상인에게는 대목이고, 많은 어른에게는 가벼운 놀이이며, 아이들에게는 분장하고 사탕을 모으는 날이다. 그러나 화려한 가면 뒤에는 진지하게 생각해 볼 질문들이 숨어 있다. 

기독교인들은 오랫동안 할로윈이 주술적인 대상에 대한 호기심을 부추기고, 어둠과 악과 죽음을 오락거리로 소비하게 한다는 우려를 제기해 왔다. 이와 함께 살펴야 할 문제가 있다. 할로윈은 삶의 중대한 질문들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 질문에 충분한 답을 제시하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특히 할로윈 문화의 상당 부분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사실을 가볍게 볼 수 없다. 반복해서 접하는 이야기는 아이들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 오늘의 즐길 거리가 내일의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다. 그렇기에 가면과 분장 너머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악은 인간의 마음에도 존재한다 

할로윈은 악에 눈에 띄는 모습을 부여한다. 흉터와 송곳니, 발톱과 핏자국, 소름 끼치는 얼굴로 악을 표현한다. 악은 창밖의 괴물이나 문 앞의 낯선 사람, 어둠 속에 숨은 존재처럼 주로 외부의 위협으로 묘사된다. 

물론 우리 주변에는 경계해야 할 위험과 파괴적인 영향력이 존재한다. 성경도 악한 영적 세력을 경계하도록 가르친다. 그러나 예수님은 더 불편한 진실을 말씀하셨다. 악은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도 있다는 사실이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마 15:19). 

인간이 겪는 비극을 괴물이나 악당,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우리 안에도 이기심과 부정직, 잔인함과 죄를 향한 성향이 있다. 주변의 어둠을 지적하기는 쉽지만 자신의 마음속 어둠을 인정하기는 어렵다. 예수님은 바로 그 내면을 돌아보도록 요구하신다. 

기독교가 행동을 교정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예수님은 죄의 용서와 근본적인 변화, 새 마음을 주신다. 문제의 뿌리가 마음에 있다면 외적인 행동만 바꾸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악은 언제나 흉측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할로윈에서는 기괴하고 무서운 분장이 주목받는다. 악은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현실의 악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역사 속 많은 악행은 존경받을 만한 명분이나 매력적인 약속, 설득력 있는 말과 함께 다가왔다. 기만은 자신이 기만이라고 밝히지 않는다. 성경은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고후 11:14)라고 경고한다. 

악이 항상 위협적인 모습으로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신뢰와 호감을 얻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사기와 조종은 믿을 만한 말이나 매력적인 태도 뒤에 숨을 수 있다. 유혹 역시 처음부터 파멸의 결과를 보여주지 않는다. 

외모도 사람의 도덕적 성품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얼굴에 상처가 있는 사람이 따뜻하고 선한 마음을 지닐 수 있으며, 매력적인 외모 뒤에 해로운 의도가 숨을 수도 있다. 필요한 것은 겉모습에 대한 평가보다 분별력이다. "보기 좋은가"를 넘어 "참으로 선한가"를 물어야 한다. 

악과 죽음을 가볍게 다루어서는 안 된다 

할로윈은 어둠을 오락의 소재로 삼는다. 해골과 묘비는 장식품이 되고, 죽음과 공포는 농담과 놀이로 소비된다. 참여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가벼운 마음으로 즐긴다. 그러나 현실의 고통과 연결된 주제를 반복해서 장난으로만 다룰 때 무엇을 놓치게 되는지도 생각해야 한다. 

악은 상상 속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뉴스와 법정, 깨어진 가정과 상처받은 삶에는 악이 남긴 결과가 드러난다. 죽음 역시 플라스틱 해골 장식과는 다르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그 빈자리를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다. 

성경이 악을 심각하게 다루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이다. 악은 피해자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고, 가해자의 삶도 파괴하며,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훼손한다. 죄는 규칙을 어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망가뜨리고 다른 사람과 자신을 해치는 행위다. 

그러나 기독교는 악의 현실을 말하면서 사람을 두려움 속에 남겨두지 않는다. 악이 실재한다는 사실과 함께 악이 최후의 승자가 아니라는 소망을 선포한다. 

악은 마지막에 승리하지 못한다 

할로윈의 익숙한 이미지에는 유령과 죽음, 위협적인 존재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 이미지들만으로는 악이 극복될 수 있는지, 죽음 이후에 소망이 있는지에 대한 답을 얻기 어렵다. 기독교는 이러한 질문 앞에서 다른 이야기를 제시한다. 

성경은 악을 즐기거나 타협하거나 굴복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고 말씀한다. 그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다. 악의 승리처럼 보였던 사건이 오히려 악의 결정적인 패배가 됐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골 2:15)고 기록한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죽임을 당하셨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무덤은 비었고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 

기독교는 어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죽음과 악이 실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이기셨음을 선포한다. 죽음은 현실이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셨다. 악은 강력하지만 예수님은 더 위대하시다. 십자가와 빈 무덤은 악과 죽음이 마지막 말을 갖지 못한다는 소망을 보여준다. 

가면 너머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필자가 할로윈에 관해 갖는 가장 깊은 우려는 어두운 주제를 다룬다는 사실에만 있지 않다. 할로윈이 떠올리게 하는 질문들은 누구나 언젠가 마주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세상에는 왜 악이 존재하는가. 영적 세계는 실재하는가. 악은 극복될 수 있는가. 마지막에 승리하는 존재는 누구인가. 이러한 질문은 할로윈에만 어울리는 괴기한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의 삶과 죽음, 믿음과 소망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문제는 질문 자체보다 그 질문에 어떤 답을 제시하는가에 있다. 아이들에게는 공포와 장식 이상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두려움과 어둠, 죽음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그것을 넘어서는 소망을 들을 필요가 있다. 

기독교는 어둠을 이기는 빛과 거짓을 이기는 진리, 두려움을 넘어서는 소망과 죽음을 이기는 생명을 선포한다. 그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 악은 실재하지만 궁극적인 통치자는 아니다. 기독교 신앙은 그리스도께서 만물 위에 계심을 고백한다. 

어둠을 넘어 빛을 선택하는 삶 

이러한 고백은 개인의 선택과 연결된다. 기독교 신앙은 어둠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데서 멈추지 않고 빛을 따르는 삶으로 나아간다. 바울은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고 권면한다. 

어둠을 이해하기 위해 어둠에 매료될 필요는 없다. 악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악을 장난거리로 삼을 이유도 없다.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즐기고 어떤 이야기에 마음을 기울이는지 분별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할로윈은 기독교인에게 중요한 대화를 시작할 기회가 될 수 있다. 호박과 가면, 분장에 관한 이야기에서 출발해 악과 죽음, 영원에 관해 정직하게 질문할 수 있다. 나아가 용서와 소망, 부활과 예수님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도도 기억해야 한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마 6:13). 악의 현실을 인정하되 그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구하는 기도다. 

할로윈이 어둠을 즐기는 소재로 삼더라도 그리스도인에게는 더 큰 기쁨의 이유가 있다. 참된 빛이 오셨고, 무덤은 비었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셨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