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액티브 시니어, 누구를 말하는가?
100 세 시대를 맞으면서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라는 용어가 우리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액티브 시니어라고 하면 은퇴 이후에도 건강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여행과 취미를 즐기고, 새로운 것을 배우며, 소비와 사회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과거의 노년세대를 의존적이고 수동적인 존재로 바라보던 시각에서 벗어나 노년에도 주체적이고 활력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새로운 인식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이러한 변화는 매우 긍정적이다.
그러나 기독교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건강하고 활동할 수 있는 사람만 액티브 시니어인가?” 건강을 잃어 더 이상 이전처럼 활동할 수 없는 사람, 요양시설이나 병원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 생의 마지막을 앞두고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은 더 이상 액티브 시니어가 아닌가?
필자는 액티브 시니어를 건강이나 신체적 활동능력, 사회적 생산성만으로 규정하는 것은 노년의 삶을 지나치게 제한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본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Active’란 얼마나 많이 움직이고 활동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믿음 안에서 자신의 삶과 사명을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아니라 삶의 태도이다
필자가 말하는 액티브 시니어란 특정한 나이나 신체적 능력으로 규정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믿음 안에서 자신의 삶과 사명을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따라서 액티브 시니어에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젊음이나 건강이 아니라 삶에 대한 신앙적 태도이다.
어떤 사람은 70 대에도 건강하게 일하고 여행하며 봉사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훨씬 이른 나이에 질병이나 환경적 어려움으로 활동의 제약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80 대나 90 대에도 자신의 상황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므로 몇 살부터 시니어인가를 정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노년의 변화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오늘 자신에게 허락하신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Active Senior 의 ‘Active’는 단순한 신체적 활동(physical activity)을 넘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신앙적 태도(spiritual attitude toward life)”를 의미한다.
건강할 때에는 경험과 은사로 섬긴다
건강과 환경이 허락되는 시니어에게 노년은 사역에서 물러나는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평생 축적한 자원을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시기이다. 오늘의 시니어에게는 젊은 세대가 쉽게 가질 수 없는 자산이 있다. 오랜 삶을 통하여 얻은 경험과 지혜, 직업을 통하여 축적한 전문성, 교회생활을 통하여 형성된 신앙과 관계, 그리고 수많은 성공과 실패를 통하여 얻은 삶의 통찰이다. 이러한 자산은 은퇴와 함께 폐기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교회와 다음세대를 위하여 다시 사용되어야 한다.
건강한 시니어는 교회의 여러 사역에 참여할 수 있고, 지역사회를 섬길 수 있으며, 선교현장에 참여할 수도 있다. 젊은 세대의 멘토가 되고, 자신의 전문성을 나누며, 오랜 신앙생활을 통해 얻은 지혜를 다음세대에 전수할 수도 있다. 직장에서 은퇴할 수는 있어도 그리스도인의 사명에서까지 은퇴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건강하고 활동할 수 있는 시기의 액티브 시니어에게 중요한 질문은 “이제 무엇을 하면서 즐겁게 살 것인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남은 생애를 통하여 나를 어떻게 사용하기 원하시는가?”가 되어야 한다.
직접 활동할 수 없어도 사역은 계속될 수 있다
인간은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신체적인 한계를 경험한다. 이전에는 선교지를 방문하고 교회에서 여러 일을 감당했던 사람도 어느 날부터 장거리 이동이 어려워질 수 있고, 건강 때문에 정기적인 봉사에 참여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역’의 개념 역시 넓게 이해해야 한다. 사역의 방법은 달라질 수 있지만 사명까지 끝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직접 선교지에 갈 수 없다면 선교사를 위하여 기도하고 후원할 수 있다. 교회에서 많은 일을 할 수 없다면 젊은 사역자와 다음세대를 격려하고 축복할 수 있다. 오랜 신앙생활을 통하여 얻은 지혜와 경험을 나누는 것도 중요한 사역이다. 특별히 중보기도는 신체적 활동능력과 관계없이 감당할 수 있는 중요한 사역이다. 따라서 교회는 활동능력이 줄어든 시니어에게 “이제 편히 쉬십시오”라고만 말할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현재의 상황에서 감당할 수 있는 새로운 사명의 형태를 함께 찾아주어야 한다. 현장 사역(Front-line Ministry)에서 기도와 후원 등을 통한 후방 지원 사역(Supporting Ministry)으로 사역의 형태는 달라질 수 있지만,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사명과 참여는 계속될 수 있다. 이것 역시 액티브 시니어의 삶의 연속이다.
돌봄을 받는 사람도 여전히 액티브 시니어이다
노화가 더 진행되면 어느 시점에서는 자신이 다른 사람을 돌보기보다 다른 사람의 돌봄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찾아올 수 있다. 질병으로 병원에 입원할 수도 있고, 배우자를 잃고 혼자 살아갈 수도 있으며, 신체적 또는 정신적 기능의 저하로 가족이나 교회공동체의 도움이 필요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신학적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돌봄을 받기 시작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더 이상 Active Senior 가 아닌 것은 아니다.
우리는 사람을 쉽게 ‘사역하는 사람’과 ‘사역의 대상’으로 구분하지만 인간의 삶은 그렇게 단순하게 나누어지지 않는다. 병원에 누워 있는 사람이 가족과 교회를 위해 기도할 수 있으며, 요양시설에 있는 사람이 자신을 찾아온 사람에게 평생의 신앙 이야기를 들려줄 수도 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자신의 약함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사랑과 돌봄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오랜 신앙훈련을 요구하는 일이기도 하다. 인간의 존엄성과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생산성과 독립성의 정도에 따라 증가하거나 감소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돌봄(Care)을 받는 상태와 액티브한 신앙의 삶은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것도 Active Senior 의 삶이다
모든 시니어가 궁극적으로 만나야 하는 마지막 삶의 과제가 있다. 그것은 죽음이다. 현대사회에서는 이를 웰다잉(Well-dying)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면서 죽음을 미리 준비하고 자신의 삶과 관계를 정리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준비는 필요하다. 그러나 기독교인에게 죽음의 준비는 단순히 ‘잘 죽는 법’을 배우는 것 이상이어야 한다. 기독교 신앙에서 죽음은 존재의 소멸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며 본향을 향해 가는 마지막 신앙의 여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죽음을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용서해야 할 사람을 용서하고, 화해해야 할 사람과 화해하며, 가족에게 감사와 축복을 전하고, 자신의 신앙과 삶의 이야기를 다음세대에 남기며, 부활과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가지고 마지막을 준비하는 것은 지극히 능동적인 신앙행위이다. 필자는 이러한 마지막 여정을 귀향(Homecoming) 곧 ‘본향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이 귀향을 믿음으로 준비하는 것 역시 액티브 시니어의 여정 가운데 소중한 한 영역이다.
죽음의 문턱에서 지팡이에 의지하면서도 경배하는 사람
기독교적 Active Senior 의 마지막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성경의 장면 가운데 하나가 야곱의 생애 마지막에 나타난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히 11:21)라고 기록한다. 여기에서 특별히 주목하고 싶은 것은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라는 표현이다. 한때 자신의 힘으로 먼 길을 걸었고 수많은 인생의 역경을 헤쳐 왔던 야곱은 이제 자신의 몸조차 지탱하기 어려워 지팡이에 의지해야 하는 노인이 되었다. 육체적으로만 본다면 그의 활동의 범위는 이제 크게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성경이 보여주는 야곱의 마지막 모습은 무기력한 노인의 모습이 아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도 자손을 축복하였고 하나님을 경배하였다. 몸은 지팡이에 의지했지만 그의 믿음은 하나님을 향하고 있었으며, 육체는 쇠약해졌지만 그의 영적 사명은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이것은 기독교적 관점에서 “액티브(Active)”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매우 선명하게 보여준다. “액티브”는 반드시 많이 움직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팡이에 의지하면서도 경배할 수 있고,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도 기도할 수 있으며,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다음세대를 축복할 수 있다. 어쩌면 그리스도인의 노년에서 가장 중요한 활동은 무엇인가를 더 많이 이루는 것이 아니라, 평생 믿어 온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고 자신의 믿음을 다음세대에 넘겨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라고 고백한다. 야곱의 마지막 모습은 바로 이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노화를 멈출 수는 없으며 육체는 결국 약해진다. 그러나 성경은 육체의 쇠퇴와 영적인 쇠퇴를 동일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겉사람이 약해져 가는 과정에서도 속사람은 계속 새로워질 수 있다고 선언한다. 육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어도 하나님을 더욱 깊이 신뢰할 수 있으며, 기도는 더욱 깊어질 수 있고, 다음세대를 축복할 수 있으며, 영원한 본향에 대한 소망은 더욱 분명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신체적으로 가장 약해지는 순간에도 영적으로는 가장 성숙한 Active Senior 가 될 수 있다.
⑨의 마지막 순간까지 액티브 시니어로 살기
성경적 관점에서 Active Senior 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믿음 안에서 자신의 삶과 사명을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건강할 때에는 자신의 몸과 시간과 경험으로 섬기고, 신체적 활동이 어려워지면 기도와 후원과 격려로 사명을 이어가며, 돌봄이 필요한 때에는 공동체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믿음의 주체로 살아가고, 마지막에는 부활의 소망 가운데 본향을 준비한다. 삶의 형편과 사역의 모습은 달라질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끝나지 않는다.
성경은 이러한 삶을 다양한 모습으로 보여준다. 모세는 노년에 새로운 부르심을 받아 출애굽의 사명을 감당하였고, 갈렙은 85 세에도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라고 요청하며 사명을 향한 열정을 잃지 않았다.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복음을 전하고 교회들을 격려하고 가르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야곱은 생의 마지막에 지팡이에 의지하여 다음세대를 축복하고 하나님을 경배하였다. 이들 모두 멋진 액티브 시니어의 삶을 산 사람들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인생의 마지막 여정을 어떻게 걸어가느냐이다. 그 어느 누구도 노화와 인생의 마지막을 피해 갈 수 없지만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어떠한 여건과 환경속에서도, 그리스도의 제자로 당당히 살아가는 것, 바로 이것이 우리가 걸어가야 할 ‘액티브 시니어로 살기’의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