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라호르 고등법원(LHC)이 성인이 18세 미만 미성년자와 혼인 관계를 맺고 동거하는 행위가 아동학대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기독교 지도자들과 법률 전문가들은 이것이 기독교와 힌두교 등 소수종교인 소녀들을 조혼과 강제개종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중요한 진전이 될 것으로 평가했다.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에 따르면, 라호르 고등법원의 무나와르 이크발 두갈 판사는 지난 8월 31일 발표한 11쪽 분량의 판결문에서 미성년 무슬림 여성 히나 아슬람 사건과 관련해 18세 미만의 결혼은 '펀자브 아동결혼 제한법 2026'에 따른 아동결혼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최근 제정된 아동결혼 관련 법률이 기존의 법적 기준을 변경한 만큼, 관련 사건에도 새로운 법률을 적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미성년자의 동의만으로 성인과 결혼하거나 함께 생활할 수 있는 법적 권리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명확히 했다.

판결문은 "아동결혼으로 인해 미성년자와 혼인 관계를 맺는 것은 아동학대에 해당한다"며 "해당 행위에 대해 5년에서 7년의 징역형과 최소 100만 파키스탄 루피(약 3,600달러)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의 당사자인 히나는 결혼 당시 약 15세 2개월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법원은 국가 데이터베이스 및 등록청(NADRA) 자료를 근거로 히나의 생년월일이 2011년 3월 1일이라고 판단했다. 

두갈 판사는 히나를 아동보호복지국의 안전한 보호 아래 두도록 명령했으며, 부모 또는 자신을 남편이라고 주장하는 남성과의 만남 역시 보호자의 감독 아래에서만 이뤄지도록 했다.

또한 펀자브주 카수르 지역 경찰에 미성년자 결혼 및 위조 결혼증명서 발급 혐의를 조사하고, 범죄 사실이 확인될 경우 별도의 최초정보보고서(FIR)를 등록하도록 지시했다. 법원은 영구적인 양육권 문제는 라호르 후견법원이 결정하도록 했다.

"미성년자의 동의가 착취 정당화할 수 없어"

기독교 지도자들과 인권운동가들은 이번 판결이 소수민족 출신 미성년 소녀들을 보호하는 법적 장치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펀자브 주의회 기독교인 의원 에이자즈 알람 오거스틴 의원은 "이번 판결은 아동결혼, 특히 기독교인과 힌두교인을 포함한 소수 공동체 출신 미성년 소녀들이 연루된 사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앞서 펀자브주의 아동결혼 관련 법률 개정을 추진했으며, 해당 개정안은 지난 4월 27일 주의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수사와 보석, 선고 및 구금 등 법적 절차에서 '아동의 최선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혼인 관계에 놓인 아동을 범죄자로 취급해서는 안 되며, 납치나 강압이 의심되는 경우 미성년자의 동의 여부가 양육권이나 보호조치의 결정적 기준이 돼서는 안 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오거스틴 의원은 "경찰과 하급심 법원이 이번 판결을 충실히 적용해야 한다"며 "이번 판결은 유사한 모든 사건에 중요한 선례를 남겼다"고 강조했다.

기독교 소녀 강제개종 사건에도 영향 전망

이번 판결은 특히 파키스탄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돼 온 소수종교인 소녀들의 납치·강제개종·강제결혼 문제와 관련해 주목받고 있다.

기독교 법률지원단체 트루 스피릿(True Spirit)의 캐서린 사프나는 이번 판결을 환영하면서도 실제 현장에서의 법 집행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경찰과 하급법원이 납치 후 결혼과 개종이 이뤄진 미성년 기독교 소녀 사건에서 편견을 보이는 사례를 목격해 왔다"며 "아동에 대한 법적 보호는 종교적 차별 없이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법원 변호사 무함마드 사킵 질라니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과거 연방 법원의 판단과도 차별화된다"고 설명했다. 앞서 연방 법원은 13세 기독교 소녀 마리아 샤바즈와 30세 남성 셰흐리야르 아흐마드의 결혼을 합헌으로 판단한 바 있다.

그러나 라호르 고등법원은 이후 펀자브 아동결혼 제한법이 시행됐다는 점을 들어 새로운 법률이 기존 판단에 우선한다고 판단했다.

"2019~2025년 소수민족 소녀 피해 210건"

인권단체들은 그동안 파키스탄에서 기독교인과 힌두교인을 비롯한 종교적 소수민족 소녀들이 납치와 강제개종, 강제결혼, 성폭력 등에 노출되고 있다고 지속적으로 경고해 왔다.

주빌리 캠페인(Jubilee Campaign)이 지난 7월 유럽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5년까지 기독교인 및 기타 소수민족 소녀들을 대상으로 한 납치·강제개종·조혼·성폭력 의혹 사례 210건이 기록됐다.

이 가운데 186건(88.6%)은 펀자브주에서 발생했으며, 신드주에서 22건(10.5%), 카이베르 파크툰크와주에서 2건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피해자의 83% 이상은 18세 미만이었다. 14~17세 피해자가 134명, 14세 미만이 41명이었으며 성인 피해자는 35명이었다. 피해자들의 평균 연령은 12.8세,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의 평균 연령은 35.8세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일부 사건에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연령 차이가 30년을 넘었다고 지적하면서, 위조 문서와 법적 절차 조작, 제도적 실패 등이 이러한 범죄를 가능하게 하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파키스탄은 오픈도어의 2026년 '기독교 박해국 목록'(World Watch List)에서 50개국 가운데 8위를 기록했다. 오픈도어는 파키스탄에서 기독교인들이 조직적인 차별과 폭력, 강제개종, 강제노동 및 성폭력 등에 노출돼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