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헌법재판소가 지난 14일 안락사 및 조력자살을 허용하는 이른바 '임종 지원' 법률의 주요 내용을 합헌으로 판단하면서도, 종교적·윤리적 신념에 따라 그 시행을 거부할 수 있는 민간·종교기관의 권리를 인정했다. 약사에게도 양심에 따른 거부권을 인정하는 등, 의료 현장에서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일부 제한을 가했다.

이번 결정은 프랑스 의회가 지난 7월 15일 통과시킨 '임종 지원에 대한 권리' 법률에 대한 것으로, 헌법재판소는 법률 자체의 합헌성을 대체로 인정하면서도 그 적용 과정에서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의료인의 양심의 자유가 충돌할 수 있는 지점에 대해 구체적인 해석을 제시했다.

이번 결정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민간 및 종교 기반 의료기관이 자체 윤리적·종교적 원칙에 따라 시설 내 안락사 시행을 거부할 수 있다는 점이다.

헌법재판소는 종교기관을 포함한 민간 의료기관이 안락사 또는 조력자살을 제공하지 않기로 선택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해당 기관이 생명 존중의 원칙을 정관이나 윤리헌장 등에 명시하고 있는 경우, 기관 차원에서 해당 행위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도록 했다.

프랑스에서는 안락사 법안 심의 과정에서 민간 의료기관에 이른바 '집단적 양심 조항'을 인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돼 왔다. 특히 종교적 신념에 따라 안락사에 참여할 수 없는 가톨릭계 의료기관 등이 기관 차원의 거부권을 요구했지만, 입법 과정에서는 이를 둘러싼 논쟁이 계속됐다.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은 이러한 논쟁에 대해 종교기관의 자율성과 종교·양심의 자유를 일정 부분 인정한 것으로 평가된다.

약사에게도 양심에 따른 거부권 인정

헌법재판소는 약사에 대해서도 중요한 판단을 내렸다. 안락사 과정에서 환자에게 투여되는 치명적 약물의 조제와 관련해 약사가 자신의 양심에 따라 해당 행위에 참여하기를 거부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기존 법률에서 의사와 간호사 등 일부 의료인에게 인정되던 양심에 따른 거부권의 범위를 약사에게까지 확대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안락사가 단순히 의사 한 사람의 의료행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약물의 준비와 투여 등 여러 의료 과정에 걸쳐 이뤄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과정에 참여하는 약사에게도 자신의 양심에 반하는 행위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이번 결정이 프랑스의 안락사 합법화를 뒤집은 것은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법률이 정한 조건 아래에서 환자가 의료적 도움을 받아 사망에 이를 수 있도록 한 '조력자살' 제도의 기본 틀을 유지했다. 법률은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중증·불치 질환 환자가 조력자살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 의료인이 치명적 약물을 직접 투여하는 방식의 안락사도 허용한다.

헌법재판소는 또한 법정 후견을 받는 환자의 경우 후견인의 의견을 고려해야 하지만, 그 의견에 반드시 구속될 필요는 없다는 점도 명확히 했다.

생명윤리와 종교의 자유 사이의 새로운 쟁점

이번 판결은 프랑스에서 안락사 논쟁이 단순히 '죽음을 선택할 권리'의 문제를 넘어 의료기관의 자율성, 종교의 자유, 의료인의 양심의 자유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라는 새로운 법적 쟁점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가톨릭계 의료기관의 경우 생명을 의도적으로 종결시키는 행위를 의료의 본질과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보는 입장이 강하기 때문에, 안락사 합법화 이후에도 기관의 종교적 정체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가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었다.

유럽법정의센터(ECLJ)는 이번 결정을 환영했다. ECLJ의 그레고르 푸핀크 이사는 "종교기관이 정관이나 윤리강령을 통해 생명 존중의 원칙을 명시하고 안락사 시행을 거부할 수 있게 된 점은 '중요한 승리'"라고 평가했다. 다만 "법률의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여전히 남용 가능성이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