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Choi Jeong In
최정인 교수: 미드웨스턴침례신학대학원(MBTS) 교수, 배톤루지한인중 앙교회 담임, 뉴올리언즈침례신학대학원(NOBTS) 객원교수, 성경과 교회사와 신학를 중심으로 기독교의 핵심 진리를 연구하고 전하는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왕국 사역에 매진하고 있으며, 온오프라인을 통해 신학생들과의 신학적 토론과 상담으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역서로 《신자들의 교회》(대장간)와 《탈기독교 세계의 예배와 선교》(디싸이플, 근간)

 

내 증인이 되리라 (2) 

사도행전 1장 1~11절 강해

누가는 신구약 성경 저자 40여 명 가운데 유일하게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다. 그는 주후 49~50년경 드로아에서 사도 바울의 선교팀에 합류하여 바울의 순교 때까지 거의 18년을 동역했고, 그 기간에 자신의 이름으로 된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저술했다. 사도행전 16장 10절에 돌연 등장하는 1인칭 복수 대명사 "우리"가 그 합류의 흔적이다.

누가는 두 권 모두를 데오빌로 한 사람에게 헌정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그는, 누가복음에서 로마 총독을 부르던 호칭인 "각하"로 불린 것으로 보아 그리스 교육을 받고 회심한 로마인 후원자였을 가능성이 높다. 주목할 것은 누가가 자신의 독자를 여러 무리가 아니라 데오빌로처럼 "한 사람"으로 보았다는 점이다. 성경은 수천 명 가운데 한 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바로 그 한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누가라는 증인이 데오빌로라는 증인을 세웠듯, 이 말씀을 읽는 오늘의 데오빌로도 증인으로 세워진다.


기록된 증거를 삶의 증언으로(1~5절)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가 있다. 누가복음에서 "데오빌로 각하"라 불렀던 그를 사도행전에서는 호칭 없이 그냥 "데오빌로"라 부른다. 하나님에게는 손자 손녀가 없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자녀로 삼으시며 그들의 아버지가 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 왕국의 문화는 수평 문화다. 이는 인격이나 직책을 무시한다는 뜻이 결코 아니라, 모든 관계를 계급이 아니라 은사와 직분과 사역으로 이해한다는 뜻이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먼저 하신 일은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계심을 나타내신" 것이다. 여기 쓰인 증거(τεκμήριον, 테크메리온)는 신약성경에서 유일하게 증거로 번역할 수 있는 단어다. 문제는 한국어 개역이 증언(μαρτυρία, 마르튀리아)으로 옮겨야 할 거의 모든 단어를 증거로 번역했고, 개역개정도 절반 정도만 바로잡았다는 데 있다. 개역개정에서 증거라고 된 단어들은 증언으로 읽어야 한다.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성경에 기록된 증거는 우리 삶으로 살아내는 증언으로 드러나야 하기 때문이다.

성령이 임하시면 증인이 된다(6~11절)
승천 직전 제자들은 3년여 동안 품어온 질문을 드린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왕국 건설에 사명을 두셨으나 제자들은 로마제국에 복속된 이스라엘 왕국의 회복을 꿈꾸었다.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보다 "하나님의 왕국"이라는 번역어를 쓰는 것이 옳다. 나라는 민족 국가와 제국과 여러 정체를 두루 포괄하는 더 큰 범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왕국은 수많은 민족을 품으면서도 제국이라 불리지 않는다. 제국에는 시민권을 중심으로 한 계급이 있으나, 하나님의 왕국은 모든 신민이 삼위일체 하나님만을 왕으로 삼고 서로 동등하기 때문이다.

주님은 때와 시기가 아버지의 권한임을 잘라 말씀하신 뒤 제자들이 마음 쓸 것을 밝히신다.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리라는 것이다. 여기서 권능(δύναμις, 두나미스)은 신비로운 기적을 행하는 힘이 아니다. 부활의 확실한 증거를 가진 성도가 그것을 입 밖으로 내어 말하게 하는 증언의 역동성이다. 증거가 내면에 머무는 정적인 상태라면, 두나미스는 그 증거를 붙들고 세상의 거대한 저항과 죽음의 공포를 뚫고 나아가 예수를 주라 고백하게 만드는 실제적 유능함이자 영적 에너지다. 권능을 받는다는 것은 부활의 구경꾼에 머물지 않고 살아 있는 증인으로 탈바꿈되는 것을 의미한다.

반드시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주님은 "내 증인이 되라"라는 명령형이 아니라 "내 증인이 되리라"라는 미래형 자동사로 말씀하셨다. 성령이 임하시고 능력을 받는 조건이 갖추어지면 증인이 되는 일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성령이 능동이고 우리가 수동이다. 억지로 증인이 되기 위해 성령이 임한 것처럼, 능력이 있는 것처럼 가장할 필요가 없다. 성령은 이미 오셨고 우리는 이미 능력을 받았다.

승천 장면에서 예수께서 "올려져 가시니"라는 수동태로 기록된 것은, 성육신에서 승천에 이르는 모든 일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공동 사역임을 드러낸다. 하늘을 쳐다보는 제자들에게 두 천사는 이 예수께서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전한다. 서운해하지 말고 다시 오실 그날까지 증인의 부르심에 매진하라는 권면이다. 우리 생애 가운데 주님이 오시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그날을 사모하며 증인으로서의 정체와 사명으로 산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 (1) 

최정인 교수의 설교 원본 영상은 이곳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베톤루지한인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