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우리가 목도하는 세계는 두 가지 인간형의 충돌 속에 있다. 하나는 ‘다보스형’(Davos Man)이다. 전용기를 타고 스위스에 모여 기후변화와 세계 빈곤을 논하는 글로벌 엘리트들이다. 다른 하나는 ‘보르지형’(Borgia Man)이다. “우리 민족, 우리 국경, 우리 일자리”를 외치며 내부의 적을 지목하는 포퓰리즘 민족주의자들이다. 세계는 이 두 진영의 거친 줄다리기로 흔들리고 있다.
‘보르지형’의 뿌리는 15세기 이탈리아로 거슬러 올라간다. 체사레 보르지아(Cesare Borgia)는 냉혹한 권모술수와 철저한 자기 편 결속으로 도시국가들을 장악했고, 마키아벨리는 그를 『군주론』(Il Principe, 1532)의 이상적 모델로 삼았다. 도덕보다 효율을, 이상보다 현실을 앞세운 이 논리에서 세계는 ‘우리’와 ‘적’으로만 나뉘고, 권력은 공동선이 아닌 집단의 생존을 위해 존재한다. 보르지형 인간은 개방과 보편 대신 경계와 혈연을 선택하고, 타자를 배제함으로써 내부 결속을 도모한다.
그런데 ‘다보스형’ 또한 무해하지 않다. 이들은 국경과 혈연의 폭력을 넘어섰다고 자부하지만, 종종 그 대가를 치른다. 특정한 이웃에 대한 구체적 책임이 추상적 인류애로 바뀌어 버리는 것이다. 뿌리 뽑힌 세계시민은 모두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옆집 사람의 얼굴은 알지 못한다. 결국 보르지형이 특수성을 절대화해 폭력을 낳는다면, 다보스형은 정반대의 길에서 같은 곳에 이른다 — 보편성을 추상화하다가, 결국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무관심에 다다르는 것이다. 둘 다 복음이 요구하는 ‘얼굴 있는 이웃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
문제는 이 두 위험이 국회의사당이나 국제회의장 바깥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 다 교회 안으로 들어온다. 보르지형 정치는 공동의 적을 필요로 하고, 그 적대감을 가장 효율적으로 증폭시키는 도구가 종교적 언어다. 1932년 결성된 ‘도이체 크리스텐’(Deutsche Christen) 운동은 이듬해 루트비히 뮐러를 제국감독으로 세우며 예수를 아리아인 투사로 재해석했고, 이는 곧 국가교회 전체의 공식 노선이 되었다. 1994년 르완다에서는 냐마타와 은타라마의 교회 건물 자체가 학살의 현장이 되었다 — 피난처를 알리던 종소리가 도리어 학살자들에게 은신처의 위치를 알리는 신호로 뒤바뀐 것이다. 반면 다보스형의 교회는 국경 없는 인류애를 설교하면서 정작 특정한 지역, 특정한 회중, 특정한 가난한 이웃에 대한 구체적 헌신은 흐릿하게 만든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선언했다. “너희는 유대인도 헬라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느니라”(3:28). 인간을 혈통과 국경으로 먼저 정의하는 모든 이데올로기에 대한 신학적 저항이다. 그런데 같은 바울이 로마서 9장에서 고백한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9:3). 바울은 보편과 특수 사이의 긴장을 해소하지 않았다. 그는 그 긴장을 살아냈다 — 보르지형의 배타성도, 다보스형의 무근거한 보편성도 아닌 방식으로.
한인 디아스포라 크리스천은 이 긴장을 가장 예민하게 감각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미국 시민이면서 한국인이고, 세계교회의 일원이면서 한인 공동체에 뿌리를 둔다. 보르지형의 언어에서 우리는 가장 먼저 ‘내부의 적’으로 지목될 수 있는 자들이며, 동시에 다보스형의 언어에서는 뿌리를 지우고 무색무취의 세계시민이 되라는 유혹 앞에 선 자들이기도 하다. 이 이중의 취약성은 동시에 책임이다. 우리는 두 인간형이 복음을 어떻게 탈취하는지를 몸으로 안다. 그 앎이 오늘 우리에게 발언권을 준다.
히브리서는 믿음의 선진들을 이렇게 기억한다. “그들은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11:13). 성서의 인간은 어느 한 진영에 완전히 속하지 않는다. 뿌리는 있되 집착하지 않고, 열려 있되 떠내려가지 않는 존재 — 그것이 순례자의 정체성이다.
그 소명은 설교단에서 시작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지난해 한 한인 이민교회는 인근에 새로 정착한 라틴계 이민자 가정들을 위해 처음으로 스페인어 예배를 열었다. 서른 명 남짓 모인 자리에서 한국어 찬양과 스페인어 찬양이 번갈아 울렸고, 예배가 끝난 뒤 식탁에는 김치와 살사가 나란히 놓였다. 거창한 선언이나 정책 성명 없이, 그저 한 끼의 식사와 한 시간의 예배가 ‘얼굴 있는 이웃’을 만들어냈다. 이민자와 난민을 환대하는 이런 구체적 실천, 타 민족과 함께하는 예배와 식탁, 그리고 우리 자녀들에게 ‘적’도 ‘추상적 인류’도 아닌 ‘이웃’의 언어를 가르치는 가정과 교회의 교육 — 이것이 신학적 저항의 살과 피다.
교회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할 것은 보르지의 망령만이 아니다. 얼굴 없는 다보스의 유혹도 함께 막아야 한다. 순례자는 지도를 외우지 않는다. 다만 오늘 마주친 이의 얼굴을 잊지 않을 뿐이다. 국경에 갇히지도, 얼굴을 지우지도 않는 것 — 그 얼굴 하나를 기억하는 일에서, 우리의 순례는 오늘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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