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백악관 종교자유위원회가 최근 자국 내 종교 자유와 관련해 새롭게 제기되는 위협을 분석한 최종 보고서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출하며 종교 자유 보호를 위한 제도적·문화적 개선을 촉구했다.
200쪽이 넘는 분량의 이번 보고서는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이 위원회를 설립한 이후 진행된 7차례의 공개 청문회와 100여 명의 증인 진술을 토대로 작성됐다.
위원회는 보고서에서 "미국 사회 전반에 종교를 공적 영역에서 배제하거나 제한하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학교 교육, 의료기관, 군대, 직장 등 다양한 영역에서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불이익을 경험했다는 증언이 이어졌다"고 밝혔다.
증인들 가운데에는 학교 측으로부터 자녀와 관련한 거짓 정보를 전달받았다고 주장한 학부모, 종교적 신념 때문에 괴롭힘을 당한 학생, 성전환 의료행위 참여를 거부했다가 불이익을 받은 의료인, 코로나19 백신 의무화에 종교적 이유로 반대했다가 직업이나 군 경력을 잃었다고 주장한 군인과 근로자 등이 포함됐다.
보고서는 "증인들의 배경과 신앙은 서로 달랐지만, 종교가 공공생활에 가치 있는 기여로 인정받기보다 관리하거나 배제해야 할 대상으로 취급되고 있다는 공통된 문제를 제기했다"며 "종교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법적 권리뿐 아니라 그 권리의 의미를 이해하는 문화 자체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원회는 특히 미국 사회에서 널리 사용되는 '교회와 국가의 분리' 개념이 본래 취지와 달리 종교인을 공적 영역에서 배제하는 논리로 오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미국 헌법 어디에도 '교회와 국가 사이의 분리의 벽'이라는 표현은 등장하지 않으며, 수정헌법 제1조 역시 종교를 공적 영역에서 배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부의 종교 간섭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종교 자유를 위해서는 교회와 국가가 서로를 건강하게 뒷받침하는 '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위원장을 맡은 텍사스주 부지사 댄 패트릭은 백악관 집무실에서 열린 보고서 전달식에서 "'교회와 국가의 분리'라는 표현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신앙인들을 공공 영역에서 배제하는 근거로 사용돼 왔다"고 주장했다.
위원으로 활동한 임상심리학자이자 방송인 필 맥그로우(Dr. Phil) 역시 "많은 미국인들이 의료, 군대, 교육 현장에서 자신의 신앙 때문에 차별과 박해를 경험했다고 증언했다"며 "종교 자유는 원하는 교회를 선택하는 권리를 넘어 일상생활 속에서 신앙을 실천할 자유까지 포함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위원회는 보고서를 통해 종교 자유 강화를 위한 12가지 정책 권고안을 제시했다. 주요 권고안에는 법무부가 수정헌법 제1조와 종교 자유에 관한 공식 지침을 마련하고, 학생·학부모·교사·의료진·군인 등을 대상으로 종교 자유 권리를 안내하는 자료를 배포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또한 △종교 자유 침해를 신고할 수 있는 전용 핫라인과 온라인 신고 시스템 구축 △종교 자유 보호에 적극적인 연방 판사 임명 △법무부 내 종교 자유 태스크포스 설치 △코로나19 백신 의무화로 불이익을 받은 군인의 복권 추진 등을 제안했다.
위원회는 아울러 1954년 제정된 이른바 '존슨 수정안'(Johnson Amendment)의 폐지도 촉구했다. 이 조항은 면세 혜택을 받는 종교단체 등이 특정 정치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활동을 제한하고 있다.
이번 보고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워싱턴 D.C.에서 열린 신앙과자유연합(Faith & Freedom Coalition) 행사에서 종교 자유를 핵심 가치로 강조한 날 공개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에서 "이전 행정부에서는 신앙을 가진 미국인들이 FBI의 표적이 되고, 생명운동가들이 감옥에 가며,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군 복무에서 배제되는 일이 벌어졌다"고 했다.
이어 "급진 좌파는 하나님을 공공 영역에서 몰아내려 했으며, 기독교와 교회를 다시 공격하려 하고 있다. 미국 건국 250주년을 앞둔 지금 종교 자유를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백악관 종교자유위원회는 최근 위원 해임과 일부 위원의 사퇴 등 내부 갈등을 겪기도 했다. 지난 2월 보수 성향의 가톨릭 활동가 캐리 프레진 볼러가 해임됐으며, 무슬림 고문이었던 사미라 문시는 이에 반발해 사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