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구 장로(바른구원관선교회).
(Photo : ) 김병구 장로(바른구원관선교회).

최근 한국 사회에서 목회자의 공적 발언을 둘러싼 논쟁이 거세다. 어떤 이는 “강단이 정치에 오염되었다”고 말하고, 다른 이는 “교회가 침묵함으로써 이미 권력에 굴복했다”고 주장한다.

이 논쟁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사회에서 종교와 국가의 경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이다. 먼저 분명히 해야 할 점이 있다. 기독교 신앙에서 국가는 구원의 주체가 아니다. 국가는 질서를 유지하도록 허락된 제도일 뿐, 진리의 최종 판단자는 아니다. 성경은 국가 권위를 존중하라고 가르치지만, 동시에 그 권위가 절대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 긴장은 기독교 역사 내내 반복되어 왔다. 성경의 선지자들은 왕 앞에서 침묵하지 않았고,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국가 명령이 신앙의 본질을 침해할 때 이를 거부했다. 그들의 불순종은 무질서를 조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질서―양심과 진리에 대한 순종―를 지키기 위한 행위였다.

그렇다면 오늘날 목회자의 발언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첫째, 도덕과 윤리, 생명과 자유의 문제에 대해 목회자는 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말해야 한다. 거짓이 제도화될 때, 생명이 수단화 될 때, 국가 권력이 인간의 양심을 침범할 때 침묵한다면, 그 침묵은 중립이 아니라 방조가 된다.

둘째, 국가가 신앙의 영역을 행정적으로 재단하려 할 때, 목회자의 비판은 정치 개입이 아니라 종교 자유에 대한 정당한 방어다. 예배를 단순한 집회로 환원하고, 신앙의 본질을 국가 기준으로 규정하려는 시도는 어떤 민주사회에서도 경계되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분명한 선도 존재한다. 목회자는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하는 정치 활동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강단은 투표 지침을 제공하는 장소가 아니다. 또한 분노와 혐오, 선동의 언어로 대중을 자극해서도 안 된다. 그 순간 복음은 진리가 아니라 도구가 되고, 교회는 공동체가 아니라 정치 집단으로 전락한다.

가장 위험한 것은 개인의 정치적 확신을 ‘하나님의 뜻’으로 포장하는 일이다. 이것은 신앙의 언어를 빌린 권력화이며, 역사적으로 언제나 비극을 낳았다. 결국 핵심은 이것이다. 목회자는 정치인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공적 현실로부터 도피한 종교 관리인도 아니다. 그의 말은 정권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성도의 양심을 깨우고 사회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상기시키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민주사회는 다양한 목소리를 필요로 한다. 종교의 목소리 또한 그중 하나다. 다만 그 목소리는 권력과 너무 가깝지도, 대중의 분노에 기대지도 말아야 한다. 강단은 언제나 불편한 자리에 서 왔다. 그 불편함을 감수할 때, 교회는 정치에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정치에 의해 침묵당하지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