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웅 박사
정일웅 박사

코메니우스와 모라비안 교회 역사를 정확히 주목하면, 정말 이 시대에 우리 한국교회와 전 세계 기독교 지도자들이 필요로 하며, 꼭 알아야 할 많은 지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생각하면 코메니우스는 455년 전까지 17세기 유럽에서 활동했던 참으로 옛날 사람입니다. 17세기는 우리나라로 치면, 임진왜란이 끝나고 한참 기간이 지난 시대였습니다. 그런 시대에 살던 인물에게서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 이것은 처음 제가 코메니우스를 대하면서 던졌던 질문입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여러 문헌(현재까지 발견된 약 200종)에서 분명히 오늘 이 시대에 당면한 여러 문제해결에 놀라운 대답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으며, 또한 분명한 지혜를 얻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특히 오늘날 한국교회가 지향해야 할 그 목표와 방향, 그리고 과제를 확인하는 일에서 더욱 그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이유로 코메니우스와 모라비안 교회를 소개하려는 것이며, 시간 관계상 그 모든 것을 다 소개할 수는 없어서, 오늘은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에 집중려고 합니다. 그것은 "기독교 구원 신앙의 본질"에 관한 것입니다.

여러분,"본질(本質)"이란 말 잘 아시지요? 사전적으로는 사물이나, 현상의 근본 바탕, 또는 근본 요소, 즉 내적인 근원을 뜻합니다. 즉 "본질"은 그 반대말 비본질, 또는 비본질적인 것을 연상하면 의미가 더욱 확연해집니다. 성경적으로 본질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본래의 뜻과 목적을 뜻합니다. 하나님이 처음에 의도하신 그 모습, 그 중심을 의미한다고 할 것입니다.

그간 우리 한국교회를 비롯한 전 세계 기독교 역사를 돌아보면, 이러한 본질(本質)에 충실하기보다 오히려 비본질적인 것들에 매여 서로 다투고 대립한 분열의 역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저 기득권을 지켜야 하는 일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행동해 온 것이 교회의 모습이며, 기독교의 모습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반드시 있어야 하는 하나님의 요구인 그리스도 복음의 참된 진리인 본질에 목숨은 걸지 않고, 여전히 비본질적인 것들에 시간과 에너지를 다 소모한 것이 교회의 역사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역시 한국교회 내에서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지 않나 싶은데, 그 결과는 오늘날 문체부에 등록된 한국개신교 교파 수가 무려 300개가 넘는다는 소식에서 확인됩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지금 분열이 아니라, 연합과 통일이 필요한 시대를 맞게 된 것으로 판단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연합과 통일, 그리고 하나 됨은 오래전부터 요구된 한국교회의 담론이었습니다. 그래서 시대마다 한국교회의 연합체가 탄생하였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1948년에 한국기독교연합회(KNCC)가 최초로 탄생했으며, 한참 후에 진보와 보수로 갈리면서 보수적인 교회 연합체인 한기총이 탄생하였고(1989), 근년에는 한교연, 한교총(2016)도 생겨났습니다. 생각하면 한국교회의 연합체들도 분열되어 서로 경쟁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한교총은 가장 많이 연대한 협의체로 기독교장로회 교단만 가입하면 통일된 한국 개신교회 연합체로서 명분을 지니게 될 것으로 봅니다. 문제는 교회 연합체가 여러 개가 만들어 지면서 무슨 일을 해야 할지를 아직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고 여전히 비본질적인 것들에 힘을 쏟고 있지 않나 하는 기우를 저는 떨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제자들이 연합하기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셨던 예수님의 기도를 다 기억하시지요(요17장)! 대한민국 건국의 대통령 이승만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한 명언도 기억됩니다. 저는 오늘의 한국교회와 전 세계 기독교가 참된 생존과 부흥을 위해서, 그리고 온전한 복음 사역의 더 큰 효율성을 위해 분열을 극복하고 새로운 연합과 통일을 이룰 수 있는 성경적 방안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코메니우스가 알려준 기독교 구원 신앙의 본질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면 코메니우스가 말한 구원 신앙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을 정확히 밝히기 위해서 잠시 유럽 교회의 간략한 역사 스케치가 필요합니다. 여러분, 동유럽의 땅 보헤미아(체코)에서 루터보다 100년 먼저(15세기) 종교개혁을 부르짖다가 순교 당한 역사적 인물 얀 후스(J.Hus,1369-1415)를 다 아시지요? 그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독교 구원 신앙의 본질을 담은 계시의 책임을 일깨운 최초의 인물입니다.

후스는 15세기 초엽, 중세가톨릭교회가 성경이 말하는 구원 신앙의 본질은 외면하고, 유전과 전통을 앞세운 참으로 비본질적인 것들의 순종을 강요할 때, 그 왜곡된 신앙을 바로잡아주려고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교회개혁을 외쳤습니다(1408-1415). 그러나 교황의 정치세력은 1415년 콘스탄츠 종교회의에 후스를 소환하여 그를 이단으로 단죄하였고, 그날 그를 바로 화형 시켰습니다(1415). 억울한 후스의 화형 소식은 보헤미아 백성들을 분노케 했고, 가톨릭의 불의에 항거하는 후스 추종자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이들 가운데 타보리텐파(Taboriten)는 매우 급진성을 보여준 그룹으로 한 손에 성경과 다른 한 손에 칼(무기)을 들고 가톨릭 군대를 대항하다가 모두 전멸했습니다(1420-1436). 이들 후스파가 몰락할 무렵, 무력으로의 정치권력에 대항은 기독인의 올바른 태도가 아님을 깨달은 "첼치츠키"(Chelcicky,1380-1452)란 한 경건한 평신도는 성경대로 순종하며 살려는 형제의 모임을 만들었고, 그 모임이 자라서 1457/58년 "형제들의 연합"(Unitas fratrum)이란 교회(신앙)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이들 교회가 후스의 개혁 정신을 가장 잘 따랐던 유럽 최초의 개혁교회로 역사는 전합니다. 이들은 성경이 구원 신앙의 본질을 깨우치는 하나님 말씀임을 믿었으며, 초대교회 사도들의 신앙을 따르면서, 특히 예수님의 산상 보훈에 순종하기를 힘썼습니다. 그러다가 이 교회의 신학자 루카스 폰 프라그(Lukas von Prag, 1460-1528)는 성경 말씀, 특히 사도 바울의 서신서(살전1:3, 살전5:8, 갈5:5-6, 엡1:15-19, 골1:4절 이하, 벧전1:3절과 7절 이하, 행24:14-16, 히10:22-25, 고전13:13) 등에서 기독인이 믿고, 행하며, 소망해야 할 구원 신앙의 본질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 소망, 사랑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고대교회(5세기경)의 교부인 어거스틴도 그것을 교회 사역의 핵심과제로 삼았던 사실을 확인합니다. 특히 어거스틴은 믿음, 사랑, 소망이 청소년과 성인 초신자가 세례받기 전 깨우침받아야 하는 교회 신앙교육의 목표로 삼았으며, 사도신경과 주기도문과 십계명은 그것을 깨우치기 위한 신앙교육 내용으로 사용한 것을 확인하였습니다(Enchiridion, fides, spe,caritas).

이러한 구원 신앙의 본질에 관한 이해는 중세가톨릭교회도 명맥을 잇고는 있었으며,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믿음, 소망, 사랑을 구원 신앙의 3가지 덕성들로 해석해 주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에 근거하여 신학자 루카스는 구원 신앙의 본질인 믿음, 소망, 사랑이 하나님의 성경적 요구로 인식하였고, 형제 연합교회가 믿는 구원 신앙의 본질로 삼아, 복음 사역(설교)의 목표와 토대가 되게 하였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