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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은자의 나라' 조선이 세계 앞에 문을 열던 혼란의 시대. 낯선 타국에서 온 젊은 선교사들은 조용히 그러나 단단히 한 알의 씨앗을 뿌렸다. 그 작은 씨앗이 불씨가 되어 100년이 넘도록 꺼지지 않은 사랑의 역사를 만들어냈다.  

신간 <꺼지지 않는 사랑의 불씨>는 전주 예수병원의 창립부터 현대까지 이어진 의료 선교 100년의 여정을 담은 귀한 기록이다. 의료와 복음, 헌신과 사랑이 한데 어우러진 이야기를 통해, 한국 근대 선교의 숨은 영웅들을 생생히 되살려낸다. 

매티 잉골드의 첫 진료, 예수병원의 시작 

1898년 11월 3일, 전주 성문 밖의 초라한 두 칸짜리 방에서 한 여의사가 첫 진료를 시작했다. 서른 살의 젊은 선교사, 매티 잉골드 박사(Matty Ingold). 그녀는 '죽기까지 충성'하겠다는 서원을 품고 태평양을 건너왔다. 병원 설립은 처음부터 계획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의 작은 진료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병원 중 하나, 전주 예수병원의 시작이 되었다. 

잉골드의 후배 선교사 와일리 포사이드, 에설 케슬러 간호부장, 로이드 보그스, 변마지(마거릿 프리처드), 프랭크 켈러, 그리고 구바울(폴 크레인) 등 수많은 선교사들이 그 뒤를 이었다. 그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복음과 의술을 함께 들고 조선 땅을 누비며 생명을 살리고 영혼을 일깨웠다. 

이 책은 예수병원 선교사 설대위(데이비드 서)가 직접 기록한 이들의 발자취를 따라, 100년의 선교사를 정직하게 되짚는다. 

복음과 의술, 두 손으로 세운 선교의 기적 

<꺼지지 않는 사랑의 불씨>는 단순한 병원 연대기가 아니다. 이 책은 "의료가 곧 복음이었던" 시대, 치유와 전도가 하나였던 선교의 현장을 보여준다. 가난과 질병으로 신음하던 19세기 말 조선의 백성들에게 서구식 의료는 처음으로 만난 '자비의 얼굴'이었다. 한 손에는 성경을, 다른 손에는 청진기를 들고 환자의 상처를 어루만진 이들의 사랑은 수많은 이들의 마음 문을 열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로서의 정체성과,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로서의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했지만, 그들은 결국 한 가지 진리를 깨달았다. 그리스도의 제자이자 의료인으로 사는 것이 바로 선교라는 것이다." 

'죽기까지 충성'한 이름 없는 선교사들 

책에는 한국 근대 의료 선교의 숨은 주역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전주 예수병원의 설립자 매티 잉골드는 의료 사역의 불확실성과 결핍 속에서도 믿음으로 진료를 이어갔다. "비틀거리며 출발한 신생아 같은 병원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길이 그 병원을 붙드셨다." 

또한, 사랑으로 환자를 섬기다 병들어 세상을 떠난 피츠 간호사, 폭발 사고와 전쟁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병원을 재건한 의료진들의 이야기 그리고 1977년 이리역 폭발 사고 당시 밤을 새워 부상자들을 돌본 예수병원 의료진의 헌신이 눈물겹게 담겨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시는도다." 이 말은 피츠 간호사의 묘비에 새겨졌고, 예수병원 전체의 사명 선언문처럼 남았다. 

예수병원의 부활과 새로운 선교의 지평 

전쟁과 가난,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예수병원은 결코 문을 닫지 않았다. 1950년대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병원은 영양실조와 질병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돌봤고, 약품이 부족하면 미국 교회에서 보내준 샘플 약으로 치료를 이어갔다. 

1955~56년 혹한의 겨울, 간호사들은 난방이 되지 않는 병실에서 환자들에게 담요를 덮어 주며 체온을 유지시켰다. 그때 그들의 사역은 단순한 '치료'가 아니라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는 복음의 현장이었다. 

1970년대 이후 병원은 더 넓은 세상으로 눈을 돌렸다. 내과 전문의 이용웅(요한) 박사 부부가 방글라데시 난민촌으로 의료 선교를 떠나면서, 예수병원의 선교는 다시 세계로 확장되었다.

"전주에서 시작된 불씨가 이제 아시아 전역을 비추기 시작했다." 

'꺼지지 않는 불씨'로 남은 복음의 유산 

<꺼지지 않는 사랑의 불씨>는 단지 한 병원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은 복음의 본질이 무엇인지, 교회가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지를 일깨운다. 초기 선교사들의 손끝에서 시작된 치료의 현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예수병원은 의료 선교사들을 세계 각국에 파송하며, "복음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는 병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꺼지지 않는 사랑의 불씨>는 한국 근대 선교의 초창기, 낯선 땅에서 피워 낸 복음의 불꽃이 오늘도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음을 증언한다. 이 책은 선교의 본질을 다시 묻는 이 시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바치는 헌신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