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에서는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이 제작해 넷플릭스에서 방영 중인 오리지널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다룹니다. 최근 영화 속 OST '골든(Golden)'이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 '톱(TOP) 100' 1위를 차지한 매기 강·크리스 아펠한스 감독의 이 영화에는 전통 한국 문화와 현대 서울의 명소들이 배경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무속, 국악, 한국 대중음악, 그리고 K-POP의 커넥션
시나위, 넋두리, 황천길, 미궁 등
무속의 흔적, 대중음악 곳곳 남아
공연 행태마저 굿판과 연결하기도
싸이, 굿판 재현 대표 아티스트?
떼창, 단오굿·별신굿 자주 목격돼
고대에 음악은 영적 활동의 일환이었다. 과거에도 오로지 유희와 개인적 위로를 위한 음악, 즉 저잣거리 아이들의 노래나 삶의 애환을 다룬 노래, 남녀상열지사 같은 것들도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이런 비종교적 음악은 종교적 목적을 가지고 창작된 음악에 비해 수준이 높지 않았다. 고대에 가장 발전된 음악은 대부분 제례에 사용된 종교음악이었다.
한반도 역시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가 현재 '국악'이라고 부르는 한반도 고전음악 가운데 높은 수준의 기교를 요구하는 작품 대다수는 제례 혹은 무속과 깊게 연결돼 있었다. 무속이 국악 발전에 크게 기여한 사실을 입증하는 대표 사례 가운데 하나로 국악의 한 지류인 '시나위'를 들 수 있다.
배재대학교 교양교육 교수이자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전북무형유산 가야금 산조 이수자로 선정된 조세린(본명 Jocelyn Clark)은 〈神我爲, For Us and the Gods〉라는 연구논문에서 시나위가 신아위(神我爲), 즉 '신과 우리를 위한다'는 이름의 무속의식에서 유래된 음악임을 밝힌다.
그녀는 한국 국악의 명맥이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기독교 선교사들의 복음 전파 활동을 통해 크게 약해진 사실을 조명한다. 한국에 처음 들어온 북미 기독교 선교사들은 무속 신앙과 불교 의식을 다분하게 반영하고 있던 조선 전통 국악을 이교적 음악이라며 경원시했다. 그들은 국악을 대체하기 위해 서구 클래식과 가곡, 그리고 찬송가 유입에 힘썼다.
여기에 더해 일제시대에는 한반도에 일본 '엔카'가 유입되고 트로트가 빠르게 발전해, 이내 대중음악 주류로 자리잡았다.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한 서구 음악 유입, 그리고 엔카 유입에 의해 촉진된 트로트 발전이라는 두 요인 때문에 한반도 민중은 무속과 깊은 연관을 갖던 전통 국악을 일상에서 더 이상 향유하지 않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속의 흔적은 1980년대까지 한국 대중음악 곳곳에 남아 있었다. 시나위(그룹명, 국내 대표 록밴드 가운데 하나), 넋두리(가수 김현식 대표곡), 황천길(뮤지션 김수철 국악앨범 대표곡) 같은 무속 음악 개념들이 한국 대중음악에 자주 사용됐고, 국악 작곡가 황병기의 '미궁'은 아예 대놓고 신접한 소리를 곡에 포함시켰다.
일부 민속학자들은 현재 아이돌 그룹 중심으로 재편된 K-POP 공연 행태마저 무속의 굿판과 연결해서 이해하기도 한다. 일례로 저명한 한국 구비문학 연구자 신동흔(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은 〈현대 대중음악 콘서트에서 전통 굿문화의 발현 양상〉이라는 연구논문에서 다음과 같은 논지를 제시한다.
그는 관객들이 가수들과 함께 환호하고 춤추며 뛰어노는 한국의 군무 중심 콘서트 문화가 무당의 신명난 춤에 관전자들이 적극 호응하는 굿판을 현대적으로 재현한 것이라 해명한다.
그리고 이렇게 굿판에서 벌어진 군무를 재현하는 대표적인 K-POP 아티스트로 '강남스타일'을 부른 싸이를 지목한다. 그리고 한국 K-POP '떼창' 역시 세습무(世襲巫)가 펼치던 강릉 단오굿이나 동해안 별신굿 등에서 자주 목격할 수 있는 광경이라고 설명한다.

▲한국 민속문화 및 구비문학 연구자 신동흔은 굿판에서 벌어진 군무를 현대적으로 재현하는 대표적인 K-POP 아티스트로 <강남스타일>을 부른 싸이를 지목한다.
무속, 국악, 한국 대중음악, 그리고 K-POP의 커넥션
참신한 소재, 출중한 음악 등
'케데헌', 시청자 반응 좋은 편
작품 속 무당, 샤먼보다 퇴마사
기독교 관점 문제 제기할 지점
무속이 고등종교? 심각한 왜곡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는 방금 거론한 무속과 현대 K-POP 사이 연관성을 주요 소재로 삼는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다. 한국 제작사가 아닌 미국 소니 픽처스가 제작했고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공개됐다.
전체적인 시청자 반응은 상당히 좋은 편이다. 참신한 소재, 출중한 K-POP 음악, 뚜렷한 캐릭터성, 화려하고 흥미로운 연출이 전체적으로 잘 어우러진 작품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실제 K-POP 프로듀서와 작곡가, 아이돌 가수를 대거 기용, 작중 K-POP 분위기를 제대로 재현한 점이 눈길을 끈다. 작품 자체의 서사나 캐릭터 구축도 훌륭하지만, 주연들이 펼치는 음악과 무대 퍼포먼스만으로도 대단한 매력을 갖는 작품이라는 평이 대세를 이룬다.
이 작품에서 주목할 점은 <케데헌> 주인공 헌트릭스(HUNTRIX)와 악역 사자 보이즈(SAjA Boys)의 정체다. 세 명의 여성 K-POP 아티스트로 이루어진 아이돌 그룹 헌트릭스는 조선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강력한 무당 가문 후계자들로, 악령들로부터 우리 민족을 지키는 일을 주로 맡고 있다. 반면 '빌런' 역할을 맡은 사자 보이즈는 악령들의 군주인 귀마의 부하로, 헌트릭스를 무너뜨리고 인간들 모두의 혼을 빼앗아 삼키려는 계략을 실행한다.
여기서 귀마란 조선 순조 대에 발표된 고전소설 '삼한습유(三韓拾遺)'에 등장하는 귀마왕을 모티프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이 소설에서 귀마왕은 일만 악의 근원으로 성경에 빗대자면 마귀와 같은 역할을 맡는 캐릭터다. 헌트릭스는 이런 악의 근원이자 군주인 귀마를 막아내기 위해 아이돌 가수라는 직업으로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고 악령들과 맞서 싸우는 일을 하고 있다.
이렇게 이 작품은 지난 몇 년 동안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그랬던 것처럼 무당과 무속 미화에 앞장서고 있다. 아니, 단지 무속의 미화를 넘어, K-POP을 매개삼아 무속을 매력적인 한국 문화로 포장해 세계화하는 작품이다. 2024년작 <파묘>가 그랬던 것처럼, 무속이야말로 한반도 민중의 삶을 지키는 전통적 종교 문화라는 메시지가 <케데헌>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무속이야말로 한반도 민중의 삶을 지키는 전통적 종교문화라는 메시지가 <케데헌>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작품 제작을 미국 제작사 소니 픽처스가 맡다 보니, 무속의 디테일에 있어 각본가 및 연출가의 몰이해가 엿보인다. 작품에 나오는 무당은 사실상 접신에 특화된 '샤먼'보다는 전세계 시청자들이 생각하는 '동아시아 퇴마사'의 이미지에 맞게 각색됐다.
그런 면에서 <케데헌>의 헌트릭스는 한국의 무당보다는 일본 애니메이션 <헬싱>이나 <귀멸의 칼날>에 등장하는 퇴마사의 모습에 가깝다.
이처럼 <케데헌>은 무속을 묘사하는 데서 여러 각색을 거쳤다. 하지만 이 작품이 무속을 한국 대표적 전통 종교문화로 소개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K-POP의 강점 중 하나가 무속과의 연관성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확실히 한국의 종교적·문화적 현실에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 그리고 이것이 기독교적 관점에서 <케데헌>의 설정과 서사에 문제를 제기하게 되는 지점이다.
무속이 한국의 대표적 전통 종교문화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직까지 많은 한국인들이 무당의 점술과 인생 컨설팅에 의존하고 있다. 또 한국 대중문화의 많은 부분에 무속의 잔재들이 남아서 한국인 일상적 삶의 방식에 깊은 영향을 주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무속이 우리 민족 전체를 악의 세력으로부터 구해주는 고등종교의 속성을 갖고 있는 듯 소개하는 것은 심각한 왜곡이다. 무속은 원래 인류 보편적 도덕성이나 인권의식을 갖추지 못한 원시종교로서, 씨족이나 마을 단위로 경외하고 섬기던 신들에 대한 다신교적 숭배와 제의 행태의 총체일 뿐이다.

▲무속은 원래 인류보편적 도덕성이나 인권의식을 갖추지 못한 원시종교로서 씨족이나 마을 단위로 경외하고 섬기던 신들에 대한 다신교적 숭배와 제의 행태의 총체일 뿐이다.
박욱주 박사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 좁은문은혜교회에서 목회자로 섬기면서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박욱주 교수.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 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