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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경우 사람들이 결정적으로 그리스도를 믿게 되는 계기는 결혼을 하거나, 자녀가 태어나거나, 사랑하는 사람 혹은 자신의 죽음을 마주하는 지각변동의 시기에 찾아온다. 저자 故 팀 켈러는 생전 45년을 사역하면서 지켜본 결과, 많은 사람들이 특히 이러한 인생의 큰 전환기에 열린 마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탐색했다. 그래서 삶의 중대한 변화의 시즌을 통과하는 이들이 '진정으로 변화된 삶'이 무엇인지 생각하도록 돕기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  

저자는 책 속에서 "자녀 교육법을 다룬 책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조언이 있다. 부모의 '가치관'을 주입할 게 아니라 자녀 스스로 가치관을 형성하도록 도우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 불변하는 사실이 있으니 광고업계나 SNS, 대다수 학교 교사 등 세상 모든 사람이 암암리에든 노골적으로든 '너만의 진리대로 살라'와 같은 사상으로 우리 자녀를 교화하려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녀를 가르치지 않으면 반드시 다른 누군가가 가르칠 것이다. 우리가 도덕 생태계를 구축하여 그리스도를 닮은 자녀로 길러 내지 않는다면, 세상의 도덕 생태계가 우리 아이들을 함부로 빚어 버릴 것이다"고 했다. 

그는 "은혜 안에서 자라 가면 그 징후로 나와 비슷한 부류의 그리스도인만 아니라 나와 다른 그리스도인까지도 더 사랑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기독교 교회는 아직도 다분히 인종이나 사회적 계층에 따라 분열되어 있다. 당신이 다니는 교회 교인들도 아마 인종, 교육 수준, 사회적 계층이 당신과 비슷할 것이다. 그러나 은혜 안에서 성장하고 있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징후는 자신과 사회적 지위가 같은 비신자보다 사회적 지위가 다른 신자에게 더 친밀한 유대감을 느끼는 것이다. 다른 그리스도인을 진정으로 사랑하면 나머지 모든 인간을 갈라놓는 정치, 이념, 인종, 사회적 계층의 장벽도 뛰어넘을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성적 연합은 '나는 영원토록 전부 오직 당신만의 것입니다'라는 고백이어야 한다. 그러면 성교가 상대에게서 쾌락을 얻어 내는 수단이 아니라 깊은 연합의 행위가 된다. 성교를 통해 두 인간이 단일한 공동체로 결합되고, 당신의 마음은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듯 희생적으로 사랑할 수 있게 빚어진다. 결혼 생활 속에서만 성관계는 잠재력을 십분 발휘해 즐거움과 만족을 선사한다. 요약하자면 성도 결혼처럼 그것 자체 너머의 무언가를 가리켜 보인다. 그것을 내다보며 장차 올 그 날을 사모하지 않는다면 성과 결혼은 늘 우리에게 지독한 실망을 안겨 줄 것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랜 세월 사람들은 소금을 쳐서 육류를 보존했다. 소금에 절이면 고기가 썩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슬픔도 소망이라는 소금을 치지 않으면 고기처럼 상한다. 죽음 앞에 슬퍼하고 격노하는 것은 거대한 악에 내보이는 온당한 반응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소망이 있어, 마치 고기에 소금을 바르듯 그 소망을 슬픔과 분노에 '바를' 수 있다. 슬픔을 억누르거나 절망에 굴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분노를 억제하거나 무조건 다 터뜨리는 것도 영혼에 이롭지 못하다. 그러나 슬픔을 소망에 절이면 지혜와 긍휼과 겸손과 애정이 싹튼다. 충분히 슬퍼하되 깊은 소망을 품으라! 내가 왜 이를 중용이 아니라 양극단의 조합이라 했는지 알겠는가? 이렇게 하면 단순히 극기할 때보다 더 힘이 나고, 절망할 때보다 더 마음껏 애통할 수 있다"고 했다. 

끝으로 저자는 "죽음은 한때 우리의 숨통을 끊어 놓을 힘이 있었으나 이제 죽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우리를 하나님의 땅에 심어 비범한 존재로 피어나게 하는 것뿐이다. 오래전에 시카고의 유명한 드와이트 무디 목사는 죽음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머잖아 시카고의 여러 신문에 드와이트 무디의 부고가 실리거든 절대로 믿지 말라. 그 순간 나는 지금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 있을 것이다.' 슬퍼하되 소망을 품으라. 부정이나 착각에서 안심하고 깨어나라. 죽음 앞에 웃으며 장차 일어날 일을 생각하며 기뻐 노래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손을 잡고 계시면 당신도 노래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