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한강 작품, 두 달만
10위 내 5권, 2024 순위표 점령
한강 붐, 독서 열기로 이어졌나
문학, 작품으로 봐야 접근 가능
이념 논쟁 흘러 저변 확대 못해
기독 출판에도 영향 거의 없어
 

일반 출판계는 2024년 최대 이슈로 '한강 효과'를 꼽는다.

10월 10일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발표 이후 한강 작가의 작품들은 폭발적 판매량을 기록했고, 이미 알려진 <채식주의자> 외 다른 대표작 <소년이 온다>가 연간 1위를 달성했다. <소년이 온다>는 두 달여 판매량으로 교보문고 기준 2015년 이후 10년간 종합 1위 도서 판매량을 제쳤다.

이와 함께 한강 작가의 작품은 2024년 베스트셀러 순위표를 그야말로 '점령'했다. 1위 <소년이 온다> 외에 2위 <채식주의자>, 3위 <작별하지 않는다>까지 1-3위를 싹쓸이했고, 9위 <흰>, 10위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까지 10위권에 5권을 입성시켰으며, <희랍어 시간>도 16위를 차지했다.

한강 작가의 작품은 노벨문학상 수상 후 50대 이상 독자층의 구매가 대폭 늘어났다고 한다. 수상 전에는 20대 여성(27.3%)들이 가장 많이 구매했으나, 수상 후에는 50대 120.%→ 18.1%, 60대 이상 3.3%→ 9.2% 등으로 증가했다. 20대 여성은 오히려 16.1%로 비율이 줄어들었다. 이는 50대 이상 자체 구매와 더불어 자녀들에게 읽히거나 선물용 구매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한강 효과'는 소설 분야 전체의 관심을 이끌기도 했다. 올해 소설 분야 구매는 전년 대비 35.7%나 상승했고, 3년 연속 감소했던 시·에세이 분야도 17.1% 상승했으며, 청소년 문학 판매도 12.6% 올랐다. 반면 자기계발 분야는 22.3% 감소했다.

2024년 베스트셀러 트렌드를 분석한 온라인서점 예스24는 "한강 작가 저서 전종이 종합 베스트셀러를 점령함과 동시에, 해외 주요 문학상에서 주목받은 도서들이 국내 독자들에게 재조명되는 계기가 됐다"며 "올해 러시아 톨스토이 문학상을 수상한 김주혜의 <작은 땅의 야수들>,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던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 등도 판매가 치솟았다"고 소개했다.

▲수상자, 심사위원, 발행인 등과 기념촬영 모습. ⓒ세움북스

▲수상자, 심사위원, 발행인 등과 기념촬영 모습. ⓒ세움북스

그러나 기독 출판계는 '한강 효과'가 크게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출판협회(기출협) 박종태 대표(비전북)는 "노벨상 수상으로 독서 붐 조성을 기대했는데, 수상작들은 효과가 있었지만 전반적 독서 열기로 이어지진 못한 것 같다"며 "문학은 작품으로 봐야 접근이 가능한데, 이념 논쟁으로 흘러가는 바람에 저변 확대가 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1인 출판사 구름이머무는동안 고태석 대표도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으로 독서에 관심이 높아졌지만, 기독 출판에는 그 영향이 거의 없는 듯하다"며 "여전히 좋은 기독교 책이 많이 출간되고 있지만, 외면받는 현실이 계속되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기독교 문학 가능성? 관심 적어
문학은 결국 상상력, 구조 문제
기독 출판은 신학·논픽션 중심
불교계, 소설 분야 자연스러워
美, 기독교 로맨스 소설도 가능
문학에선 '기독' 붙으면 위축돼

'기독교 문학'의 가능성에 대해 박종태 대표는 "오래 전부터 기독교 문학에 대한 가능성과 바람에 대한 말씀들이 들리지만, 기독교 자체의 관심은 적은 편이다. 기독교 소설과 산문, 수필과 시 등은 아주 취약한 분야"라고 전했다.

기출협 총무 최규식 대표(아바서원)도 "문학은 결국 상상력인데, 한국 기독교계 특성상 간헐적 시도는 있지만 구조적으로 길이 잘 열리진 않는 것 같다"며 "문학이 '픽션'인 탓인지 다소 배타적 분위기도 보인다. 한국 교계에서는 신학이나 논픽션 중심으로 '논쟁'이 주로 일어나고, 조금 날카로운 면도 있다"고 짚었다.

최 대표는 "불교계는 오랜 역사 덕인지 소설 분야가 자연스러운데, 기독교계는 그렇지 않다"며 "하지만 기독교 문화가 저변에 깔린 미국에선 기독교 로맨스 소설도 구조적으로 가능하다. 우리는 '기독교'라는 타이틀이 붙으면, 문학에서는 오히려 움츠러드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세움북스의 문학 작품들. 왼쪽부터 <크리스천 채식주의자>, 〈2025 세움북스 신춘문예 작품집〉, <빙점 해동>.

▲세움북스의 문학 작품들. 왼쪽부터 <크리스천 채식주의자>, 〈2025 세움북스 신춘문예 작품집〉, <빙점 해동>.

기독교 문학의 경우 세움북스에서 꾸준히 '신춘문예' 공모전을 통해 작가 발굴에 나서고 있다. 세움북스는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크리스천 채식주의자>라는 제목으로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기독교적으로 분석한 바 있다. 옴니버스 작품집 <아버지>를 발표했고, 권정생의 <강아지 똥>, 미우라 아야꼬의 <빙점> 등을 해석한 작품 등을 펴내기도 했다.

이와 함께 지난해 일반 종합 도서 판매 트렌드로는 생명의말씀사 서정희 편집장의 진단처럼 '트렌드가 없는 것이 트렌드'였다. 한강 작가 작품 제외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10위권에는 <불변의 법칙(경제경영)> 4위,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인문)> 5위, <모순(소설)> 6위,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에세이)> 7위, <세이노의 가르침(자기계발)> 8위 등이었다. 전년과 비교해 상위권 도서들의 판매량을 뛰어넘은 신간이나 특정 분야 강세가 나타나지 않았고, 다양한 분야의 도서가 고르게 사랑받았다.

교보문고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올해 종합 100위권 도서 평균 판매량은 지난해 비해 18.4% 늘었지만, '한강 효과'를 제외하면 오히려 8.1% 줄어들었다. 올해는 상위권 변동이 잦고 특정 분야가 두드러지지 않은, '트렌드가 없는 트렌드'의 시기였다"며 "유튜브나 SNS 등 다양한 루트로 책이 소개되고, 독자들의 관심사가 다양해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으면서 ‘역주행’한 도서들. 왼쪽부터 <나와 너>,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으면서 '역주행'한 도서들. 왼쪽부터 <나와 너>,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에세이 더 정성스럽게 가거나
신학으로 더 묵직하거나 양극화
양쪽의 중간 정도 도서 필요해
개혁주의·교리에서 성서학으로
1인 출판사들, SNS 활동 활발
독자층 틈새 잘 파고들어 선전

이 외에 기독 출판계에도 각자 뚜렷한 색깔을 갖춘 1인 출판사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지난해에도 기존 1인 출판사들 외에 시들지않는소망 등이 새롭게 기독 출판의 바다에 뛰어들었다. 이와 함께 오륜교회 김장현 목사의 '스타북스'를 비롯한 독서모임들도 여기저기서 생겨나고 있다.

1인 출판사 지우 이재웅 대표는 "기독교 출판 시장에서도 구름이머무는동안 출판사처럼 에세이를 좀 더 정성스럽게 만들거나, 아니면 신학적으로 더 묵직하게 가거나 양극화가 심해지는 것 같다"며 "양쪽의 중간 정도, 적절히 신학적이면서도 신앙적인 도서가 줄어들고 있는 것 아닐까. 이를 위해 <히브리어의 시간> 송민원 교수님, <고백의 언어들> 김기석 목사님처럼 필력이 있으면서 신학에도 조예가 깊은 분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했다.

이재웅 대표는 "2024년은 신학 쪽에선 교리보다 성서학이 주 트렌드였다. 개혁주의나 조직신학, 교리 중심의 신학 도서들이 한동안 많았는데, 성경을 교리적·구조적으로 딱딱하게 접하다 보니 그 반작용 같기도 하다"며 "조직신학보단 성서학이 아무래도 흥미롭기도 하고, 유익한 면도 있다. 2025년에도 이러한 분위기가 계속될 것 같다"고 예측했다.

▲홍동우 목사가 거론한 도서들. 왼쪽부터 <히브리어의 시간>, <고백의 언어들>, <신약성경과 그 세계>.

▲홍동우 목사가 거론한 도서들. 왼쪽부터 <히브리어의 시간>, <고백의 언어들>, <신약성경과 그 세계>.

홍동우 목사는 "제 관심인 신학계에서는 톰 라이트와 마이클 버드 박사의 <신약성경과 그 세계>가 떠오른다. 책 5권을 간추리고 덧붙여 한 권으로 만든 교과서 같은 책으로, 컬러 사진도 많이 들어 있다"며 "신학계는 10년 전만 해도 자유주의와의 논쟁이 많았는데, 지금도 없진 않지만 그런 논쟁에서는 많이 벗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독서모임 북서번트 대표 이정우 목사는 "비목회자들이 전하는 메시지가 신선하고 더욱 설득력을 얻는 이러한 흐름은 올해도 이어질 것 같다"며 "기독교 출판시장이 협소해서인지, 주목받는 독서 모임들에서 선정되고 읽히는 책들이 단기간 베스트셀러가 되는 현상도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2024년 베스트셀러 순위 20위를 차지한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가 독서모임 선정으로 재조명된 대표적 경우다. 이와 함께 연예계 '셀럽'인 '뉴진스맘' 민희진 대표가 한 강연에서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추천하면서, 기독교 내에서 스테디셀러였던 책이 일반인들에게까지 주목을 받게 됐다.

생명의말씀사 서정희 편집장은 "독서 모임이 활성화되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대형 모임도 있지만, 삼삼오오 모여 독서모임을 하는 모습을 봤는데 고무적이었다. 기독교 출판계에 선순환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며 "모임에서 함께 읽는 도서들이 지속적으로 알려지고, 오래된 책들이 다시 알려지면서 그 저자의 최근작들도 판매가 동반 상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한강 작가 작품들
(Photo : 이대웅 기자)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한강 작가 작품들을 모아 진열해 놓은 모습.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은 트렌드 변화로까지 이어진다. 최신 트렌드를 주도하는 MBC <나 혼자 산다>를 통해 '우연히' 시작된 2024년 철학자 쇼펜하우어 열풍은, 비슷한 결의 니체 독서로까지 연결된 바 있다. 기독 출판계도 1020세대를 겨냥한 감각적인 에세이나 신앙시, 굿즈와의 연계나 유튜버와의 협업, 자기계발 또는 자기주도 성경읽기 등을 모색할 수 있다.

최규식 대표는 "출판사들이 연합해 오프라인에서 독자들을 만나기도 하고, 연말에는 1인 출판사들 모임도 있었다. 이런 일종의 몸부림들은 현재 상황이 어렵다는 방증이기도 하다"며 "물론 SNS 소통이나 코로나19를 계기로 시작된 온라인 독서모임 등 새로운 움직임들도 생겨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박종태 대표는 1인 출판사들의 약진에 대해 "젊은 출판인들이 1인 출판사를 설립하고 SNS 활동도 활발하게 하면서 독자층의 틈새를 잘 파고들어, 열악한 가운데에서 뒤지지 않게 책을 보급했다"며 "구름이머무는동안, 뜰힘, 바람이불어오는곳, 비아토르 같은 출판사들"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