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형선 목사 (휴스턴 순복음 교회)
 홍형선 목사와 함께 쓰는 영성일기 Photo by 기독일보

"그랬구나의 힘" 

오늘은 우리 부부가 결혼한 지 3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리고 어제는 딸의 생일이었다. 결혼 1주년 하루 전날 딸아이가 태어났으니, 이틀 연달아 특별한 날이 이어진 셈이다. 그래서 어젯밤, 케이크를 하나 사서 초를 꽂고 딸아이의 생일을 축하한 후, 그 케이크에 다시 초를 꽂아 우리 부부의 결혼 30주년도 축하했다.

지난 가을에 결혼 30주년 기념으로 이집트 선교 여행을 다녀왔기에, 오늘은 별다른 이벤트 없이 지나가기로 했다. 그래도 그냥 지나가면 안 될 것 같아 심방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급히 운전해 갓 죽은 랍스터를 파는 가게에 들렀다. 저렴하게 죽은 랍스터 몇 마리를 사 와 버터와 마늘을 발라 랍스터구이를 만들었다. 그런데도 왠지 섭섭하다. 아니, 불안하다. 결혼 30주년에 꽃 한 송이도 없었다는 말을 평생 들을까 봐 불안했다. 그래서 꽃을 사러 Costco로 갔다.

수많은 장미다발 속에서 어떤 꽃을 살지 몰라 서성이는 내 앞에서, 한 젊은 엄마가 빨강, 핑크, 흰색으로 어우러진 장미꽃 다발을 집어 들었다. 나도 따라서 여러 색깔이 어우러진 장미꽃 다발을 집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어떻게 꽃을 건넬지 고민했다. 꽃을 주면서 살짝 포옹이라도 해줄까? 그리고 한마디 한다면 뭐라고 말할까? "나랑 결혼해 줘서 고마워"라고 말할까, 아니면 "사랑해"라고 할까? 그렇게 고민하다 보니 어느새 집 문앞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아내를 본 순간, 머리가 멍해지며 운전 내내 고민했던 생각들이 사라졌다. 쑥스러운 마음에 꽃을 싱크대 위에 올려놓고 소파에 가서 앉았다. 그 순간, 아내는 꽃다발을 집어 들더니 이렇게 말했다.
"30년을 살아도 나를 이렇게도 모르느냐?"
아내는 장미꽃을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여러 색깔로 어우러진 장미는 더 싫어한다고 했다. 순간, "어느 젊은 엄마가 이런 꽃을 사기에..."라는 변명을 내뱉으며 화가 치밀었다. 바쁜 중에도 아내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꽃까지 마련했는데, 아무리 자기 스타일이 아니라도 "고마워"라고 말은 못 할지언정 "아직도 나를 모르느냐"며 핀잔을 줄 필요는 없지 않냐는 생각에 화가 났다.

그런데 그 순간,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그랬구나"라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 이 말은 내 실수를 인정하고 상대를 인정하는 말이었다. 그러자 아내도 미안했는지 더 이상 아무 말이 없었다. 결혼 30주년에 마음 상할 뻔했던 순간, "그랬구나"라는 이 한마디가 상황을 평정으로 돌려놓았다.

회개란 무엇인가? 바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돌이키는 것이다. 성경은 죄가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음으로 망한다고 말씀하신다(롬 2:5).
하나님께도, 사람에게도 "내가 그랬구나"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