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재판을 굽게 하지 말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며 또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신명기 16:19)
판사가 재판을 할 때 원고(原告)나 피고(被告)로부터 뇌물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은 초등학생들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재판관이 뇌물을 받고 재판을 그릇되게 한 것은 역사의 기록을 통해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도 출애굽기 23장 6절에 “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정의를 굽게 하지 말며.... 8절에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고 경계하였습니다. 또 신명기 16장 19절에 “너는....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며 또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고 훈계하였습니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많은 사람들의 재판을 하는 것을 보고, 그러지 말고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택하여 간단한 사건은 그들에게 맡겨 처리하도록 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이들을 택할 때, “능력 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를 살펴 세우라”(출 18:21)고 충언하였습니다. 판관(判官)은 청결한 양심을 갖고, 뇌물을 받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무엘은 구약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 중 한 분입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사무엘은 “내가 누구의 소를 빼앗았느냐....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누구의 손에서 받았느냐...”(삼상 12:3)라며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들은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삼상 8:3)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 사무엘의 장남 요엘과 차남 아비야가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한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 옛말에 호부견자(虎父犬子)란 말이 있지요. 호랑이 같은 아버지에, 개 같은 아들이란 의미입니다. 사무엘과 아들들을 두고 한 말입니다.
판사들이 임명을 받을 때, ‘양심과 법에 따라 판결’한다고 선서하지만, 정작 판결할 때, 전후 사정 보지 않고, 정말 양심에 부끄러움 없는 판결을 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돈 많은 재벌들이나 정치적 권력을 가진 사람들도 일반 서민들과 똑 같은 잣대로 판결을 하는지.... 양심과 법대로 판결한다면 두 부류의 사람들이 똑 같은 벌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민족 시인 윤동주의 ‘서시’(序詩)에 나오는 첫 구절처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모든 판사들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판결을 해야 하는데......
이런 판결을 하려면 판사들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판사는 어떤 외부의 압력이나 돈의 유혹에서도 벗어나 하늘을 향해 한 점 부끄러움 없는 판결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판사들이 이런 판결을 하게 하는 방법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또 있습니다. 양심적으로 판결하는 판사들이 많은 세상에 살았으면 좋겠네요. 주말 잘 보내시고 월요일에 만납시다. 샬롬.
L.A.에서 김 인 수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