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이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편 90:10)
세상에 태어난 모든 생물은 언젠가 죽습니다. 인간도 물론 예외는 아닙니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몰라도 죽는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100살 넘게 오래 사는 사람도 있지만, 태어나자마자 죽은 영아도, 유치원이나 대학에 다니다가 죽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필자의 모친은 생전에 “그럭저럭 살아왔는데 이제 어떻게 죽느냐가 문제다. 자다가 조용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도록 기도해라.”는 말씀을 가끔 하셨습니다.
우리가 엄마의 뱃속에서 나올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나왔지만, 순식간에 생명을 잃는 상황이 아니라면 우리는 죽음을 예견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현대 의술로 고칠 수 없는 치명적인 병에 걸렸을 때 죽음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認知)할 수 있습니다.
무서운 병에 걸려 많은 고통을 당하면서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환자에게는 두 가지 선택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존엄사(尊嚴死)고, 다른 하나는 안락사(安樂死)입니다. 안락사는 의사의 도움을 받아서 생을 마감하는 것이고, 존엄사는 글자 그대로 존엄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인데, 의학적 연명 치료를 하다가 중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존엄사는 말기 암환자가 인공호흡기와 심폐소생술 등의 소모적 의료 행위를 중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의 생명이 끝날 때까지 진통제 투여나 영양분 공급은 계속됩니다. 한국에서는 2018년에 존엄사가 합법화되었습니다.
안락사는 죽음에 임박해서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에게 약물을 투입해서 인위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의사 조력 자살이라고도 말합니다. 안락사는 한국을 포함해서 세계 여러 나라는 아직 법적으로 허락하지 않고 있습니다. 미성년자들이나 장애인, 자살하려는 사람들이 악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2018년 존엄사가 합법화된 이후 전체 사망자의 약 20%가 존엄사를 택하고 있습니다. 회복 가능성이 없고 현재 임종 직전이라는 두 사람 의사의 판단이 있을 때는 존엄사가 가능합니다. 현재 65세 이상의 인구 20%가 존엄사의 사전 동의서를 써놓고 이 방법을 택하려 합니다.
가까운 친구들이 하나씩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죽음이 나에게도 임박해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어떻게 죽어야 할까?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것처럼, 무서운 병으로 오래 고생하지 않고, 떠돌아다니는 우스개처럼, 99 88 23사(死)(99살까지 88하게 살다가 2,3일 앓다가 죽는다.)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그게 내 마음대로 안 되니 문제지요.
결국 우리의 태어남도 죽음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기도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필자의 모친이 원하신 대로 자다가 조용히 하늘나라로 가는 길이 가장 아름다운 마침입니다. 결론은 ‘기도하는 길 밖에 없다.’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떠날 것인가는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고 매일 매일의 삶에 충실 합시다. 샬롬.
L.A.에서 김 인 수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