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Photo : ) 신성욱 교수

[1] 한 아이가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마음씨가 여리고 착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커서 사제가 되려는 마음도 갖고 있었다. 군에서 제대했음에도 다시 입대할 정도로 애국심이 강했다. 군인들에게 걷어차인 개를 데려다가 안고 울면서 치료해줄 정도로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림에도 재주가 있어서 건물 그림이나 풍경화를 잘 그렸다. 무엇보다 그의 타고난 웅변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강력했다.

[2] 그의 연설을 듣는 이는 모두가 열정적인 그의 연설에 매료가 되고 설득되곤 했다. 그가 설교지가 되었으면 빌리 그래함보다 더 열정적인 설교가가 돠었을 것이다. 이 사람이 누구일까? 이 사람은 훗날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까 악명 높은 사람이 되었을까?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장본인 중 한 명이며, 유대인을 600만 명이나 학살한 주범 아돌프 히틀러가 그 주인공이라면 믿겠는가?

[3] 히틀러는 독일 역사상 가장 악명높은 인물 중 한 명이다. 독일과 전세계에 엄청나게 큰 파장을 일으킨 그는 수많은 인명과 문화적인 유산을 파괴하는 죄를 저질렀다. 어떻게 해서 이런 괴물이 세계 역사에 등장했을까? 히틀러의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의 모습을 잘 아는 이라면 ‘제2차 세계대전의 원흉’이요, '유대인을 600만 명이나 학살한 살인마 히틀러’를 전혀 상상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 충격은 크게 다가온다.

[4] 이유가 뭘까? 그 무엇이 지극히 정상적인 인간성을 가진 히틀러를 세계 최고의 악인 중 한 명으로 만들었을까? 적지 않은 이들이 그가 고등학교를 중퇴한 무식장이라서 그렇게 되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결코 무지한 자가 아니었다.
히틀러가 '어마어마한 독서광'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게다. 그는 하루에 책을 한 권 이상씩 읽는 대단한 독서가였다. 그는 또한 장서가로도 알려졌다.

[5] 자살 후 발견한 그의 서재에는 자그마치 16,000권의 책이 꽂혀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책을 많이 읽은 지식인이 어째서 그렇게 악한 미치광이가 될 수 있었을까? 이유가 궁금하지 않은가?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 이유는 히틀러가 ‘선택적 독서’를 했다는 점이다. 그렇다.
‘선택적 독서’가 그 자신을 망쳐놓고, 세상도 망쳐놓은 것이다. 히틀러는 특정 소수의 작가들에게 사로잡혀 그들의 책을 삶의 교과서로 삼아왔다.

[6] 『히틀러의 비밀서재』(글항아리, 2016)라는 서적에 보면, 히틀러가 생전에 읽고 소장했던 책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중 매디슨 그랜트의 『위대한 인종의 쇠망: 유럽 역사의 인종적 기초』라는 책이 있다. ‘인종주의적 감정과 우생학에 대한 관심’을 기록한 그 책이 히틀러의 '반유대주의'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다. 파울 라가르데의 책 역시 히틀러의 '유대인 혐오'를 부추기는데 크게 일조했다.

[7] 히틀러는 책에 연필로 표기를 해가며 읽었는데, 그가 표시한 구절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선택적 독서’로 자신의 사상을 구축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이처럼 선택적 독서로 치우친 지식만을 습득하고 있던 그는 자기 생각과 다른 책들은 모조리 불사르게 하는 만행으로도 아주 악명이 높았다.
‘선택적 독서’가 얼마나 위험한가를 보여주는 실례로 히틀러만큼 적격인 이가 또 있을까 싶다.

[8] 사람을 네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똑부, 똑게, 멍부, 멍게.’ ‘똑부’는 ‘똑똑하면서 부지런한 사람’, ‘똑게’는 ‘똑똑하면서 게으른 사람’, ‘멍부’는 ‘멍청하면서 부지런한 사람’, ‘멍게’는 ‘멍청하면서 게으른 사람’을 말한다. 이중 베스트의 유형은 당연히 ‘똑부형’이다. 그런데 똑부형을 제외한 나머지 셋 중에서 최악의 케이스는 어떤 유형일까? ‘멍부형’이다. ‘멍청하면서 부지런한 사람’, 이들이 대부분의 사건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주범들임을 본다.

[9] 무식한 사람이 열심이 특심이면 공동체에 큰 해를 끼치게 된다. 하지만 ‘멍부형’보다 더 무서운 최악의 유형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는 바로 ‘비(非)멍부형’이다. 내가 만든 말이다. ‘비(非)멍’, 즉 ‘멍청하지 않고 지식이 있음’을 뜻한다. 이것이 ‘무식하면서 용감한 멍부형’보다 더 최악인 유형이다. 지식이 있긴 한데 ‘비뚤어진 지식으로 열심인’ 히틀러 같은 사람이 공동체를 가장 크게 파괴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10] 이단들을 보라. 그들은 성경 구절도 많이 암송하고 있고, 교주로부터 세뇌받은 교리들을 달달 외우고 다닌다. 성경에 대한 지식이 없는 게 아니다. 오히려 많이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지식이란 게 성경을 '선택적으로 읽게 해서 억지로 끼어맞추고, 왜곡된 관점으로 해석하게 하는 잘못된 지식’이란 게 문제다. 그 비뚤어진 지식이 그들을 망치게 하고, 그에 속한 무리들까지 지옥을 향하게 하고 있다.

[11] 어제 하루 동안 대한민국은 ‘한강의 최초의 노벨상 수상’으로 인한 축하와 함께 우려와 비난의 얘기들로 가득 찬 하루를 보냈다. 한국인 최초의 노벨상 수상이란 점에선 국민 모두가 축하하고 기뻐해야 할 일이지만, 수상 작품으로 거론된 그녀의 책 내용이 '편향된 시각에서 썼다'는 점에서 큰 우려를 낳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역사는 승자편에서 기록되지만, 문학은 약자편에서 인정받는 모습을 많이 본다.

[12] ‘승자’와 ‘약자’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문제는 승자가 다 악이 아니고 약자가 다 선이 아니라는 점에서 삼가 조심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 비록 소설이긴 하지만, ‘노벨상 수상작’이라는 날개를 달게 되면 소설을 '사실'(fact)로 인식하게 될 정도로 미치는 영향력과 파급력이 대단한 것이 솔직히 염려된다. 그러지 않아도 ‘6.25 전쟁’이나 ‘5.18’이나 ‘제주 4.3 사건’이라는 이슈로 인해 국론이 양분되어 있는 시점이다 보니 난감한 상황이다.

[13] ‘한쪽으로 치우쳐 편향되고 왜곡된 책’이 있는가 하면 ‘한쪽으로 치우쳐 편향되고 왜곡된 독서’도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히틀러의 케이스가 보여준 ‘선택적 독서’의 위험성을 인지하면서, 동시에 치우치고 왜곡된 책들을 피해서 읽는 ‘선택적 독서’의 필요성도 감안해서 책을 읽을 이유가 있다.

가을이 왔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함께 양서들을 많이 읽고 유익한 지혜를 듬뿍 얻는 축복된 계절이 되면 좋겠다.

 

히틀러의 비밀서재
(Photo : 히틀러의 비밀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