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최근 열린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첫 TV 토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면서 민주당 내에서 연일 '후보교체론'이 부상하는 등 현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가도에 빨간 불이 켜진 모습이다. 이번 토론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핵심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고 수차례 말을 더듬는 등 실수를 연발해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승기를 넘겨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TV 토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최근 성추행을 돈으로 입막음한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점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며 대통령 후보 자격 문제를 걸고넘어졌다. 반면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고령인 바이든 대통령의 업무 수행 능력과 이민, 인플레이션 상승 등 바이든 정부의 실패한 이미지를 부각하는 데 집중했다.
결과는 바이든 대통령의 완패였다. CNN 조사에서 "트럼프가 더 잘했다"라는 응답이 67%나 됐다. 반면에 바이든 대통령은 지지자 사이에서도 실망했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올 정도로 낙제점을 받았다. 급기야는 대선을 불과 넉 달 앞둔 시점에서 후보를 교체해야 한다는 여론이 민주당 내부에서 분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대선 포기 압력에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최근 필라델피아의 한 개신교회 예배에 참석해 자신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신앙의 힘을 느껴왔다"며 로마서 성경 구절을 소개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솔직히 말하건대 우리가 단결하면 미국의 미래는 이보다 낙관적일 수 없다"라고 했다. 이는 민주당 안팎에서 제기되는 '후보 교체론'을 일축하고 재선 도전 의지를 재확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앞서 지난 5일 공개된 ABC 방송 인터뷰에선 "나보다 대통령이 되거나 이번 선거에서 승리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이길 수 없다는 확신이 들면 물러날 것이냐'는 질문에는 "하나님이 사퇴하라고 하기 전까지는 안 하겠다"라며 대선 완주 의지를 재차 드러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이 개신교회 예배에 참석하거나 성경 구절을 인용하는 등 미국 내 기독교인의 표심에 기대하는 잇단 행보에도 교계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그리 호의적이지 않아 보인다. 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의 존 맥아더는 목사는 최근 인터뷰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해 "이는 신의 심판이자 사회적 도덕적 타락의 반영"이라고 규정했을 정도다.
크리스천 포스트(CP) 보도에 따르면 맥아더 목사는 "성적 부도덕, 동성애적 부도덕, 타락한 마음으로 돌변할 때, 하나님은 그들을 포기하신다"라며 "미국은 도덕적 선택의 결과를 거두는 나라"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트랜스 이데올로기'를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존 F 케네디 이후 미 역사상 두 번째 가톨릭 신자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보수주의적인 가톨릭계에선 동성애와 낙태권리 확대를 지지하는 바이든 행정부를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런 문제로 바이든은 지난 2019년 11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대선 유세 때 그 지역의 성당 미사에 참석하고도 성찬식을 거부당한 일이 있다. 당시 주임 신부는 "영성체는 신과 신자, 교회가 서로 하나되는 것인데, 어떻게 낙태를 지지한 사람이 이 의식에 참여할 수 있느냐"며 성찬을 막았다는 일화가 있다.
반면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 내 복음주의 진영과 전례 없는 결속력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집권 당시 연방대법원을 보수 우위로 만들어 지난 2022년 6월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49년만에 폐기하게 만들었고 주요 법원에도 보수 성향 판사를 포진시킨 것과 깊은 연결고리가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트럼프의 이런 확고한 '우클릭'이 복음주의 진영의 신뢰 기반을 탄탄히 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복음주의 유권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 가톨릭 신자이면서도 가톨릭계로부터 '이단아' 취급을 받는 바이든 대통령 사이에서 미국 유권자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속단하긴 이르다. 다만 부도덕한 구설수에도 기독교계의 절대 지지를 받는 트럼프 대통령과 낙태 동성애 이슈로 자신의 신앙의 기반인 가톨릭계에서조차 비판을 받으며 오히려 무신론자들의 지지를 더 많이 받는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엇갈린 평가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 정부와 국민은 한반도 안보나 북한 비핵화에 별 관심이 없고 한미동맹을 금전적 이해관계 논리로 접근해 온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당장 '안보 리스크'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윤석열 정부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이어온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선호도가 좀 더 높은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복음주의 교계가 바이든과 트럼프의 인격이 아닌 성적 지향 등 젠더 이데올로기와 낙태 등 생명권을 놓고 어느 것이 더 복음적 가치에 맞느냐를 선택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점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트럼프의 집권 가능성을 무턱대고 걱정할 게 아니라 '안보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기민하게 대처하면서 낙태와 동성애 확산 반대 등 트럼프 집권 2기의 로드맵에 힘을 실어주는 방향으로 나간다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결과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